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우리’였던 기억에 드리운 사랑의 풍경들
그 장막에서 지은이는 음악과 영화를 만난다. 그러곤 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그것들에 빠져든다. 그중에서 영화는 그를 위로할 뿐 아니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었다. 결국 그 영화들이 이 책을 세상에 나오게 만든 산파인 셈이다. 수백 편의 영화를 보면서 그는 자신과 닮은 가련한 영화 속 인물을 찾는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홀로 된 그 인물들을 위로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발견은 곧 영화 속 인물에 투영한 자신의 얘기로 연결된다. 그렇게 해서 조각조각 만들어진 글들은 장막 밖으로 흩뿌려졌다. 물론 그 글의 시작은 ‘우리’였던 시간에 대한 격렬한 그리움이고, 자신만을 남겨둔 사람에 대한 복잡한 심경일 테지만. 이 책 『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에 소개되는 열다섯 편의 영화와 글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저마다 다른 사랑에 대한 15개의 영화 속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영화들 곳곳에 그의 꿈틀대는 단상이 겹쳐진다.
영화라는 ‘망원경’으로 관찰한 사랑학에 수록된
너와 나의 사랑, 우리들의 그리움과 외로움
지은이가 밝히듯 영화는 그의 나침반이자 망원경이었다. 그 망원경에서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을 갖게 되었다. 지난 사랑이, 괴로움이, 부당함이, 희망이 모두 영화라는 망원경 안에서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그의 선택은 글로써 그 감정들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삶에는 습작이 없어, 망쳐버린 그림 위에 다시 물감을 뿌리고 어떻게든 이어 나가야 했다.”는 고백처럼. 그가 망원경으로 관찰한 영화 열다섯 편에는 층위가 다른 세상의 사랑법이 각자의 빛깔로 펼져진다. 그래서 너와 나의 사랑이, 우리들의 그리움과 외로움이 영화 속에 연출되는 양 독자들의 귓속을 속삭이듯 다가간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더불어 인생의 습작을 간접적이나마 제공한다는 점이 이 책을 읽는 색다른 관전 포인트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라는 단어에 투영된 사랑과 이별의 변주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법
슬픔과 이별은 아무 예고도 없이 ‘따끔’거리면서 다가온다고 한다. 지은이의 그리움 역시 준비하지 못했던 ‘우리’였던 날의 상실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이 ‘우리’였던 시간에서 한 사람이 이탈하는 순간, ‘우리’라는 말은 ‘우리’라는 의미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혼자 남겨진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상처 입은 존재에 대한 상실감의 덧칠이다. 지은이 역시 어두운 장막 안에서 그 감정을 한없이 키우며 자신을 학대하곤 했다. 그리울수록 그리움이 커져 가기에, 상흔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아픔이 커져 가기에. 하지만 그는 장막 밖으로 던진 수많은 생각 조각들이 많이 쌓이게 된 어느 날, 불현듯이 찾아온 새로운 사랑에 눈뜨게 된다. 아픔을 그대로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성숙이랄까. 그는 말한다. “시린 사랑 앞에 축 늘어진 침잠 외에도 움트고 있는 새로운 사랑이 있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라고. 그러곤 다시 말한다. 장막을 걷고 바라본 세상은 저마다의 사랑으로 색칠하는 곳이라고. 그곳에 자신의 소중한 사랑도 걸려 있다고. 그래서 더욱 애틋하게 추억하기 시작한다고. 상처가 아닌 소중함으로. 더 많은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들을 썼다고. 이 대목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랑을 기억하는 방법들에 대한 가장 소중한 단서를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