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에 실어 보내는 그리움
두고 온 산하, 두고 온 사랑
흑백 사진 속에 그리움은 멈춰 있고
이제껏 한 번도 글의 소재로 다루지 않았던 남북을 이어주는 송전탑 48기와,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철새인 기러기를 통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함께 고민해 보자는 의미로 기획되었다. 송전탑 48기를 작은 별로 생각하고 이것을 따라 무사히 비행에 성공하여 살아남게 되는 아기 기러기를 통해 ‘평화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지금은 개성 공단의 폐쇄로 더 이상 송전탑의 불빛이 반짝이지 않지만, 이 불빛들이 남북 화합의 모습으로 철조망을 가로질러 통일을 염원하는 ‘전설의 별빛’으로 다시 빛나기를 기원하면서.
한국 전쟁 당시 월남한 실향민 수는 제대로 파악된 적이 없다. 다만 1955년에 실시한 제1회 간이 총인구 조사의 ‘전입’ 항목을 보면 이 시기 전입자 수가 약 45만 명이었으며, 대한적십자사는 이 시기 실향민 수를 약 100만으로 추계하였다. 이후로도 제대로 된 실향민에 관한 통계는 없고, 흔히 ‘천만 이산가족’으로 표현될 뿐이다. 지금껏 위정자들이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실향민의 실정을 이용하면 그들은 이산의 아픔을 눈물로 대신 이야기해 왔다. 여전히 그들이 그리는 꿈은 아득히 멀고, 이제는 그리움만 가슴에 품은 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적 바탕에 작가는 철마다 경계를 넘나드는 기러기에 이산의 아픔과 그리움을 얹었다. 작가는 독자에게는 소리 높여 외치지 않으며 딱히 무엇을 주장하지도 않지만, 쓸쓸하다 못해 절절한 노인의 뒷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념의 깃대도, 정치적 구호도, 선심성 정책도, 숨겨 둔 야욕도 없다. 다만 진달래 꽃물이 든 연서 한 장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