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실 생활의 각종 경제적 거래를 위해 돌고 도는 돈의 매개체가 화폐이다. 요즈음 신용카드 등을 비롯한 많은 비현금결제수단이 널리 사용되면서 굳이 화폐가 아니더라도 돈의 역할을 하는 지급결제수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사정으로 혹자들은 ‘현금화폐의 종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현금화폐를 덜 쓰는 세상은 되겠지만 사람들끼리 살가운 정을 몸소 나누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가 우리 앞에 지속되길 바란다면 앞으로도 현금 화폐는 없어서는 안 될 우리 국가와 사회의 믿음직한 공공재가 될 것이다.
화폐는 비단 돈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 나라 역사와 문화는 물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참된 가치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화폐는 한 나라를 가장 잘 대표하는 최고의 상징이 되고 그 재료의 생산과 제작은 물론 도안 소재의 창조와 구성, 특수한 인쇄 기법 등을 망라하는 종합 예술품이라고도 한다. 설령 그러한 화폐가 사라진다 해도 그것이 함축한 역사?문화적 자존심과 예술적 향기는 아름다운 시어로 영원히 기록될 충분한 이유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기 ‘화폐 제국의 숨결’은 바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 화폐에 담긴 역사?문화적 자존심과 예술적 향기를 시와 삽화의 형식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아울러 그에 얽힌 사연들을 사실 등에 기초하여 이야기로도 풀어냄으로써 화폐의 멋과 올바른 삶의 가치를 곱씹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즉 눈에 보이지 않고 쉽게 인지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 변화와 각종 기술혁신 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인간의 따뜻한 정과 더불어 사는 지혜는 우리 삶의 중요한 동력임을 화폐에 대한 미적 탐구를 통해 제시하려는 것이다.
또 화폐에 대한 시와 이야기에 더하여 독자들에게 드리는 [부록]의 선물로서 마련한 ‘무전(無錢)의 가을 그리고 인생의 동화 속으로’는 사계절 중 특히 채움에서 비움으로 가는 가을의 정취를 감상하며 돈 없이도 그리움과 우정을 나누었던 삶의 에피소드를 시로 공유토록 한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만큼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국은행에서 줄곧 통화금융은 물론 실물경제를 분석해온 이코노미스트로서 그리고 경제학을 좋아하는 경제학 박사로서 닦아온 경제적 논리는 일견 시적인 감수성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다수의 합리적 사고에서 더 나아가 늘 국민 마음의 숨결과 함께 하는 공감은 오늘날 제반 경제정책의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물과 인간의 행태 등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적인 영감과 감수성은 경제전문가들에게도 나날이 그 필요성이 더해가고 있다고 본다.
본 책이 나오기까지 한국은행의 박운섭 국장님과 장희지, 김하은 님을 비롯한 발권국 직원들은 원고 교정과 자료 편집 등에 큰 도움을 주었고 특히 필자의 큰 형수님이자 화가인 안성옥 작가님은 기꺼이 아름다운 삽화를 정성껏 그려 주셨다. 이분들이 베풀어 준 정성과 은혜에 특히 감사 드리며 화폐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한 한은과 그 가족 여러분 그리고 지난해 많은 가을의 추억을 안겨준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제26기 고위정책과정의 동기들께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끝으로 늘 부족한 필자를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아내, 부모님, 형님들 그리고 아들과 딸에게도 한없는 고마움을 전하며 이 책의 들어가는 글을 맺는다.
2019년 가을의 언저리에서
저자 이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