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책은 범죄와 비범죄(decriminal)의 경계를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필자가 범죄학을 강의하고 연구하면서 끊임없이 가졌던 의문은 늘 범죄화와 비범죄화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이었고, 누가, 왜,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이슈를 범죄로 혹은 비범죄로 규정지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의 실효성 혹은 참담한 실패에 관한 것이었다.
한때 우리 사회가 그토록 열광하고, 추구하고, 갈망하던 이른바 정의(justice)가 사실은 평범한 시민의식을 가진 시민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상황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지 아니면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 속의 두 인물 중 주인공 샤일록이나 포샤가 될 것인지의 갈등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범죄학을 포함한 형사사법학,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형사사법정책은 범죄와 일탈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전제 하에 쏟아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련 규제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를 내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사회생태학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바로 이러한 모순과 경계선상에 놓인 범죄학계의 이슈들 중 필자가 선정한 가장 대표적인 논제들은 무관용주의(zero tolerance), 낙인, 섹스팅,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 페도필리아, 비행청소년의 시민의식, 사이버게임 중독은 폭력을 부르는가, 피의자의 무죄추정의 원칙, 대중의 알권리, 제노포비아를 불러일으키는 보도태도, 핵티비즘(hacktivism)과 어나니머스, 정신장애범죄, 마리화나 합법화, 전자발찌의 명과 암, 성범죄자의 취업제한, 성적 소수(LGBT) 수용자의 행복추구권, 만성질환 수용자의 의료권, 고령 수용자의 호스피스권, 수용자 노동의 적정한 대가는 어느 정도일까? 등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이슈들에 대하여 독자들과 함께 비틀어보기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범죄에 대한 무관용주의인 제재가 결국 교도소의 과밀수용을 낳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정시설을 민영화하고, 이 민영화로 교정산업을 활성화시켜 주식시장에 회사를 상장하고 투자자들이 이 교정산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면 이것이 과연 우리가 기대했던 무관용주의의 결과일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것이다.
기실 사회의 어떤 이슈에서든 충돌과 모순이 있고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므로 필자는 더욱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하던 사고에서 약간은 벗어나 범죄와 비범죄의 그 경계일 수도 있는 그러나 결국 구성원들이 문제의식을 가지는 병리적인 현상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사안을 분석하고 보다 지혜로운 의견을 함께 나누길 제안한다.
이 책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는 사회병리학, 신종범죄론, 사회문제론, 사회일탈론 등의 텍스트로 활용될 수 있도록, 그리고 대중에게는 교양서로 읽기에 큰 부담이 없도록 가능한 평이하게 집필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이슈를 뒷받침하는 각종 법령과 관련 통계, 국외의 사례 등을 가능한 최신의 내용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각 이슈별 토론주제를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몰입과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기대와 설렘을 안고 오랫동안 이 책의 출판을 기다렸다. 독자 여러분과도 그 기대와 설렘을 함께 나누고 싶다.
2019년 1월에
계명대학교 쉐턱관에서
저자 허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