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말
“오직 공법(צְדָקָה)을 강물같이, 정의(מִשְׁפָּ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성경 아모스 5장 24절―
천부(天賦)인권, 즉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공법의 핵심 내용이고 공동체가 실현해야 할 정의의 가치 기준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우리 헌법의 기본 성격을 결정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두 축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이다.
개인은 구체적인 삶의 궤적에서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존재로 ‘무연고적 자아(unencumbered self)’가 아니다. 개인은 국가․사회․가정 공동체에 귀속되어 자신의 생명과 자유, 안전과 행복을 보호받고 자신의 인격 형성과 발현의 그루터기로 삼고 있다. 개인은 건강한 공동체가 있어야 천부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건강한 공동체는 그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고 행복하며, 도덕적으로 수준 높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공동체이다.
헌법재판은 공동체의 구체적인 헌법현실을 파악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가치를 구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여정이다. 공동체 구성원의 실천적 삶은 구체적 헌법현실과 공동체의 가치에 구속된다. 헌법재판은 헌법가치와 이념을 단순히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실천적 삶 속에서 헌법가치와 이념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은 헌법가치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체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역사적 가치와 맥락을 파악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공동체의 헌법현실에 대한 고민이 없는 헌법재판은 헌법질서와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며, 사회통합에 역행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은 헌법현실을 보존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여,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헌법재판에서 헌법현실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고려하는 것은 개인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구실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인류가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이므로, 헌법현실과 공동체의 가치를 평가하고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공동체 구성원의 실천적 삶 속에서 가치의 충돌을 해소하고 가치의 조화를 도모하여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하며, 그 본질적 내용이 된다.
헌법재판은 공동체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실현을 추구해야 한다. 헌법재판은 무엇이 인류가 지향하여야 할 공법이고 무엇이 공동체가 실현해야 할 정의인지, 무엇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무엇이 공동체 구성원의 인권인지, 무엇이 인간에 대한 믿음이고 무엇이 공동체의 신뢰인지를 숙려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은 이런 숙려 아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가치를 구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면서 인류가 지향하는 공공선과 공통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지난 6년간(2012. 9. 20~2018. 9. 19)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구현되며,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로서 국민 모두가 풍요로운 가운데 도덕적으로 수준 높은 건강한 국가공동체가 성취되기를 소망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역사 앞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헌법재판에 임하도록 노력하였다.
부족하지만 이러한 경험과 의견을 정리해 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현안에 대해 헌법적 관점을 소통하고 숙려함으로써 헌법가치를 구현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책자를 발간하면서, 이제 북한 땅에서도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말하고, 자유롭게 신앙하며,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 땅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본다.
그동안 부족하고 허물이 큰 저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가족의 사랑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고귀한 인품과 실력으로 헌법적 가치와 이념을 일깨워 주시고 인생의 가르침을 주신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 소장님과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님, 이 책을 발간하기까지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안성호 한국행정연구원장님, 박균성, 장영수, 한수웅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이 책자 발간을 기획하고 총괄한 오영신 부장검사님과 내용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데 함께한 박억수, 김성주, 신대경 부장검사님, 이영남 부장판사님, 김광욱, 정주희 연구관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자의 출간에 도움을 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 임재무 이사님과 이승현 과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이 책을 하나님, 국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에 가신 어머니 홍명자 권사님께 바친다.
2018. 12. 25.
안 창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