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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 최재영
  • |
  • 가갸날
  • |
  • 2018-12-20 출간
  • |
  • 328페이지
  • |
  • 145 X 215 X 26 mm /488g
  • |
  • ISBN 9791187949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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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을 계기로 남북 관계의 지형이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해빙 무드를 타면서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북녘 사회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아직도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북 사회는 최근 들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다. 변화의 속도가 하도 빨라 새 소식을 접한 탈북자들마저 혼돈스러울 정도라도 한다. 평양 시내에 자가용 물결이 날로 늘어가고 상습 교통정체가 일어나며, 마침내 cc tv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영업용 택시는 이북 전역을 누빈다. 음식점 메뉴판에 태블릿 pc가 등장하고 전자기기로 주문을 받는다. 평양에 이탈리아식 피자집(별무리)이 등장하는가 하면 비엔나식 커피 프랜차이점(Helmut Sachers Kaffee)도 문을 열었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스마트폰(아리랑)으로 로동신문을 읽고 게임을 즐긴다. 보급된 휴대폰의 수효가 600만 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최재영 목사는 재미동포로 지난 10년간 금단의 땅인 북녘땅을 가장 빈번히 방문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이북 당국이 보여주는 모습만이 아니라 북녘땅 구석구석을 누비며 이북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때로는 냉철한 기자의 눈빛으로, 때로는 의혹을 가득 품은 검사의 매서운 눈초리로, 때로는 자비한 목자의 그윽한 시선으로 이북 사회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 책의 가치는 가장 최근 북녘 사회의 변화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편견을 넘어선 내재적 접근을 통해 이북 사회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갔으며, 통일지향적인 관점에서 민족의 앵글로 북녘 사회의 모습을 담아냈다. 저자에게는 ‘분단 이후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 다닌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의 국립묘지를 모두 탐방한 사람’, ‘분단 이후 북측의 여러 교회에서 가장 많이 설교한 사람’, ‘분단 이후 현존하는 북측 종교시설을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 …
그런 그에게 ‘분단 이후 가장 먼저 전파의 장벽을 깨고 서울로 카톡과 페이스북을 날린 사람’이라는 기록이 덧붙여졌다. 저자는 평양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이용해 서울로 카톡을 날리고 보이스톡 통화를 성사시켰다. 이 책에는 이에 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소상히 실려 있다.
그의 남다른 시선을 통해 우리는 이북 TV 드라마에서 박정희 대통령 역을 맡아 인기를 누린 재일교포 배우 김윤홍의 명대사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된 이야기며 6·25전쟁시 북으로 간 소설가 이광수가 언제 사망하고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분단의 벽을 허물고자 다양한 프로젝트를 세워 안간힘을 써온 이야기들이다. 빠르게 변모하는 북녘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본문 일부]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평양에 도착해 주말을 보낸 다음에 공식 일정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식사를 하던 중 한국과 미국에 급히 연락할 일이 생각났다.
노인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구순이 지난 모친의 건강이 위중한 상황이라 신속히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모님까지 뇌졸중으로 쓰러져 안부가 걱정되었다.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도 수표가 보관된 장소를 알려주어야 했다. 매월 1일이면 아파트 렌트비를 납부해야 하는데, 수표를 써놓고 그만 보관한 장소를 아내에게 알리지 못하고 떠나왔던 것이다.
또한 방북 일정을 마친 다음에는 한국을 방문해야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날 저녁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강연회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 강연과 언론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평양 체류기간 중에도 한국과 미국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내원 선생, 미국과 한국에 긴급히 연락할 일이 생겼으니 아무래도 오늘 시간을 좀 내서 고려링크 통신국에 가야 할 듯합니다.”
“아, 필요하시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손전화(핸드폰)로 사용하는 국제전화와 인터네트가 생각보다 료금이 비싼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내원을 통해 담당부서에 외국인 전용 모바일 심카드 구입을 요청했다.
다른 때는 호텔 객실에 연결된 유선 인터넷을 노트북 PC와 연결해 30분당 얼마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트북을 가져오지 않아 모바일 전용 심카드를 구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WCDMA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안내원은 삼성 제품인 내 스마트폰을 달라고 하더니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기능과 버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우수한 신세대 안내원이다 보니 외국인 전용 이동통신 서비스나 기능을 제법 잘 아는 눈치였다.
그는 내 폰을 해체해 배터리가 끼워진 뒷면에 적힌 코드와 사양을 확인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WCDMA(광대역 부호분할 다중접속) 방식이 아니라서 심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기종이라고 알려줬다. 미국이나 한국은 주로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인 반면, 중국과 북한에서는 WCDMA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최목사님의 손전화는 저희와 같은 WCDMA 방식이 아니라서 고려링크 통신국에 가지고 가봐야 어차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나도 무선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아는 편인데…. 삼성이 남조선 제품인 것은 아시지요? 이 손전화는 ‘4G LTE’ 기능입니다. WCDMA 방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심카드만 구입하면 평양에서도 문제없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 아무튼 저는 WCDMA 방식이 아니면 무조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급하게 연락하실 일이 있으면, 저희가 잘 아는 중국동포 사업가에게서 손전화를 잠시 빌려올 테니, 그걸 사용하십시오.”
“남의 전화기를 신세지면 되나요. 서로가 불편해서 안됩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이번 체류기간에는 국제전화를 빈번히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빌리는 정도로는 안됩니다.”
“안 그러면 미국 통화는 호텔방에서 교환한테 연결해달라고 해서 사용하시고, 인터네트는 가까운 량각도호텔 통신빡스(부스)에 가서 사용하시면 될 텐데요.”
안내원은 자신의 손전화 뒷면을 열어 ‘WCDMA’라고 쓰인 글자를 보여주며 그 같은 기종의 전화기라야 심카드 사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호텔의 국제전화는 남한과의 통화가 아예 차단되어 사용할 수 없으며, 호텔에 구비된 인터넷 부스는 이메일 발신 기능만 가능한데다 보안 여부도 불투명했다. 어떻게든 심카드를 구입해야 했다.
평양을 비롯한 이북의 인터넷과 와이파이 사용 실태가 어떤지 알고 싶은 이유도 컸다. 심카드를 구입하는 절차와 사용방법, 그리고 이북 주민들의 실제 사이버 활동 모습을 확인해 널리 알리고 싶었다.
고려링크가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는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해외 사이트 접속에도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카페트(카톡,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인기 있는 SNS나 탱고(Tango), 스카이프(Skype), 바이버(Viber) 같은 영상통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메신저가 실제 가능한지 몹시 궁금했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증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외부 세계에서 자국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정보가 유입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아직 구글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매체를 제대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심카드를 구입하다

