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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자리 아내

전갈자리 아내

  • 문혜영
  • |
  • 파우스트
  • |
  • 2019-10-30 출간
  • |
  • 266페이지
  • |
  • 140 X 218 mm
  • |
  • ISBN 979118749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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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 작가의 말 〉

내가 태어난 곳은 제주시 동문시장 골목길 안 어느 단칸방에서였다. 어머니께선 내가 어릴 적부터 집 앞 찹쌀떡집 앞에 쪼그려 앉아 있길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시장골목이라서 많은 음식들이 있었을 텐데 유독 찹쌀떡을 좋아해서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그것을 사주시곤 했다고 했다. 콩고물로 입혀진 찹쌀떡은 적당량의 단 맛과 고소함, 쫄깃함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세 살배기 나에겐 최상의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몸으로 마음으로 기억되거나 각인되는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울보였다는 나는 분명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끝없이 뭔가 말하고 싶었을 테고 그 울음의 끝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찹쌀떡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수도 있고 엄마 품에 대한 소유욕이었을 수도 있겠다.
땅바닥에 발을 동동 굴려대며 울고 또 울던 고집 세고 엉뚱한 나는 남과 잘 소통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불통의 시간 속에 혼자의 세상을 즐기던 나는 그 시간들을 생각에서 상상으로 채우며 지냈고 어느새 그것들이 쌓여 추억이란 이름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사실 내 글의 자양분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성장해가는 시간 속에 아버지는 하루 종일 장사를 하다 돌아온 몸을 쉬게 하시기 전에,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 나를 기어이 앉혀 다리를 주물러 주곤 하셨다. 때로는 오빠와 나 사이의 다툼에 시비를 판단해 주고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상하고 현명한 판관이시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묵묵히 가족을 위해 선택의 길을 앞서가는 발걸음으로 인도해 주셨기에 커다란 그늘이 되어버린 나의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믿고 또 믿으며 내일을 기다려 오셨던 것 같다. 글을 쓰는 내 재주를 자랑스러워 하셨고 그 재주를 살려 언젠가 좋은 책을 쓰는 예술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셨다.
그렇게 길고 오랜 기다림 끝에 2007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누구보다 나를 자랑스러워 한 이들은 내 부모님이셨다. 나는 그때 셋째를 임신해 있었고 1월에 신춘한라문예에 「전갈자리 아내」가 당선되면서 만삭의 몸으로 시상식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시상식 사진에는 부모님과 나의 가족들(뱃속의 막내까지) 모두 화사한 꽃다발과 함께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첫 번째 수록된 작품 「전갈자리 아내」는 나의 공식적인 첫 소설이자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영광의 순간을 안겨준 소설이다. 나의 소설을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故 오성찬 소설가는 「전갈자리 아내」에 대한 심사평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라 향가 〈처용가〉를 떠올리며 읽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 처용의 너그러운 성품은 없다. 가정의 해체 시대라고 하며, 우리 사회에 실직으로 인한 문제가 만연해 있다. 충격적인 내용의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민다.

