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2020년은 어느 해보다 내게 친밀하게 다가온다.
해마다 맞는 새해가 남다른 것은 없었지만 경자년은 내게 그렇지 않다.
왠지 모르게 낡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모처럼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 같은 느낌이다.
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랫동안 지고 살았던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해바라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이 아니 기쁘지 않겠는가.
남도 밖에서의 어느 섬, 추억이 있었다.
신혼부부 한 쌍이 눈에 들어온다. 턱시도를 입은 신랑과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드레스 자락을 펄럭거리면서 용머리 해안 잔디밭을 씩씩하게 배회한다. 그네들은 열 발자국도 못가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사와 용량이 큰 트렁크를 손에 든 보조 아가씨가 펄펄 날아다니는 신랑신부를 쫓느라 분주하다.
저녁 바다를 배경으로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젊은 남녀가 은륜을 반짝이면서 질주하다가 휴게소에 멈춘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손에 쥐고 마시면서 먼저 떠난 앞사람을 뒤쫓느라 바쁘다.
그리고 또 세월은 흘렀다.
내가 평소에 써온 소설 작품들을 예쁘게 포장한 조그마한 책에 한데 모아서 엮었다. 모두 하나같이 아끼는 작품들이다. 책 제목은 [고구마 전분공장]으로 하려던 것을 일반 독자들에게 낯설어 [커피 방앗간]으로 정했다. 내가 찾는 커피 하우스이기도 하지만 그 은은한 커피 향을 못 잊어 손님이 삼백예순 날 끊기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은 끝까지 살아보아야 알 것이다.
독자들과 동행하고 있으니 외롭지 않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 이웃, 모든 권속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 2020년 4월 과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