이튿날 점심시간이 되자 심카드 구입을 알아보던 젊은 관리에게서 전갈이 왔다. 평양 시내 인민문화궁전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고려링크 통신국 빌딩이 두 달 전부터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내부 설비 공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며 안내원을 채근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순안공항에 있는 고려링크로 가서 가입해야 되겠군.”
“공항에 있는 고려링크는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만 영업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행기 착륙이 없는 날입니다.”
안내원은 나를 진정시키며 공항에 나가도 소용없음을 알려주었다.
담당 관리에게 평양 시내 고려링크 통신국이 왜 폐쇄되었는지, 외국인 통신정책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알아봐 줄 것을 요청했다. 저녁시간이 되자 반가운 연락이 왔다. 공사 중인 고려링크 통신국을 대신해 보통강호텔에서 통신국 업무를 본다는 소식이었다.
안내원은 심카드를 구입하려면 가입자의 ‘여권’, 해외주재 북조선영사관에서 발급한 ‘비자’, 선불 가입비 ‘미화 204달러’, 그리고 ‘가입신청서’ 등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었다.
이튿날 통신국에 도착하니 두 명의 여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한 명이 내 폰을 건네받았다. 한참 매뉴얼을 만지작거리더니 내 전화기로는 심카드 사용이 안된다는 것 아닌가. 절망이 엄습해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폰을 건네받더니 매뉴얼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폰 속에 내장된 매뉴얼이 영어 버전으로 되어 있어 직원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한글 버전으로 전환해주었다. 천만다행으로 주의 깊게 매뉴얼을 살펴본 직원은 내 폰으로도 심카드가 가능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제야 직원은 가입신청서 작성을 요구했고, 본격적인 세팅 작업에 들어갔다. 신청서의 앞면 상단부는 내가 작성해야 하는 부분이고, 나머지 하단부는 담당 안내원이 작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서류의 마지막 부분에는 담당 안내원이 직접 서명해야 했다. 책임부서에서 보증을 서야만 모바일 서비스 가입이 가능한 줄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과 국제전화는 분리되어 있었다. 두 가지 모두 가입해도 되고, 둘 가운데 한 가지만 가입해도 되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가입했다. 인터넷을 가입해야만 카톡과 페이스북은 물론 이메일 송수신, 포털 사이트 검색 등을 실험해볼 수 있기 때문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드디어 손전화 번호를 부여 받다

