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늘 이야기를 찾는다!
짧은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이야기는 길다. ‘재잘재잘’ 참 많은 이야기들이 아이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듣다 보면 저 작은 이야기들이 아이에게는 그렇게 크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조숙화 시인의 신작 동시집 ‘로봇인 줄 아나봐’에 수록된 동시들을 읽다보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아이들은 늘 이야기를 찾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날 보내는 모든 순간들이 이야기로 저장되는 아이들의 세계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지하철에서 자는 척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 경험이 아주 큰 이야기로 남아있고(비밀), 자꾸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의 나이가 속상한 이야기로 저장되어 있으며(걱정), 비 갠 후에 산을 감싸는 안개를 보면서 상상을 덧붙여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비 갠 후).
구름 식구들 / 나들이 보내고 // 하늘은 / 파란 / 바다를 닮아간다 // 푸른 꿈들이 / 익어 갈 때면 // 나가고 싶어 // 살며시 문 열어 보는 / 밤톨 형제들
- ‘가을’ 전문
어느 가을 날,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아이는 파란 하늘을 보며 바다를 떠올리는데, 그 하늘 한 쪽에서 익어가는 밤송이가 보인다. 바다를 닮아가는 하늘에서 어느새 밤톨 형제들의 옥신각신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옮겨진다. 스쳐지나갈 수 있는 흔한 가을의 한 장면이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깊은 이야기가 된다. 시인은 작품 속에 그렇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것은 아이들의 특별한 관찰력 덕분이다.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비가 내린 뒤 텃밭에서 애기호박, 오이, 옥수수가 자라는 모습을 이야기로 저장한다(텃밭). 재활원 마당에 등장한 간이 수영장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의 신나는 표정을 놓치지 않고(오늘은), 공항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어른들의 대화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뭐가 다르지). 관찰하지 못하면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또한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아이들의 솔직한 감정이 잘 녹아 있다. 엄마의 지나친 간섭에 속상해 하는 아이의 이야기(나는 뭐야), 병원에 계신 아빠의 회복을 바라는 간절함(그게 아닌데), 쉽게 만날 수 없는 무궁화에 대한 안타까움까지(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의 솔직한 감정까지 담아내고 있는 동시들이 그래서 더 깊게 공감이 간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느낀 이야기들이 잘 다듬어져서 담겨 있는 동시집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읽으면 아이들의 세계를 더 폭넓게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