그 당시 심사평에 감사하며 드디어 나의 글이 인정을 받았다는 기쁨에 자신감이 넘쳤던 그날 이후, 나는 대학 재학시절 시 문학동인인 초승동인을 만나며 써온 시들을 마음의 책장에 일단 접어 두기로 마음먹었다. 20년간 써왔지만 대학시절에 백록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단 한 번도 신춘문예의 길목을 통과하지 못한 미로 같았던 시의 길. 그 때 나는 미로가 아닌 출구가 정해진 길을 가기 위해 시를 접고 과감히 소설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나는 한라일보에서 당선 소감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때때로 우리는 아주 자그마한 가시가 손에 박혀 아려올 때 바늘로 살갗을 헤집곤 합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가시 하나 때문에 멀쩡한 살갗을 찔러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순간 통증이 사라지며 느껴지는 희열 때문입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비로소 가슴 귀퉁이에 내내 박혀있던 가시를 빼낸 것 같았습니다. 달콤한 희열이 나를 들뜨게 했습니다. 그러나 희열에 안주하는 과오를 범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를 더욱 채찍질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하지만 심한 채찍질의 역효과인지 소설가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것은 세 아이의 엄마여야 했고 시에 미련을 가진 사람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당선작을 이겨낼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늘 창작의 발목을 잡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글 욕심이 가져온 결과는 오히려 오랜 시간 써온 글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리기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소설을 쓰자고 모인 ‘애인’ 소설동인들의 격려에도 내 소설은 갈피를 못 잡고 늘 용두사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동인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늘 비틀거렸고 글은 거의 절필의 단계에 이르고 말았다. 어느새 세 아이 육아에만 전념하면서 시간이 지나가 버렸고 답답한 육아의 길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일탈로 선택한 직장일까지 병행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잠시 글을 쉬는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멈춘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사이 심지어 글을 못 써 마음이 허해서인지 건강까지 악화되고 있었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다시 일을 멈추었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후 수필, 시, 소설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에서 수필로 시에서 시조로 그렇게 글의 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오래 묵은 먹먹함이 내 숨통을 조여오고 있음을 알기에 사실 다시 소설을 써야만 숨통이 트일 것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연유로 나는 10년의 시간 동안 써온 소설을 모아 작품집으로 내놓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하게 되었고 그것만이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일,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두 번째 수록된 작품 「거미」는 첫 소설을 쓰고 두 번째로 쓴 작품이지만 10년이란 시간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퇴고를 거쳐 완성된 작품이었다. 2017년에 이 작품은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마침내 10년 만에 등단의 길을 열었다.
그 당시 동양일보 지면에서 나는 당선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글은 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앞으로 가야할 길의 방향을 묵묵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길의 끝은 알 수 없지만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글을 지키라고 자신의 문장과 생각의 힘을 더 키워나가라고 오늘도 나침반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제 그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한발자국씩 꾹꾹 땅을 다지며 소설가로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그 후로 묵묵히 소설가의 길을 가기 위해 10여 년간 써온 단편들을 다시 읽어보았고 고쳐갔으며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온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결실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 믿으면서 말이다.

내 작품 「거미」를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안수길 소설가는 심사평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섬세한?구성과?침착하고?냉정한?문장,?독거미의?잔혹성에?엄마의?잔혹행위를?오버랩?시킨?비유,?은밀한?암시로?반전의?묘미를?살린?절제력은?일품이다.?주제나?소재가?다소?흔한?것이어서?신인다운?신선감은?떨어지지만,?탄탄한?문장력이나?구성력에,?작가로서의?성장?가능성이?충분하다고?믿어지므로?당선작으로?선정했다.

심사평을 듣고 내가 들었던 생각은 좀 더 주제나 소재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인간사를 다루는 것은 어찌 보면 모두 뻔한 이야기지만 좀 더 크고 넓은 시각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때론 가까이 있지만 몰랐던 깊은 심연까지 투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런 눈을 가졌을 때 귀도 열어 아주 작은 소리까지도 경청할 수 있기를, 나의 펜이 작지만 깊은 소리를 담아낼 도구로써 세상을 두루 살피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런 작가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적어도 뻔한 일이지만 결코 뻔한 일에 머물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세 번째 수록된 작품 「중독」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하게 된 다용도실 벽면 곰팡이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 글로 연결된 경우다. 곰팡이 포자가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연쇄살인에 관한 미스터리 이야기를 실제로 찾아내면서 창작을 시작하게 된 글이다.
오래 전에 이미 글은 완성됐지만 내가 잠시 글을 쉬는 동안 이 작품은 오랫동안 책장에 묵혀 있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야 퇴고작업에 다시 들어갔다. 그렇게 글의 창작과 퇴고의 긴 공백이 있던 사이에 작품 속 상상의 인물이 겪은 병은 공교롭게도 내 가족에게 실제 일어나버렸다. 젊은 나이에 뇌종양을 겪게 되고 결국 내 곁을 떠나게 된 나의 가족 중 한 사람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되고 말았다. 처음엔 허구일 뿐이었던 이야기의 작지만 큰 소재가 어느 순간 내 자신이 겪는 현실이 될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의도치 않았으나 일어나버린 현실의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의연하고 독하게도 글의 소재를 바꾸거나 버리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새 나는 그런 내 자신의 슬픔조차도 글의 재료로 쓰는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퇴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로 만들어진 삶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살고 싶었으나 죽음에 이른 슬픈 실제 이야기를 응용한다는 사실은 알고 보면 참으로 독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내가 아는 한, 작가는 가장 아름다운 글을 위해 가장 잔인한 방관자가 되어야 한다는 모순덩어리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작가라는 사람은 글을 위해서라면 시작부터 스스로를 모순덩어리로 만들어 와야 했을 것이다. 자신을 막을 방패와 자신을 칠 수 있는 칼을 동시에 지닌 탓에 스스로 자신을 베어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자로 자신을 키워왔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을 베고 난 자리에 새살이 돋을 즈음에 다시 상처를 추슬러 일으켜 싸우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아는 작가는 투사여야 했고 어리석은 자여야 했으며 이방인이어야 했을 것이기에.