가입신청서 작성을 마치자 여 직원은 내 폰에 들어 있던 심카드를 빼서 나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고려링크 제품의 새로운 심카드를 끼우더니 개통을 위한 매뉴얼을 작동하기 시작했다.
개통을 기다리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는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국제 전화를 할 때마다 평양통신국 중앙 서버에 내 폰의 정보가 복사되거나 체크될 수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순수한 의도가 아닌 다른 용도나 목적을 갖는다면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보안 당국은 외국인 3G 휴대전화망 인터넷 서비스를 앞두고 1년 반 동안이나 고려링크사와 이 문제를 협상한 다음 가까스로 사업 승인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틀림없이 2중, 3중의 보안 장치를 했을 것이다.
드디어 여 직원은 북한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새로운 손전화 번호를 부여해주었다. 개통 즉시 “고려링크에 가입한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축하문자가 날아왔다. 전화 번호 숫자는 열 자리였다.
“가입절차를 모두 마쳤습니다. 남조선은 국제전화가 안되니까 그리 아십시오.”
안내원은 나에게 심카드로 사용하는 국제전화는 ‘남조선(한국)’은 통화가 차단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국을 뺀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의 통화는 모두 가능했다.
우선 심카드에 금액부터 충전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출국할 예정이라고 하자, 내가 공항을 이륙한 직후부터는 통신 서비스가 자동으로 끊긴다고 알려주었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은 평양을 떠난 이후에도 매월 사용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보며 해약에 대해 질문했다.
“합의서(계약서) 조항에는 왜 해약이 없습니까?”
“우리 공화국에서는 정지(해약이나 해지)라는 봉사(제도와 규정) 자체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내부 규정상 해지가 없다며 직원들이 안타까워했다. 약간의 불만을 드러내자 해지하는 제도가 곧 생길 것 같다는 위로의 답변이 돌아왔다. 심카드를 구입하여 한번 등록하면 북을 떠난 후에도 매달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스마트폰에는 고려링크사에서 보내는 문자들이 연신 날아 왔다. 출국할 때까지 문자는 줄기차게 날아왔다. 주로 잔액을 알려주는 것과 무료 문자서비스 혜택에 관한 내용이었다.

“고려링크에 가입한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의 료금잔고는 1400.00원이며 2014-11-03까지 유효합니다. 잔고를 문의하거나 료금을 충전하시려면 919를 호출하십시오. 문의할 것이 있으시면 999를 호출하십시오.” …

한국과 미국으로 카톡과 보이스톡을 하다

심카드를 가입한 첫날은 나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며칠 동안 접속하지 못해 누적된 페이스북과 카톡의 메시지들을 평양 한복판에서 확인하는 재미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보고 싶다는 내용과 함께 아파트 렌트비에 관한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평양발 메시지를 보고 아내는 깜짝 놀라며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했다. 곧이어 국제전화를 걸었다. 통화 음질이 전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북에서 부여 받은 번호로 미국에 전화를 걸 때는 미국 국가번호 앞에 001을 눌러야 통화가 연결되었다.
이어서 초등학교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의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는 마침 내가 서울에 체류하는 기간에 경기도 팔당 인근 양수리에서 동창회 모임을 갖는다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친구의 카톡 덕분에 체류기간 내내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렐 수 있었다.
평양에서 보낸 카톡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처음에는 장난으로 알고 믿지 않았다. 실제 상황임을 깨달은 후에는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하였다. 내가 카톡 단답을 요청하자 그들 모두 간단한 답변을 날려주었다.
이로써 나는 평양 하늘 아래서 서울을 향해 마음껏 카톡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날릴 수 있었다. 반대로 서울에서 보내준 카톡 답장을 아무런 문제없이 평양에서 즉시 받을 수 있었다.
이북의 국제전화 시스템이 한국과의 전화통화가 차단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전화 연결이 불가능했다. 그 대안으로 내가 고안해낸 방법이 바로 페이스북 메신저에 있는 전화 기능과 카톡에서 전화 기능을 하는 보이스톡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페이스북과 보이스톡의 전화 기능은 통화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평양과 서울에서 주고받는 사이버상의 각종 메시지 기능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내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스스로 경험하였으면서도 신기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남북 사회통합은 사이버 교류부터

