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정류는 고요할 ‘정’(靜)과 흐를 ‘류’(流)로 뜻이 모이는 ‘고요한 흐름’이라는 아호를 스스로 취했다. ‘고요한 흐름’은 요란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고여 있는 물도 아니다. 흘러가지만 그 흐름이 요란하지 않고 시끄럽지 않고 분요(紛繞)하지 않고 정(靜)하고 고요하다. 정류는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물이지만, 그 흐름이 조용하여 ‘고요한 흐름’을 이루어 흘러가는 물줄기이다.
- p. 37
선교사의 선교적인 열정으로 대구제일교회는 나날이 부흥했고, 교회의 부흥에 따라 분가형식으로 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1900년 경산 사월교회를 분립하여 개척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구 인근 사방으로 교회가 분립 개척되는 일이 일어나 “1910년 사이에 6개 교회, 1916년 사이에 4개 교회”가 분립 및 개척되었다. 이 중에서 정류와 관계된 몇 교회를 보면 1912년에 서문교회가 분립 개척되었고, 1915년에는 남산교회가 분립 개척되었다. 1924년에는 대구중앙교회가 대구제일교회에서 분립 개척되었다. 특히 남산교회는 설립된 후 크게 부흥하여 “1930년대에 교인 수가 1,000명을 넘었다.”
- p. 73
그때 정류는 처음 40일을 작정하고 야외에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40일 기도가 끝났는데도 아무런 심적인 변화도, 얻는 바도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정류는 100일을 채우기로 하고 60일을 연장하여 기도를 계속했다. 이렇게 정류가 100일을 기도했지만, 정류의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기도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정류의 발이 아프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걷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류는 100일 기도를 다 채우고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정류는 이 사건이 자신의 “일생의 방향을 확정시켜 준”계기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p. 106
정류는 1960년 9월 14일에 요한복음 주해 집필을 시작하였고 1962년 정월에 첫 주해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1975년 1월 31일 마가복음을 탈고함으로써 정류는 자신의 신약 주해를 완성했다. 요한복음 주해를 집필함으로써 시작된 정류의 15년간의 대장정은 마가복음을 탈고함으로써 마치게 되었다. 정류는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이유로 구약성서를 주해할 생각이 없었지만, 친지들의 권고로 신약 주해를 마친 뒤 10년 후에 창세기를 주해함으로써 구약성서 주해를 시작하여 1988년 3월에 출판한 후 1993년 3월 15일에 역대기 주해를 탈고함으로 신구약성서 전체를 주해하는 대장정을 완성했다.
- p. 125
그런데 정류가 찾아가 대화한 학자를 보면 튀빙겐(Tübingen)의 에벨링(G. Ebeling)이나, 케제만(E. Käsemann) 같은 온건한 학자도 있지만, 폰라드(G. von Rad) 같은 구약성서 학자와 보른캄(G. Bornkamm) 같은 신약성서 학자도 있다. 정류는 당시에 세계 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바르트(Karl Barth), 불트만(R. Bultmann), 판넨베르크(W. Pannenberg) 등의 교수들을 방문하여 그들과 학문적인 대화를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 p.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