네 번째 수록된 「숲」은 성폭력으로 얼룩진 유년을 보내는 어린 존재의 성장이 얼마나 지독한 딜레마에서 살아왔는가를 말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쓰인 글이다. 처한 현실이 너무 잔인해서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여야만 생존할 수 있던 시간들. 잊으려 해야 잊을 수 없는 잔인한 기억은 오히려 새롭게 만들어낸 삶의 방식에서 망각의 병을 겪는 두 아이로 존재하게 한다. 그들의 성장 속에는 그 병이 병인지도 모르고 아무 목적도 아무 방향도 없이 외로이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런 두 아이의 내면을 「숲」이라는 상징 속에 숨겨두고 싶었다. 숨고 싶고 잊히고 싶은 시간을 감출 수 있는 우거진 숲. 그를 이용함으로써 새롭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또 하나의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고 그런 생각에서 쓰인 글이다.

다섯 번째 수록된 「아이스 피쉬」 같은 경우는 「거미」보다 한참 후에 쓰여 겼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2회 2016년 경북일보 문학대전에서 먼저 수상한 작품이라서 「거미」 보다 출발선에서 먼저 달렸다. 이 글은 글을 쓰고 글을 쉬고 하는 사이 내 스스로 딜레마를 겪으며 조금씩 글이 변해오고 있었던 시기에 쓰인 글이다. 보이지 않지만 흔들리고 다져지는 나 자신과의 여러 갈등 후에 쓰인 글이다 보니 많은 시간이 흐른 탓인지 그동안 써온 글과는 다른 패턴과 형식으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만들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 글은 글 자체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나 묵은 긴장감을 내려놓을 때쯤 쓰인 것이란 티가 난다.
그즈음 나는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스스로의 길을 모색하는 영리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주인공은 좀 더 당당해지고 냉철해졌으며 사람냄새는 나지만 전과는 좀 더 다른 사람 냄새를 풍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을 해저 깊이 숨어 사는 투명한 물고기인 「아이스 피쉬」의 특별함에 빗대고 싶었고 그런 특별함을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들려주고 싶었다.

여섯 번째 수록된 「아주 가벼운 인사」는 팻숍의 쇼윈도에서 봤던 개나 고양이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글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동호회 중 고양이 밴드를 실제 찾아보다가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구상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고양이와는 전혀 그 모습이 다르지만 고양이 이름을 ‘엘리스’로 정하고 나니 구상이 쉽게 이루어졌다. 처음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가깝고도 먼 이웃이 사는 아파트를 이상한 나라라고 설정한 데서 시작되었다. 아파트라는 소시민들이 모여 사는 익숙한 공동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알고 보면 지극히 무관심한 개인적인 것들일 뿐이다. 사실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말만 이웃사촌인 현실에서 그들은 서로 낯설기 때문에 서로를 이상하다고 여기고 별일이지만 별일 아닌 일상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부유하지만 가족을 위해 홀로 외로이 살다 스스로 죽음을 용인한 어떤 죽음이거나, 한 푼을 아껴도 배를 채울 수 없어 가난에 허덕이지만 견디고 또 견디는 어느 취업준비생의 대책 없는 희망이거나 하는, 어쩌면 옆집에 아니면 앞집에 있을 그 누군가를 생각하고 쓴 글이다. 아주 가벼운 인사만 나눈 사이들. 얼굴은 알지만 그 외엔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 서로에게 언뜻 익숙해진 것 같지만 사실은 각자라서 낯선 삶의 방식을 살아가고 있는 서로 다른 우리들이 가득 들어있는 아파트의 전개도를 한번쯤 펼쳐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남 말하기 좋아하지만 그 마음속은 들여다보지 않는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를 쌍둥이자리 고양이를 통해 살짝 전개해 보았다.

