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이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패권국가가 이를 두려워하게 되어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 BC 431~404)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이 전쟁은 당시 패권국인 스파르타가 급격히 부상하던 아테네를 견제하기 위한 결과였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전쟁의 원인을 밝히는 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전쟁의 결과에 대한 교훈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패권국 스파르타가 신흥 강대국 아테네에게 승리하긴 했지만 결국 스파르타도 몰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오늘날 미중 관계를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견제가 2300여년 전 아테네의 부상과 스파르타의 두려움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엘리슨(Graham Allison)은 지난 500년간 신흥 강대국의 부상으로 기존 패권국과 충돌한 사례 16가지를 분석한 결과 그 중 12개 사례는 전쟁으로 귀결되었고 4개 사례만이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신흥 강국과 기존 패권국 사이의 전쟁 확률이 75%에 이른다는 것을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라는 저서를 통해 밝히고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도 이런 예정된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오히려 긴장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미중 간의 관세 폭탄이 곧 타협점을 찾아 진정되리라 기대했지만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있다. 오히려 관세 폭탄이 무역 전쟁으로, 무역 전쟁이 첨단기술과 통화 전쟁으로, 그리고 패권 경쟁으로 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경제 분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안보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一帶一路)에 맞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고자 한다. 중국은 2019년 4월 베이징에서 150여 국가 및 90여 국제기구 인원 5,000여명이 참석하는 제2차 일대일로 정상포럼을 성대히 개최했다. 37개국의 정상들도 참석했다. 해양과 육지에서 21세기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를 견제하고자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가을, 베트남에서 개최된 G20 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간단하게 언급했다. 미-일-호주-인도를 연결하는 다이아몬드 협력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양-태평양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뜬구름 같았다. 그러나 2019년 6월, 미국 국방부가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Indo-Pacific Strategy Report)를 발표하자 전략의 목표, 수단, 방법들이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외교, 경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여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동맹 및 파트너들과 어떤 분쟁에 대해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Preparedness)하고 또 기존의 동맹 및 새로운 파트너들과 강력한 파트너십(Partnerships)을 유지하며 지역 내의 각종 요소들과 네트워크(Networked Region)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도 주변의 도시국가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했듯이 미중의 긴장이 높아지게 되면 미국과 중국도 주변국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할 것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 없는 한국 안보를 생각할 수 없듯이 중국 없는 한국 경제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취약성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할지, 또는 위협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할지가 관건이다. 전개되는 상황이 비관적일수록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한 원칙 수립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 저서를 통해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혜안이 함양되기를 기대한다.
초판이 발간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었다. 10년 동안 6번의 개정판을 낼 수 있었으니 필자로선 행복하다. 물론 그 책임감도 크다. 본 저서가 국가안보에 대한 보편적 성격의 이론서라고 한다면 북한의 위협과 이에 대한 한국의 취약성에 초점을 맞춘 특수한 성격의 정책서도 필요하다. 이에 저자와 동료교수는 『한국안보: 위협과 취약성의 딜레마』(파주: 법문사, 2019)를 공저했다. 두 저서가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국가안보에 관심이 많은 분들한테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