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언어가 불투명하여 곤혹스럽거나 존재가 비루하여 난감한 것은, 그것들 모두가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뿌리 내리고 있음을 나위 쉰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깨닫는다. 언어는 내 말 속에 깃들지 않았고, 존재 또한 내 정신의 영역에 속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야말로 오히려 언어에 속해 있으며 존재의 한 그림자에 불과함을 수긍하는 마음은 또 어쩔 수 없이 통렬하다. - '머리말'에서
시인이라는 악기를 통해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저 시의 노래는, 그것을 듣는 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침묵의 소리’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내게는 시의 노래가 이 지상의 언어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를 넘어선 언어, 혹은 소리 이전의 소리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 노래는 눈으로 보거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오로지 우리가 ‘마음’이라거나 ‘영혼’이라고 지칭하는 그런 것으로만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소리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감각’과 ‘환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들려오는 것처럼 내게는 느껴진다. - '머리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