일곱 번째 수록된 「포르말린」은 ‘포름알데히드’라는 방부제 성분의 성질에서 글의 모티브를 삼았다. 집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나비표본이 10년의 세월에도 변함없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고 쓰게 된 글이다.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지만 그 어떤 것까지도 보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부분에서 나는 ‘첫사랑’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단짝이자 첫 남자친구였던 나의 첫사랑은 20대에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과 절벽에서 함께 뛰어내리는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나는 그 녀석의 죽음을 들었을 때 ‘바보 같은 놈’이라 욕했고 그들의 사랑의 단단함에 대한 애도를 용납할 수 없었다. 사랑이란 이유로 스스로를 포기해버리는 일을 나는 결코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 내가 믿어 의심치 않은 그 녀석에 대한 어떤 기억이 너무 소중했던 데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날 박제된 나비표본을 보며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그 녀석의 무섭도록 독하고 시린 사랑의 이야기를 나의 상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첫사랑의 온기, 그 영혼을 나눴던 시간까지도 잊히지 않게 잘 방부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하다보면 그 사랑이 어쩌면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그들 사이의 사소할 수도 있고 절박할 수도 있는 상황을 서로의 미묘한 갈등을 통해 부딪치게 하고 다시 서로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그 녀석처럼, 작품 속 두 인물만은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조건을 중요시 하지 않는, 오로지 서로에 대한 사랑만을 조건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 더 애착이 가는 글이기도 하다. 무엇을 더 보여주려 하지 않고 저절로 서로를 찾아가게 되는 과정을 통해 사실은 그들이 더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까닭에 첫 사랑 같은 설렘의 글을 써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여덟 번째 수록된 「로제트」는 소풍 갈 때 아기자기하게 챙겨둔 도시락 가방처럼 가볍지만 기대되는 예쁜 소품 같은 글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일어나거나 그리 쉽게 해결되지도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일상 이야기이다.
삶의 일부이지만 때론 삶의 전부라는 생각으로 부딪치고 상처 입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소박하지만 예쁘게 그리고 작지만 크고 아름답게 채워지는 화해의 순간으로 꾸며주고 싶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서로의 아픔을 묻기 전에 나의 아픔을 먼저 들어달라는 지극히 평범한 작은 이기심이 때론 어떤 방향으로 우리의 일상을 완성해 가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은 때론 전갈자리 아내의 사랑일 수도 있고 포르말린 그녀의 사랑일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익숙한 음악과 함께 들려주고 싶었다.
사랑의 형태는 완벽한 게 아니라 완벽해지기 위해 함께 한 발씩 내딛는 것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들으며 생각해냈다.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의 가족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우리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었다. 우리가 이룬 로제트는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지 말이다.

10년 이상 소설을 쓰면서 내가 쓰는 글의 방향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가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단순하게 그런 맥락으로만 글이 쓰여 질 수는 없다는 생각,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고 있으며 내가 가야할 방향은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그것이었다. 언제나 결론은 하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살아가야 할 그 길에 누구나 맞다 여길만한 가치를 두기 위해 나의 글은 늘 선택이라는 길을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그것이었다.
그런 나의 글길에는 백년 이상의 시간을 뿌리 깊은 나무처럼 꿋꿋이 견뎌온 나의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하며 그 오랜 시간을 넘고 돌고 또 넘어 오셨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내 가족 중에 제일 오랜 시간을 살아온 할머니의 길에서 나란 존재는 처음엔 아주 조그만 아이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조그만 아이가 자라는 시간에는 할머니의 선택이 그리고 나의 부모님의 선택이 그리고 나의 선택이 늘 밥그릇처럼 놓여있었을 것이다. 채워지면 먹어야 했고 채워지지 않으면 채워야 하는 밥이나 빵이 담기는 밥그릇. 언제나 기꺼이 나의 허기를 기다리는 그 밥그릇에게 나는 또 어떤 선택의 시간을 담아두고 있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나는 그저 심장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글을 써왔다. 때론 그 글들은 어떤 선택의 길을 보여주기도 했고 때론 선택의 문턱에서 일단 문을 닫고 생각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이든 그것은 누군가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나의 부모가, 그리고 내 자신조차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 숙명일 수밖에 없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그것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래 삶이란 것에는 어떤 정답이란 존재할 수 없을 테니까. 누군가 옳다고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 주저하는 사이 그 선택을 기다리던 누군가는 어느새 곁을 떠나 사라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 누구도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용기 있는 하나의 선택이 그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 첫사랑처럼 설레는 맘으로 나는 선택의 기로에 슬며시 나를 내려놓는다. 누군가는 내 손을 잡고 힘내라고 나를 선택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게 누구든 어디에 있든 찬란하고 멋진 내 편이라 믿으며….


목차


전갈자리 아내 09
거미 45
중독 75
숲 105
아이스피쉬 135
아주 가벼운 인사 167
포르말린 205
로제트 235
작가의 말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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