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경은 울산 토박이 동시인이다. 2014년 '아동문예'로 등단했는데, 두 번째 동시집 『두레 밥상 내 얼굴』이 2019년 ‘올해 좋은 동시집’으로 선정될 만큼 두각을 드러내는 신인이다. 불교 동요 작사 부문과 황순원 ‘디카시’ 공모에서도 수상하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지녔다. 시인은 대대로 울산에서 살아온 토박이로서 세 번째 동시집『하늘만침 땅만침』에서는 울산 지방 사투리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엄마가 무친 미나리
식초를 많이 넣어
엄청 새구랍다.
아빠는 맛있다며
코를 벌렁거리며 먹는다.
'동시 ‘새구랍다’ 전문'
이 동시에서 ‘새구랍다’ 자리에 표준어인 ‘시다’를 넣으면 어떤 맛이 날까? 그야말로 ‘말맛’이 하늘과 땅 차이다. ‘새구랍다’는 단번에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신맛을 나타내는 형용사인 동시에 그 맛이 점점 퍼져나가는 듯한 동사적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사투리는 고리타분하거나 촌스러운 시골말이 아니라 생생한 생동감을 잉태하고 있다. 박해경은 그 점을 강조하고 싶고, 스스로 매료당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 아빠 헤어지고
큰집에 얹혀사는 나
일기 쓸 때마다
‘큰’이라는 글자를
문캐고
엄마 아빠라고 쓰고 싶다.
누구에게 들킬까 봐
내 마음도
쓱쓱 문캔다.
'동시 ‘문캐다’ 전문'
‘문캐다’는 낯선 말이다. 그러나 이 시를 읽어보면 그 뜻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큰집에 얹혀사는 나’의 서러움이 배어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여러 사정으로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이기에 ‘쓱쓱 문캘’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도 독자의 마음도 너무나 아프다. 박해경이 세 번째 동시집『하늘만침 땅만침』에서 공을 들인 부분도 이런 점이다. 이제까지 많은 동시집들이 소재주의에 그친 면이 안타까웠는데, 박해경은 사투리를 동시 안에 완전히 녹아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만침 땅만침』은 ‘울산 사투리’를 소재로 한 동시집이 아니라 감동이 있는, 완성도가 높은 좋은 동시집이다.
밤늦도록 놀다가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오던 이모
할머니에게 딱 걸린 날
찔락거리다가 큰일낸다며
야단치는 할머니
'동시 ‘찔락거리다’ 전문'
‘까불다’라면 단순한 장난이 떠오르지만, ‘찔락거리다’라고 하니 왠지 불량기가 있다. 그러니 야단치는 할머니의 성난 표정이 당연하다. 이모는 ‘도둑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옛날에 조금이라도 ‘찔락거려’본 엄마 아빠들이 이 시를 읽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무래도 남몰래 웃을 것 같다. ‘왕년엔 나도 말이야.’ 속으로 말하면서.
‘새빠리게’, ‘끈텅머리’, ‘꾸물탁’, ‘히시 노코’ 같은 생소한 말들도 이 시집에 들어 있다. 낱말의 뜻을 알아보는 재미도 좋지만, 시인이 이 낱말들을 활용하여 어떤 장면과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팔도 사투리가 풍부한데, 이제까지 표준어 정책을 꾸준히 펼쳐온 것도 사실이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한 낱말에는 수만 년의 인류 문화가 스미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사투리도 국보나 보물처럼 아껴야 하고 일상에서 자연스레 쓸 수 있어야 한다.
박해경의 세 번째 동시집『하늘만침 땅만침』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좋은 시일수록 자꾸 소문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