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이 불치병이었던 시대에서 지금은 생존율이 50퍼센트를 넘게 되었지만 호소야 선생님은 터미널케어를 오랫동안 담당했기 때문에 만났던 어린 생명들은 악마 같은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떴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도 어린 시절에 닥친 온갖 희귀병과 불치병으로 대부분 죽고 맙니다. 호소야 선생님은 중국의 전설적인 의사인 화타나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고대 그리스의 아스클레피오스 같은 명의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호소야 선생님이지만 환자의 부모와 가족들은 호소야 선생님을 모두 존경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벽과 마주할 때 드라마는 태어납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은 생명들이 활짝 피지도 못하고 일찍 지는 모습은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 생명들이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낸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슬픔을 넘어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삶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듭니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급식을 먹는 것을 무엇보다도 기뻐했던 마미, 백혈병에 걸려서도 면회 오는 여동생에게 주기 위해 별모양 쿠키를 열심히 만들던 유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의 시합을 보러 아픈 몸을 이끌고 도쿄돔에 가서 기적적으로 무사히 야구를 다 보고 나온 야구광 R, 마지막이 된 유치원 운동회에서 릴레이 선수로 뽑혔지만 릴레이에 나가고 싶어 엉엉 우는 친구를 위해 양보한 너무나도 다정한 마이, 한 살 어린 여자아이에게 ‘검사 때 별로 아프지 않게 해주는 기도’를 가르쳐주는 초등학교 1학년의 스미에...
이 어린 환자들의 안타까울 정도로 짧은 삶이 마감되는 것을 지켜보며 호소야 선생님은 살아 있다는 건 슬픈 일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의 삶이 미완성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남기고 떠났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 아이들도 짧은 인생이지만 하나의 드라마로 완성되었다고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사의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겠지요.호소야 선생님은 ‘정보기술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대이기에,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자연을 의식하면서 견실한 관계를 맺는 일이 나날이 중요해지는 느낌입니다. ‘생명’에 대해 ‘삶’에 대해, 때로는 멈춰 서서 생각할 필요가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호소야 선생님은 연약한 생명들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을 싫을 정도로 많이 봐왔습니다. 그리고 그 엄혹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보여준 사랑스러움과 의젓함, 가족과 의료진의 헌신에 감동합니다. 그런 생명에 대한 감동이 이 책에는 가득 담겨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시가 점점 노골적이 되어 가는 세태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그것을 대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한 생명이 죽는다고 해서 그 생명은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 책에 실려 잇는 에세이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호소야 료타 선생님은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해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고향 야마가타에서 의원을 하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에서 아주 멋진 병원으로 평가받는 성누가 국제병원의 특별고문으로 도쿄에 살고 있는 지금도 일주일에 이틀은 고향에 내려가 작은 지역 병원인 호소야 의원의 원장으로서 지역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