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2017년 4월 30일.

보장된 정년이 몇 년 남았는데 사표를 내고 퇴직하였다.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너무 많은 사건 현장에 나가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가는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일들은 후배들에게 맡겨두고 떠났다.

길고 긴 터널을 겨우 빠져나온 느낌이 들었다.

퇴직이라는 것은 그런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경찰이 처음 프로파일링을 시작한 것은 2000년 2월 9일이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CSI(Crime Scene Investigator)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경찰에서 처음으로 이 팀에 발령이 나면서 프로파일러가 되었다. 당시 과학수사실장 윤외출(현 경무관)이 그냥 한번 해보라는 말을 믿고 시작하였다. 생소한 일을 바라보는 조직 구성원들의 시선은 무심하였다. 그러던 중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처음 경험하는 사건을 분석하면서 팀원도 없이 혼자 분석을 한답시고 돌아다니며 고군분투하였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검거되고 난 후 나는 그와 오랜 시간 면담을 하였다. 그에게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프로파일러의 삶과 한국의 프로파일링은 시작되었다. 프로파일러는 범죄심리학자와 혼동되어 지칭된다. 프로파일러는 범죄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현장에 출동하여 범죄현장에 남겨진 증거물과 범죄자의 행동을 분석하여 범인을 프로필한다. 범죄심리학자들은 범죄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실제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나가서 범죄자를 프로필하지 않는다. 프로파일링은 범죄심리학자들이 연구한 많은 내용과 다양한 학문을 융합하여 응용하는 실제 사건 수사를 지원하는 기법이다. 

어떤 방식으로 프로파일링을 하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는 매뉴얼은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은 범죄현장에서 프로파일러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분석하는지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어쩌면 다양한 이론과 사례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사례분석 부분은 현직 후배 프로파일러들이 함께 작성한 분석 자료들을 참조하였다. 앞으로 더욱 발전되어 심도 깊은 분석이 진행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