2012년에 방북할 때만 해도 순안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할 때는 몸에 지니고 있던 스마트폰이나 일반 손전화기를 무조건 공항 요원들에게 맡겨야 했다. 맡긴 전화기는 출국하는 날 되돌려 받았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해서 입국자들에 대한 전화기 회수는 국제화 시대에 역행하는 불합리한 조치임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북녘 당국에도 호소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듬해인 2013년 1월부터 외국인과 해외동포들의 휴대폰 소지 입국이 허용되었다.
전화기 휴대를 금지하는 이유에 대해 북측 당국은 모기장 이론을 내세우며 나를 설득했다. 휴대를 허용하게 되면 적대세력들이 마치 모기가 달려들 듯 휴대폰을 이용해 스파이 행위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기장을 친다는 논리였다. ‘압수’에 가깝다는 표현이 들 정도로 공항에 내리자마자 전화기를 회수당하는 불편을 감수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방북하는 외국인들이나 나 같은 해외동포들은 이제 특별한 행사 때나 이벤트가 있을 경우 평양 시내를 활보하면서 셀프 카메라는 물론 구글 행아웃이나 화상 캠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질화된 남북을 서로 연결하고 통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이버 교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 현재 북에는 600만 대 가까운 휴대폰이 보급되어 있다고 한다. 꽤 높은 보급률이다. 일반 주민들은 음성 통화는 물론 영상, 음악 등의 자료를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 화상전화 등의 서비스를 즐긴다. 하지만 국제전화나 이북에 체류 중인 외국인과는 통화할 수 없다. 국제 인터넷망 접속도 불가능하다.
이북의 인터넷 속도는 미국이나 한국과 전혀 차이가 없는 매우 우수한 성능이었다. 평양 시내의 무선 와이파이는 매우 강력하게 터졌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도중에 버퍼링이나 끊김 현상도 전혀 없었다. 차 안에서는 물론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메신저와 국제전화를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북녘 주민들도 모든 사이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빈다.

[책 속으로]
평양에서 보낸 카톡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처음에는 장난으로 알고 믿지 않았다. 실제 상황임을 깨달은 후에는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하였다. 내가 카톡 단답을 요청하자 그들 모두 간단한 답변을 날려주었다. 이로써 나는 평양 하늘 아래서 서울을 향해 마음껏 카톡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날릴 수 있었다. 반대로 서울에서 보내준 카톡 답장을 아무런 문제없이 평양에서 즉시 받을 수 있었다. -33쪽

“아니 지금이 뭐, 휴가철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가행사 기간이나 명절도 아닌데, 미국에서 뭐 하러 이렇게 많이들 방문했지? 나는 일부러 복잡한 기간을 피해서 방문한 건데.”
“…사실 이번에는 우리 측에서도 당황할 정도로 미국에서 유례없이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습니다. 대개 이 계절은 방문단이 뜸하고 한가한 시기인데…”
“아, 세상이 좋아지다 보니 북조선을 미국 교포들이 휴가지로 찾는 세상이 왔구먼.” -39쪽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박정희 대통령이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튿날 아침에 승합차량 안에서 그 이야기를 화제로 꺼냈다. 함께 탑승한 북측 일행들은 신이 나서 드라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주 오래전에 방영되었지만, 박대통령 역을 맡았던 배우 김윤홍의 명대사가 지금도 주민들에게 유행어로 회자된다고 한다.
“맞습네다. 거, 나카무라상 있잖습네까. 그 사람이 아주 우리 조선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입네다. 아주 잘생겼다구. 박정희 역을 얼마나 잘했는지 우리 장군님이 칭찬해주시면서 자동차도 선물했다고 하지 않습네까?” -43쪽

이북에는 ‘공식 환율’과 더불어 ‘실제 환율’이 있다는 것은 인지해야 한다. ‘공식 환율’이란 외국인 전용 ‘호구 환율’이다. ‘호구 환율’은 ‘실제 환율’에 비해 수십 배 정도 차이가 난다. 1달러 환율이 이북 화폐로 7,000원 정도인데, 호구 환율은 1달러에 130원인 경우가 있다. …외국인에 대한 이북 환율 적용제도와 2중가격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남한과 서방세계의 언론들은 마구잡이 오보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북의 환율 시스템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메뉴판에 적힌 가격표를 기계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음식값이 비싸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나 주민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식당이나 커피점, 백화점에 갈 수 없는 그림의 떡”이라느니 “신흥 부자들과 특권층만 갈 수 있다”느니 하는 주장들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근거도 없이 떠들어댄다. 이북에서 자국민들에게 적용하는 커피 한 잔의 실제 가격은 0.1달러 정도로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59쪽

선진국에서도 승마는 귀족 스포츠로 간주된다. 그렇기에 평양 한복판에서 승마를 즐길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미림승마구락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승마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찾아와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승마장이 개장한 지 6개월 만에 벌써 수만 명의 주민들이 이곳 승마장을 찾았다고 한다. -69쪽

