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버스가 지진해일에 휩쓸려 하늘나라로 간 여섯 살 언니
그리고 6년이 지난 후 크리스마스에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리’와 ‘주리’라는 인형이 세계 여행을 마치고 2016년 크리스마스에 소녀의 품으로 돌아왔다. 두 인형이 세계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2015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소녀가 산타 할아버지 앞으로 쓴 편지였다.
“저와 아이리 언니 인형이 산타 할아버지와 함께 세계 여행을 하게 해 주세요.”
2016년 크리스마스 아침.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사토 주리는 머리맡에 놓인 꾸러미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빨간 리본으로 묶인 커다란 선물 상자를 서둘러 열었다.
안에 사진집이 한 권 들어 있었다. 귀여운 인형 한 쌍이 하와이, 뉴질랜드, 베네치아, 시드니, 싱가포르…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었다.
둘 다 여자아이 인형으로 이름은 ‘아이리’와 ‘주리’다.
주리는 언젠가 언니와 세계 여행을 하고 싶었다. 언니와 함께 가지 못하게 된 주리는 자기들 대신 아이리와 주리 인형을 여행 보내 주고 싶었다.
주리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 이듬해, 두 인형은 스물여 곳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대지진이 일어난 지 6년을 앞두고 소녀는 소원을 이루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은 숱한 생명을 앗아갔다.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미야기현이다. 미야기현에서 바다와 접한 이시노마키시·오나가와쵸·히가시마츠시마시 세 지역에서만 약 5천 명이 희생되었는데, 여섯 살 ‘아이리’가 살던 이시노마키시에서 3천 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그러나 재해가 일어나고도 일주일 동안 미야기현의 이 세 지역은 피해 상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기와 통신이 복구되고서야 세상에 참상이 알려졌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 아픈 죽음 가운데 어른들이 지키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리 어머니 사토 미카 씨는 한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아이들을 살릴 기회가 있었다고 전했다.
연안 지역으로 내려간 유치원 버스가 산 기슭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대기할 때 선생님 두 명이 버스를 유치원으로 돌리라는 연락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때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으로 함께 돌아갔더라면 다섯 아이는 살았다. 실제 초등학교에 귀가하지 못하고 남았던 초등학생들은 지진해일이 몰려오자 산으로 대피해 모두 무사했다.
왜 아이들이 희생되었는지 진상을 알아내려고 부모들이 나서서 찾아내고 민사소송으로 유치원 측의 잘못을 따지기는 했지만, 딸을 잃은 어머니는 모든 시간을 되짚어 자신에게 화살을 겨누며 ‘~했더라면’, ‘~하지 않았더라면’을 계속 복기할지 모른다. 그날 아침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자는 아이를 애써 깨우지 않았더라면, 그 유치원에 입학시키지 않았더라면, 이곳으로 이사 오지 않았더라면….
사토 미카 씨는 한국 독자에게 당부한다.
“우리가 겪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보다 생명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해야 합니다. 살아 있어야 그다음을 기약하고, 살아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어릴수록 아이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밖에 행동하지 못합니다. 대피 방법을 잘 모릅니다. 어린 생명은 우리 어른이 지켜야 합니다.
내 딸을 포함해 세상을 떠나게 된 아이들이 가장 억울할 겁니다. 미래를 빼앗겼으니까요.
재해가 일어난 뒤에는 늦습니다.
이 책으로 한국분들이 재해를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를 일로 여기고 대비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