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에 걸린 순간
가장 살아 있다고 느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날,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마치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통증을 경험하고서야 남자는 자신이 평생 완치되지 못할 신경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의 나이 서른넷, 딸이 첫걸음마를 뗀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인체와 인격 모두를 파괴하는 병,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남자는 ‘내 안에 죽음이 살아 있다는 생각보다 더 암담한 게 있을까?’라는 한 문장으로 이 끔찍하고도 고독한 병에 대해 털어놓는다.
불치병을 평생 안고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서 생이 조금씩 달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 누구와도 고통을 나눌 수 없고, 오로지 혼자 외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언제 죽을지 짐작도 할 수 없고, 통증과 혼란은 점점 자아를 잠식한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자신과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뇌과학과 신경질환을 공부한다.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온전한 부모와 자식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매우 현실감 있게 펼쳐진다.
마지막 순간,
당신 곁에 남을 소중한 사람들
십자가가 몸에 박히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남자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딸의 삶이었다. “리언의 삶이 불완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남자의 고백은 자신의 병이 딸에게 유전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에서 비롯한다. 열다섯 살에 뇌종양에 걸린 형 벤의 세상을 향한 분노, 신장 이식 수술 후 생을 마감했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친구 유진의 강한 의지, 자식을 앞세울지도 모른다는 부모의 참담한 심정, 불치병에 걸리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남편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내의 비통함은 죽음이라는 심오한 명제 앞에서 ‘나는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를 자문하게 한다.
특히 불치병에 걸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서술하는 저자의 어조와 주변 인물들의 사실적인 묘사는 이 글의 주인공이 나 혹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자 부모이고, 친구이자 연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죽음을 맞닥뜨리고서야
삶을 되돌아보는가
전신의 통증, 감각과 사고 회로의 이상을 느끼면서도 1년 동안 남자는 자신의 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한다. 그런 증상들이 병의 징후일 거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빠르게, 누군가에게는 조금 느리게 올 뿐이다. 사람은 죽음과 같은 비극적 순간이 자신은 비껴갈 거라고, 인생을 정리할 때쯤 서서히 찾아올 거라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해서 누군가를 기다려주거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완벽한 날들』은 의미 없이 반복되는 날들, 목표 없이 흘러가는 일상, 치열하게 사느라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이들에게 그동안 잊고 지낸 삶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왜 죽음을 마주하고서야 삶을 되돌아보는가?’, ‘무엇이 삶을 가치 만드는가?’. 그리고 남자가 그랬듯 인생의 가장 소중한 진실과 조우하게 된다. 삶의 끝은 결국 죽음이다. 중요한 건 무엇 때문에 죽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사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