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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말

여자의 말

  • 이바라기노리코
  • |
  • 달아실
  • |
  • 2019-04-03 출간
  • |
  • 228페이지
  • |
  • 145 X 225 mm
  • |
  • ISBN 97911887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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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옮긴이의 말

한국과 한글과 시인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의 여성 시인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를 통해 전쟁으로 청춘을 빼앗긴 일본 여성의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 이 시는 일본 현대시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일본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우리 승리하리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세계적인 포크 송 라이터 피트 시거(Pete Seeger)는 이 시에 감명을 받고 「When I was Most Beautiful」이라는 곡을 만들어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이바라기는 일본이 패전하고 12년이 흐른 1957년, 31세 때 이 시를 썼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가장 예뻤던 시절에 대한 향수,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안타까움이 있기 마련이다. 여성의 자기주장이 쉽지 않았던 시절, 이바라기는 당당하게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힘주어 말하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이 시구는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여성에게 기억의 저편에 묻어둔 시간을 환기시키는 힘과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소설가 공선옥은 자전적 장편소설의 제목을 ‘가장 예뻤을 때’라 지었고, 문정희 시인도 동명의 시를 썼다. 이처럼 한국에서 이바라기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시인으로 주로 알려져 있는데, 이바라기는 일본의 현대 시인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시인이기도 했다.
이바라기는 오십의 나이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수필집 『한글로의 여행』(1986)은 이바라기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낀 한글의 매력,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 한일 간의 언어 비교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실린 글 중 윤동주의 시와 생애에 대해 쓴 산문 「윤동주」는 일본에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 글에 감동한 한 편집자의 노력으로 일본 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에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기까지 하였다. 일본 각지에서 지금도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임이 열리고 있는데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바라기의 감동적인 글이 불씨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바라기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강은교, 김지하, 홍윤숙, 조병화, 신경림 등 한국 현대 시인의 작품을 번역하고 소개한 『한국 현대 시선』(1990)의 출간으로 이어졌고, 이 번역 시집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바라기는 사실 국가 권력 등의 권위에 영합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그 어떤 문학상의 수상도 거부했는데 『한국 현대 시선』만큼은 예외였다. 이 시집이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자 이 상은 한국 시인들을 위한 상이라 여기며 기쁘게 수락했다고 한다.
이바라기가 한국어를 배우게 된 직접적인 동기 중 하나는 남편과의 사별이었다. 이바라기는 49세에 남편을 잃고 지인에게 당시 남편의 뒤를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했을 만큼 큰 충격과 슬픔을 감내해야 했다. 이때 시작한 것이 한국어였고,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면서 그 슬픔을 조금씩 극복해 갔다. 시 「이웃 나라 말의 숲」에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낀 기쁨과 설렘, 당혹감과 즐거움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바라기는 한국어를 배우기 전에도 한국과 관련한 시를 몇 편 썼다. 주로 고구려?백제 등 고대 한반도와 일본과의 교류에 관한 내용이거나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이 당하는 차별의 부조리함에 대해 쓴 시이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며 직접 한국을 여행하고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시인의 시선은 일반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한층 가깝게 다가갔다. 「총독부에 다녀오마」, 「그 사람이 사는 나라」 등의 시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에 관한 시가 아니더라도 그의 시 곳곳에서 ‘아리랑, 판소리, 막걸리, 철썩철썩’ 등의 한국어 표현이 등장하여 시인의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이바라기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은 『기대지 않고』이다. 이 시집은 시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5만 부가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바라기는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대표작 「유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시인이었지만, 이 시집이 발간되면서 ‘기대지 않고’의 시인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추가되었다. 이 시집이 일본인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팔려 나가자 이바라기는 ‘시’라는 것이 본래 그렇게 팔리는 것이 아니라며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그러나 시집 『기대지 않고』는 당시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사회에 대한 우려와 반성 속에서 국가와 시류에 농락당한 뼈아픈 과거를 기억하는 일본인에게 많은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이바라기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용기에 대한 존경과 이를 응원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마음도 이 책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바라기는 남편과 사별한 후 30여 년을 홀로 살며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일련의 사부곡(思夫曲)에 담아 고이 간직하였다. 이 시들은 생전에 공표되지 않았고, 사후 일 년이 지나 『세월』이라는 제목의 유고 시집으로 출간되며 발표되었다. 이 시집에 실린 39편의 시에는 시인의 남편에 대한 사랑, 절절한 그리움과 사모의 정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조차도 갈라놓지 못한 시인의 남편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의 마음이 이 시들에 오롯이 녹아 있다. 사별의 슬픔을 가슴속에 묻은 채 망부와 해후할 날을 고대하며 이승에서의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있는 힘껏 살아간 시인의 모습은 읽는 이들을 숙연하게 한다. 본 시선집의 ‘4부. 연가’는 유고집에 실린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바라기는 남편과 사별하고 자신 역시 병마에 시달리면서 순탄하지만은 않은 만년을 보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죽음을 대비하여 작별의 편지도 정성껏 손수 준비해 두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이바라기는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집에서 2006년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갑작스러운 출혈로 인한 죽음이었다. 이바라기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들에게 이바라기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담긴 편지가 전달되었다.