“춘원 선생은 사후에도 참 파란만장하셨네요. 그럼 특설묘지 이전에는 춘원의 묘지가 어디에 있었나요?”
“그게 그러니까, 춘원은 원래 서울에 살 때 폐병을 앓고 살았단 말입니다. …전쟁이 시작되던 중에 우리 품에 안긴 춘원 선생을 우리 공화국 성원들이 따라다니면서 각별히 간호해줬는데도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돌아가시던 날에도 상태가 위중해 긴급히 만포에 있는 인민병원으로 모시던 중이었는데, 차 안에서도 각혈을 많이 해서 피바다가 됐다고 합니다. 결국 전쟁이 시작된 지 넉 달 만인 1950년 10월 25일에 58세로 운명하셨지요. 전쟁 중이라 마땅한 장례 절차도 힘들고 해서 돌아가신 부근의 아늑한 자락에 그대로 매장을 해드렸단 말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길림성과 마주 보고 있는 자강도 만포군 만포읍 고개리 중턱이란 말입니다.” -121쪽

2012년의 평양과 2018년의 평양은 불과 5, 6년 만에 전혀 다른 도시가 되었다. 무엇보다 자동차와 택시가 급격히 늘어났다. 지금은 서양의 여느 도시들처럼 자동차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역동적인 도시가 되었다. 평양 외곽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는 차량들이 3개 차선을 꽉 채운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평양은 편도 3차선, 왕복은 6차선 도로가 많다. 그 넓은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할 만큼 변해 차량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37쪽

이북은 접근이 전혀 달랐다. 전쟁고아들을 루마니아, 체코,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나 러시아, 몽골 등지로 보내면서 교사들을 딸려 보낸 것이다. 루마니아에는 자체적으로 세운 학교에 3천 명의 전쟁고아와 인솔교사를 보냈으며, 전쟁 복구가 끝난 후에 위탁교육을 보낸 고아들을 되찾아왔다. 폴란드에도 2천 명의 전쟁고아들을 위탁교육 보냈다가 1959년에 이북으로 귀환시켰다. 1952년 몽골에 보낸 고아 200명은 7년 후 이북으로 모두 돌아갔다. -207쪽

벽돌 하나 제대로 남아 있지 않는 잿더미 속에서 이북교회는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암흑으로 빠져들었다. 적어도 1953년부터 1972년까지는 그랬다. 이 기간은 전후 복구와 재정비를 위한 충전의 시기였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1972년부터 조금씩 경계심과 불신의 벽이 헐리며, 이북에서 가정교회와 처소교회들이 세워지고 있다. 1988년에는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이 연이어 설립되었다. 또한 목회자를 배출하는 평양신학원까지 세워졌다. -274쪽

장신부는 1987년 바티칸 대표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장신부는 나흘밖에 되지 않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현존하는 북의 가톨릭 신자를 찾았다. 천신만고 끝에 다섯 명의 천주교 신자들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본래 평양과 평안남북도 지역을 관할하는 평양교구에는 20여 개소의 본당이 있었지만, 해방 직후 6·25전쟁을 거치며 모두 사라졌다. 그런 황폐한 조건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킨 것에 경외감마저 들었던 장신부는 평양에서 돌아온 후 평양교구장을 겸하고 있던 김수환 추기경과 교황에게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 …북에도 참된 가톨릭 신앙의 그루터기가 남아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한 로마 교황청은 이듬해 4월 이들 신자 가운데 박덕수(마르코), 홍도숙(테레사) 부부를 바티칸으로 초청하게 된다. 이들은 부활절 대축일 전례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영성체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박덕수와 홍도숙 부부는 북의 가톨릭 신자 가운데 전후 최초로 바티칸을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직접 알현하였다. -310쪽


목차


1부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평양호텔 TV 속의 박정희 대통령 드라마
첨단 고급화를 지향하는 식당 문화를 체험하다
미림승마구락부에서 승마를 하다
평양 우표 애호가들의 놀라운 수집 열정
북에서 보낸 쌀로 남에서 떡을 해 먹다
북으로 올라간 인사들은 어디로 갔나

2부
발전하는 교통 문화와 CC TV
지방에도 활성화된 영업용 택시
200미터 지하를 달리는 평양 지하철
북녘의 이국적인 전차 문화

3부
고아들의 복지 교육 시스템을 엿보다
옥류아동병원을 가다
평양시 육아원에서 세쌍둥이들을 만나다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를 가다
고려의학과학원을 가다

4부
북녘의 교회를 찾아가다
북녘의 사찰을 찾아가다
장충성당과 가톨릭교회
평양세계평화센터와 통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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