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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군함(상)

안개 군함(상)

  • 구양근
  • |
  • 문학세계사
  • |
  • 2018-10-05 출간
  • |
  • 240페이지
  • |
  • 135 X 195 X 17 mm /339g
  • |
  • ISBN 978897075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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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사건을 꼽으라면 ‘운요호 사건’일 것이다. 19세기 후반 세계 열강들은 약소국들의 문호를 강제로 개방시키고 식민지화하는 데 열을 올렸다.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 삼기 위해 경쟁적으로 눈을 돌렸는데, 1854년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을 하였다. 해군 제독 매튜 페리가 7척의 근대식 군함을 이끌고 개항을 강요하자 이에 굴복한 것이다. 일본과 미국 사이에는 불평등조약인 미?일 수호통상조약이 맺어져 1844년 개항한 청나라에 이어 서양 중심의 세계 질서에 억지로 편입된 것이다.
그리고 약 21년 후인 1875년 일본은 미국의 수법을 고스란히 조선에 사용했다. 그것이 바로 ‘운요호 사건’이다. 서양 함선에 신식무기 함포, 개틀링 기관총 등을 싣고 나타나 위협을 하며 개항을 요구하는 일본에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실질적인 일본의 식민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일본도 강화도조약이 해외진출의 처음이었고 조선도 그것이 외국과의 조약체결의 처음이었다.
그 이전, 프랑스와 미국의 개항 요구에 쇄국정책으로 맞섰던 조선은, 일본의 개항 요구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왜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대원군이 명성황후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해 물러나 있었고, 탐관오리들의 학정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한 데다가, 오랜 가뭄과 기근으로 나라 경제가 어려웠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큰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친일파 1호로 기록된 김인승의 눈부신(?) 활약 때문이었다.


러시아로 탈출한 이주민 김인승


함경도 경흥관아의 호방이었던 김인승은 대대로 벼슬을 지낸 뿌리 깊은 집안의 손이었으나 11대조가 죄를 지어 함경도로 유배를 가고, 7대조 때 경흥으로 이사를 가면서 토반으로 전락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경흥관아에서 호방을 하지만 나름 공부가 깊었던 김인승은 의협심마저 있었던 인물이었다. 경흥부사 윤협이 기근과 홍수로 아사 직전에 있는 백성들의 긍휼미를 빼돌려 염가미로 팔아 이득을 취하자 경흥부민이 들고일어나 관아에 쳐들어왔고, 이를 대변하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진 김인승은 조카 김학우와 국경 탈출을 하게 된다.
조선의 국경을 넘어 러시아 땅 추풍(秋風 니콜리스크)에 자리를 잡은 김인승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무역상을 하는 일본인 다케후지 헤이가쿠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 다케후지가 나중에 그를 친일의 길로 안내하는 첫 안내자가 된다.
다케후지는 조선을 손에 넣기 위해 주변의 정세를 살피러 온 세와키 히사토를 만나게 되고, 세와키에게 조선인 김인승을 소개하게 된 것이다. 세와키는 공식적으로는 일본 외무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키 위해 파견한 외교관이었지만 사실상 정탐꾼이었고, 이 중의 절반은 조선에 대한 것이다. 세와키의 ‘출장 명령서’에는 구체적으로 ‘조선인을 고용하여 조선땅으로 들어가서 토지·풍속 등을 탐색하고 올 것’ 등이 명기돼 있다. 다케후지로부터 김인승의 학식과 경험을 높이 산 세와키는 귀국길에 그를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일본의 외국인 고문

이 무렵 일제는 다수의 외국인 고문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1874∼1875년 무렵에는 그 수가 520여 명에 달했으나 조선인 고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인승이 조선인으로서 최초의 외국인 고문이었다. 일제는 조선에 ‘황국의 군현’을 설치하여 이를 근거로 대륙을 침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외국인 고문 채용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그리고 그 첫 군사행동이 바로 ‘운요호 사건’이었다.
세와키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김인승은 일본 정부와 외국인 고문 고용계약을 맺고 만주지방 지도 작성, 북방 사정 탐색, 조선 침략용 지도 작성,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자문 등의 일을 하였는데, 이 중에서 김인승이 크게 기여(?)한 부분은 조선에 관한 사항이었다.
1875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조선 침략용으로 작성한〈조선전도〉, 당시 조선 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계림사략』 등에 세세한 조언을 하는 등 김인승은 일본의 외국인 고문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는 강화도 앞바다에 정박한 일본 군함에 머무르며 조선이 일본의 강압에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는 동안 공문의 한문 번역과 수정 책임을 맡았고, 조약체결 과정에서 수시로 일본측에 조언을 해주었는데 구로다에게는 조선 관리 설득 방책까지 제출할 정도였다. 여기에는 ‘전신기 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에서부터 ‘여러 말 할 필요 없다. 청국은 그처럼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데도 먼저 일본에 강화조약을 청하여 맺었다. 두루 살펴 깊이 생각하라’는 등 공갈·협박성 문구도 들어 있다.
곧고 정직한 성품의 조선 선비였던 김인승은 일본의 속셈을 헤아리지 못한 채 ‘조선이 개항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협조를 한 것이다.
조약 체결 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일본인들로부터 멸시와 증오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협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겨우 일본을 탈출하여 러시아로 되돌아오나, 그 전말을 알게 된 연해주 일대의 한인 독립단에 의해 추풍의 어느 산모롱이에서 포살 당한다.

친일파 1호 김인승의 기록을 역사에서 찾아내다


‘친일파 1호’ 김인승의 기록을 발견한 사람은 이 소설의 작가이며 사학자인 구양근이다. 구양근은 동경대학에서 동양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외교 사료관 사료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후 동경대학에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외교 사료관 사료를 열독하다가 김인승이라는 인물을 찾아냈다.
김인승은 친일파 연구의 태두인 임종국 선생이 그의 저서에서 단 한 마디 언급했을 뿐 어디에도 기록이 없었다. 구양근은 김인승의 기록을 무더기로 찾아내 최초로 언론에 알렸다. 그리고 그는 국내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작가는 김인승의 이야기를 통해 뼈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로 김인승의 자료를 토대로 소설을 썼다.
“강화도조약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는 사형 구형을 받은 것이고(사형 선고는 청일전쟁의 시모노세키 조약, 사형 집행은 한일합방), 친일파란 어떤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매우 강직한 사람이라도 자칫 한 번의 판단 착오로 그처럼 된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김인승은 구로다를 도와 조선을 개국시키는 것이 애국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로 매국이었던 것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한다.


목차


작가의 말 7

경흥부 관아 11
동해를 가르는 한 척의 배 32
독도를 바라보며 50
다케후지 헤이가쿠 68
추풍의 연가 86
김인승과 세와키의 조우 106
김인승을 두드리는 타진추 125
이리의 등에 오른 김인승 150
일본 외무성 외국인 고문 166
일 · 러 · 조의 국경을 넘어서 186
조선에 잠입한 친일 1호 204
김인승과 다케후지의 서울 유력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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