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전에 위대한 그리스가 있었다!
리더의 국가 경영, 시민이 지켜나갈 민주주의 공존해야!
『그리스인 이야기 I』 서두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 그리스인이 훗날 서양의 패자가 되는 로마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예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고대 서방 세계의 대표주자는 단연 그리스인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는 실제로 결점이 많은 나라였다. 국토가 바위투성이 산악지대여서 자체 생산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한 나라가 아닌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이 무수히 난립한 형태였는데, 도시국가들끼리는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이런 그리스가 어떻게 서양 문명, 나아가 현대 문명의 모태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은 무척 흥미진진하고 신선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 그리스에서 민주정치가 싹트고 발전해간 까닭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단언한다.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이 요구하는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개혁은 귀족정치를 타파한 솔론의 금권정치로 시작해서,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치, 클레이스테네스의 실력주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전시 위기관리 체제, 그리고 아테네 민주정치의 황금기를 이끈 페리클레스 시대로 이어진다. 각 단계마다 ‘계급 간 갈등 해소’ ‘체제 안정’ ‘경제력 향상’ ‘국난 극복’ 등 다양한 현실의 요구, 즉 ‘필요’가 존재했고, 이에 발맞추어 나름의 색깔을 더하며 아테네 민주주의는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이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고매한 이데올로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필요성 때문에 태어났다. 냉철한 선택의 결과다. 냉철하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지배하던 시대의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작동했던 것이다. 민주정치가 이데올로기로 변한 시대에 도시국가 아테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쇠퇴뿐이었다.”
민주정치의 확립과 더불어 그리스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큰 과제는 국난 극복이었다. 바로 제1차, 제2차 페르시아전쟁이 그것이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키루스 대왕의 정복 전쟁을 시작으로 대제국으로 성장하고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왕 중의 왕’을 자처하기에 부족함 없는 나라가 되었다. 반면 그리스의 군사력은 페르시아의 군사력에 턱없이 못 미쳤다. 더욱이 여러 도시국가의 연합체인 그리스는 일체감이 부족하고 구심점이 부실했다. 하지만 이 불리한 전황을 극적으로 타개한 인물이 등장했으니 바로 아테네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다.
그런데 영웅 한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시오노 나나미는 그것을 ‘질(質)’, 다시 말해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지적한다. “페르시아(동방)는 ‘양(量)’으로 압도하는 방법으로 공격해왔다. 그리스(서방)는 ‘질’로 맞서 싸웠다. 이때 ‘질’이란 개개인의 소질보다는 모든 시민이 지닌 자질을 활용한 종합적인 질을 의미한다. 즉 한데 모아서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승리했다. 보리 한 줌에 불과했지만 대제국을 상대로 이긴 것이다.”
그리스인은 페르시아전쟁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자질에 눈을 떴고, 이는 이후 유럽 정신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유럽은, 고대 그리스인이 페르시아로 대표되는 동방과 차이를 만들었던 바로 이때,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