종교 없는 과학은 무력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눈먼 것일까
서양정신사의 큰 부분은 사물을 분석하고 경험 가능한 방식으로 재구성하려는 과학과 세계를 신의 의지가 드러나는 장으로 이해하려는 신학이 대립한 역사였다. 철학은 두 사고방식에 결정적인 논리를 제공하거나 그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그러다 다윈의 진화론이 주장된 후 자연과학과 신학과 철학 사이에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인식 속에서 각 분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종교 없는 과학은 무력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눈먼 것이다”라며 소통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19세기적 이원론의 전통에 선 것이었다. 과학이 종교와의 접점을 모색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나타나면서였다. 이는 과학이 믿어온 진리-주체와 객체, 물질과 정신을 철저히 분리하며, 주어진 조건을 정확히 알면 결과는 언제나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결정론적 세계관과 대상을 나누어 그 모든 부분을 이해하면 결국 대상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물질론적 환원주의 등-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신학은 신학대로 현대 자연과학의 성과 중 빅뱅이론을 통해 신학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인간 이해의 새로운 장을 펼치기 위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
이런 변화를 토대로 가능성을 탐색하던 분야 간의 대화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본격화되었다. 전쟁의 참혹한 경험은 과학의 책임 문제를 제기했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선악, 윤리, 합리성 등의 문제를 고민하도록 요구했다. 카오스나 복잡계 이론 등 이른바 신과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환경오염, 생명복제, 안락사 등을 둘러싼 윤리논쟁, 창조과학 등이 대두되면서 자연과학과 신학과 철학 사이의 대화는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이 책은 양자물리학, 생물학, 빅뱅 이론, 진화론 등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 인간의 정신, 의식, 인식, 영혼에 대한 각 분야의 기본적인 견해가 무엇이며, 그 견해들 사이에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짚어본다. 그리고 특정한 문제에 대해서 다른 분야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의 견해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대화의 한계와 새로이 열리는 가능성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검토한다. 《신 인간 과학》은 여러 분야의 인간관을 모아 퍼즐처럼 짜맞추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오랫동안 질문해온 것들에 대한 각 분야의 이해를 대화 속에 녹여냄으로써 우리에게 인간 이해에 관한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길을 열어 보이는 새로운 인간학이다. 다루는 주제는 묵직하지만 대화체여서 읽기 어렵지 않고 독자에게 생각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