이번에 저는 0000년 0월 0일, 00000으로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생전에 적어둔 것입니다. 제 뜻에 따라 장례식이나 영결식 등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 집도 당분간 주인 없는 집이 될 것이니 조의금이나 조화 등 그 어떤 것도 보내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시 되돌려 보내는 무례를 범해야만 할 테니까요. “그 사람도 이제 떠났구나.” 하고 한순간, 그저 한순간 기억해 주시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당신과 나누었던 따뜻한 교류의 시간은 보이지 않는 보석과 같이 가슴 깊이 간직되어 빛을 발하며, 제 인생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었는지 모릅니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별의 인사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바라기의 조카 부부가 이바라기가 빈칸으로 남겨 둔 사망 날짜(2006년 2월 17일)와 사망 원인(지주막하 출혈) 부분을 채워 이바라기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지인 250여 명에게 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기대지 않고’의 시인다운 마지막이었다.

***
이바라기는 1926년에 오사카에서 태어나 1943년에 제국약학전문학교(현 도호(東邦)대학약학부)를 졸업한 후 희곡과 동화 등을 투고하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 잡지 『시학』에 시를 투고하면서부터였다. 이바라기는 희곡을 쓰면서 언어와 시적인 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히 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후 동인지 『가이(櫂)』의 창간 멤버로 활약하는 등 본격적인 시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네부카와의 바다」(1953), 「대화」(1954), 「한 번 본 것」(1955), 「유월」(1956), 「보이지 않는 배달부」(1957)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첫 시집 『대화』(1955)를 시작으로 『보이지 않는 배달부』(1958), 『진혼가』(1965), 『인명시집』(1971),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1977), 『촌지』(1982),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1992), 『기대지 않고』(1999)에 이르기까지 이바라기는 총 8권의 시집을 냈다. 이바라기의 시에는 사회와 논단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 정신과 폭넓은 사회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바라기는 국민을 노예로 만드는 국가 권력과 선동을 일관되게 비판하면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사해파정」(1975)에서는 전쟁의 책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기상천외한 말로 대답을 얼버무린 일왕 히로히토와 이를 묵인하는 군중에 대한 분노와 조소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일왕을 비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일본 사회에서 이 시는 매우 이례적일 뿐 아니라 일본 시가 문학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보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2부. 사해파정’에 수록된 시들을 통해 전쟁을 경험한 세대였던 이바라기가 표현하는 강하고도 솔직한 자기주장과 굽히지 않는 소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바라기의 본명은 미우라 노리코(三浦のり子)이다.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이바라기(茨木)라는 필명을 쓰게 되었는데, 이 이름은 일본의 전통극의 하나인 가부키(歌舞伎)의 나가우타(長唄)에서 따온 것이다. 이바라기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한쪽 팔이 잘린 요괴의 이름이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한 이바라기는 자신의 팔을 가져간 상대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팔을 보자마자 요괴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 상대에게서 그 팔을 빼앗고는 크게 웃으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라가 사라져 버린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기필코 되찾고야 말겠다는 이바라기의 강한 의지가 이 필명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보았듯이 국가나 시류에 휘말렸던 자기 자신에 대한 뼈아픈 회한이 이바라기 시의 출발점이다. 건전한 사회의식과 함께 동시대 여성들의 슬픔과 분노를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희망을 전하는 이바라기의 시는 많은 일본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바라기의 시에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많다. 한 평론가는 이바라기를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발상의 핵으로 삼아 거기에서부터 시를 쓴 대표적 전후(戰後) 여성 시인이라고 평했다. 이바라기 시의 참신함과 독자성은 여성 시인으로서 입지를 관철하면서도 종래의 ‘여성성’에 안주하거나 그 틀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오히려 이를 과감하게 깨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 점에 있다. ‘1부. 여자의 말’에 수록된 작품 중에는 가부장적 잔재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일본에서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부조리한 현실과 중압감, 그리고 이에 저항하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는 여성으로서의 몸부림, 섬세한 날갯짓, 그리고 자기 성찰을 생생하게 전하는 시들이 많아 큰 울림을 준다.
이바라기는 시의 본령인 언어에 대해서도 남다른 철학과 지론을 가졌던 시인이다. ‘5부. 시슈(詩集)와 시슈(刺?)’에는 나날이 거칠어지고 품격을 잃어가는 일본어에 대한 우려와 안타까움을 담은 시들, 시인에게 큰 울림을 준 시들, 시인의 역할에 대한 사유 등이 담긴 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시 「두 명의 미장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바라기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였고,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갈망하였다. “좋은 시란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애처롭게 여기는 감정 또한 끌어내 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바라기의 시론집 『시의 마음을 읽다』(1979)는 시 입문서로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이다. 『현대 시선』의 후기에서 이바라기는 한국시를 번역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좋은 시는 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민족의 감정과 이성의 가장 양질(良質)인 부분의 결정체이자 핵이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마음 깊은 곳에서 고요히 살아 숨 쉬는 천연 진주와도 같은 것. 지금까지 그것의 소재(所在)를 모르고 있었다니 이런 아까운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처럼 이바라기의 시와 글에는 솔직하고 섬세한 언어 감각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시선이 녹아 있다. 