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어린 젊은 작가가 도모한, 성공적인 실패와 간절한 모험의 기록
이 책은 설치미술을 공부하는 미술학도가 자신의 과제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과 탐험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 과정은 작가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발견과 구체화와 가능성의 실험이다.
'철제 오브제'라는 대상이 과제물과 작품 사이에서 출발하듯 작가 유지원은 예술가와 예술학도 사이에서 진동하며 묻고 대답하고 다시 묻는다. 다시 발견하고 다시 탄생하고 다시 회의한다. 예술가는 체계화되고 획일화된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부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자이지만 예술학도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험을 축적하는 자이다. 이미 획일화된 아카데미에서 기존의 방식들을 학습하고 그것으로 평가받는다. 유지원은 그것의 의미를 묻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한다. 예술가와 예술학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자신을 재발견하고 재정립하려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놓으며 그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유지원의 작품 '철제 오브제'도 놓여 있다. 작가와 작품은 서로를 마주본다. 작가와 작가 자신도 마주본다. 어느 새 '철제 오브제'는 탄생의 순간을 앞둔 예술적 존재가 된다.
유지원은 “철제 오브제를 살려낸다면 다른 과제들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과 기대에 찬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대상에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철제 오브제'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출발시키기 위해서. 이것은 모든 예술작품에서의 작가와 대상과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스스로 대상이 되고 대상은 작가 그 자신이 된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작가이기도 하고 작품이기도 하고 모든 존재의 탄생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 순간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네 개의 긴 다리와 몸판, 두 개의 뿔을 가진 '철제 오브제'를 살리기 위해 작가는 청동기 문양들이 현재까지 이미지로 각인되어 살아남은 방식을 고찰한다. 시간적으로 고대의 문양에서부터 출발했다면 공간에 있어서는 작가에게 익숙한 연신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철제 오브제'를 위한 모색을 한다. 연신내라는 지역이 상권을 개발하기 위해 취한 방식들을 살피고 어떠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로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 이 요소들을 어떻게 운용할지 고민한다. 또한 작품을 살릴 다른 공간과 다른 작품들을 찾아 탐구하고 이들 간의 상호관계성에 대해 모색한다. '철제 오브제' 자체가 주는 궁극적 심상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심상의 의미와 회화의 역사적 특성을 통해 자신의 미술에 대한 가치를 피력하고 매 순간 새롭게 편입하는 새로운 매체와 방식들 속에서 새로운 예술가가 갖춰야 할 대안을 고민한다. 분명 이 책은 체계적이고 날카로운 논리로 무장한 미학 이론서나 비평서는 아니다. 역사에 남은 위대한 작품에 대한 해설도 아니다. 그러나 완성에 대한 저항, 이것이야말로 가장 예술적인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뜨거운 열정의 기록이며 용기와 간절함의 작업이다. 그리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새로운 존재를 만드는 작업의 기록이다. 예술의 탄생 과정, 그 자체이자 세상과 존재가 관계를 맺는 여정을 보여주는 진지한 모험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