관념을 배제한 평이하면서도 섬세한 시어는 ‘아름다운 말’에 천착해 온 시인의 부단한 노력으로 얻은 언어의 결정체이다. 이바라기의 시에서는 애매한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며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은 개인의 삶을 뛰어넘어 보편을 지향하고 있다. 차별받고 박해당하는 인간의 아픔을 보듬고 인간성 회복을 염원하며 국가나 민족의 족쇄에서 해방된 개인과 대화하며 소통을 갈구하는 마음은 이바라기 시의 근간을 이룬다. ‘현대시의 장녀’, ‘날카로운 비평 정신’, ‘홀로 서는 지성’ 등의 수식어에 걸맞게 시인 이바라기는 지성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 없이 늘 깨어 있는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6부. 류리엔렌의 이야기’는 강제 징용으로 일본의 탄광에 끌려가 혹독한 노동을 견디다 못해 도망한 중국인 류리엔렌의 실화를 그린 장편 서사시이다. 탄광을 탈출해 도주한 류리엔렌은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른 채 14년의 세월을 산속 동굴에서 숨어 보냈다. 이바라기는 그의 수기를 읽고 「류리엔렌의 이야기」를 썼다. 이 시에서 이바라기가 유일하게 새롭게 창작한 부분은 류리엔렌이 개울가에서 개척민 소년과 만나는 장면이다. 수기에는 류리엔렌이 마을에서 훔친 물건으로 연명하면서도 어린 아이의 이불만은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단서로 이바라기는 그가 개울가에서 만난 꼬마 아이와 마치 조카와 삼촌처럼 함께 물장구를 치며 노는 장면을 만들어 넣었다. 이바라기는 강제 징용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단 한 순간만이라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장면을 상상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꼬마 아이는 곧 시인의 분신이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꼬마는 “어린 시절, 그때 나누지 못했던 대화 / 그 틈새를 / 지금 똑똑히 자신의 말로 메워보고 싶다고” 다짐한다. 대화와 소통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린 가해국 일본의 역사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발한다.
이바라기의 시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나 「오오토코를 위한 자장가」, 「어린 소녀가 생각한 것」, 「여자아이 행진곡」처럼 종종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다. 「류리엔렌의 이야기」는 김소운의 손녀인 싱어송 라이터 사와 도모에(澤知?)가 노래로 만들어 공연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김소운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시와 민요를 뛰어난 일본어로 번역해 내어 일본 시인들을 매료시킨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이바라기에게 지인들이 한국어를 왜 배우게 되었는지를 묻자 대답을 위해 기억을 더듬어 가다가 그 원점에 소녀 시절 접했던 김소운의 『조선민요선』(1941), 『조선시집』(1943)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내용이 『한글로의 여행』에 나온다. 이제는 그의 손녀가 음악을 통해 이바라기의 강렬하고도 올곧고 아름다운 시 세계를 일본 사회에 알리고 있다. 문학과 예술이 이루어 내는 작은 기적 같은 일들을 앞으로 더 많이 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역자가 처음 이바라기 시인을 만난 것은 1991년의 일이었다. 『한국 현대 시선』의 출간을 누구보다도 기뻐하셨던 대학원의 하가 토오루(芳賀徹) 지도 교수님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세계비교문학학회 특별 프로그램의 하나로 한국의 시와 일본어 번역 시를 낭송하는 기획을 제안하셨고, 원시 낭송을 맡는 행운이 역자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그해 봄, 도쿄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이바라기 선생님과 처음 만났다. 이바라기 선생님은 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당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일본의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던 역자를 많이 아껴주셨고, 때로는 어머니이자 선생님처럼, 그리고 많은 경우 친구처럼 대해주셨다. 당시 시인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아 저녁에 전화로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 일들이 이제는 그리운 추억으로 남았다. 시인은 부드러우면서도 위엄과 기품이 있었다. 예순을 훌쩍 넘긴 시인에게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썼던 30대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시의 말미에서 힘주어 말했던 ‘루오’의 그림처럼 넓고 깊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넘쳐흘렀고, 그런 시인의 모습에 역자는 압도되고 매혹되었다.
이바라기 시를 언젠가 꼭 번역을 해서 한국에 알리고 싶다고 했을 때 기뻐해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후 대학 일에 쫓기다 보니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부고를 알리는 시인의 마지막 편지를 받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번역을 하기 시작하였고, 몇 편의 논문도 썼다. 그러나 시 번역이 완벽할 수 없고 만족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보니 번역한 시들을 좀처럼 책으로 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2년 전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춘천에서 발간하는 인문 잡지 『태백』의 편집장 박제영 시인이 이바라기 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싶다며 연구실을 찾아와 주었고, 그의 제안으로 시선집 출판도 서서히 구체화되었다.
이바라기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이렇게 부족하나마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처음에는 5, 60편 정도의 작은 시선집을 생각했는데 강제 징용 문제 등으로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게 되면서 이바라기 시인의 존재를 한국에 알리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중국인 강제 징용 문제를 다룬 「류리엔렌의 이야기」도 추가하기로 했다. 『한글로의 여행』에 수록된 수필 「윤동주」와 「망우리」는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이바라기와 한국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라 생각되어 시선집에 수록하였다.
강은교 시인께서 발문을 써주시는 행운을 얻을 수 있어 너무도 기쁘고 감사하다. 이바라기의 『한국 현대 시선』에 수록된 첫 번째 시가 강은교 선생님의 「숲」이다. 도쿄의 세계비교문학대회장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시를 낭독했던 날이 떠오른다. 이바라기 시인과의 만남은 역자를 시의 숲으로 이끌어 주었고, 시를 가까이 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지금 새삼 되새기게 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여기 일일이 다 열거하지 못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바라기 시인은 지금 그의 남편 고향인 야마가타(山形)의 한 산사에 고이 잠들어 있다. 아직까지 묘소를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제 이 책을 들고 찾아가 영전에 바치면서 늦었지만 오래전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보고드리고 싶다.

2019년 봄
성혜경


목차


1부. 여자의 말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더 강하게
악수
낙오자
여자아이 행진곡
여자의 말
호수
대학을 나온 사모님
화낼 때와 용서할 때
임금님의 귀
어린 소녀가 생각한 것
바다를 가까이
혼자일 때 생기발랄
바보 같은 노래
나의 카메라
오오토코를 위한 자장가
12월의 노래
헤아리다
처녀들

2부. 사해파정

영혼
네부카와의 바다
대화
모르는 것이
한 번 본 것
나무 열매
사해파정(四海波靜)
계보
없었다

히나부리 노래
기대지 않고

3부.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의 감수정 정도는
유월
학교, 저 불가사의한 장소
도미
보이지 않는 배달부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날
살아 있는 것?죽어 있는 것
형제
발자국
지천명(知天命)
행방불명의 시간
어떤 존재
시대에 뒤처진 사람

벚꽃
두 번 다시는
물음
나무는 여행을 좋아해

웃어봐

4부. 연가

단 한 사람

썰매

길모퉁이
점령
연가
짐승 같은

밤의 정원
서둘러야 해요
세월
옛 노래

5부. 시슈(詩集)와 시슈(刺繡)

방문
왁자지껄한 와중에
듣는 힘
저 녀석
감정의 말라깽이
꽃 게릴라
눈동자
기억에 남는
사행시
시슈(詩集)와 시슈(刺繡)
두 명의 미장이

6부. 이웃나라 말의 숲

장 폴 사르트르에게
칠석
얼굴
고마(高麗) 마을
다카마쓰 고분
반복의 노래
이웃나라 말의 숲
총독부에 다녀오마
그 사람이 사는 나라

7부. 류리엔렌의 이야기

이바라기 노리코의 수필 2편
윤동주
망우리

발문_‘구름의 연기’ 또는 인연 앞에서 / 강은교 시인
옮긴이의 말_한국과 한글과 시인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의 여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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