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륙, 한반도, 일본열도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역사벨트의 비밀,
미완의 백제 역사 앞에서 통곡하다.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시리즈 백제편이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사나 백제사는 소멸된 것이 많지만 신라사는 위조된 것이 많아서 사료로 삼을 만한 것이 적다.”고 삼국사기 기록의 부실함을 지적한다. 특히 백제 역사를 대변하는 삼국사기<백제본기> 기록은 부실함의 정도가 지나치다. 당연히 있을 법한 부분에 기록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반도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서쪽은 초록색이고 동쪽은 고동색이다. 한반도 지형이 평야지대와 산악지대로 확연히 구분된다. 2,000여 년 전, 서쪽 평야지대는 백제가, 동쪽 산악지대는 신라가 각각 건국한다. 또한 북쪽은 고구려가 있다. 우리는 세 나라를 가리켜 삼국이라 하고, 이들이 우리 땅 한반도를 지배한 700년 세월을 삼국시대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평야지대는 매력적인 땅이다. 곡창지대이니만큼 먹고 사는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개인이든 국가든 반드시 소유하고 싶은 알토란 땅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이 매력적인 땅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없다.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 땅은 역사기록의 공백지대이다. 왜 그럴까?’ (서문)
한반도의 매력적인 땅의 역사가 <백제본기>에는 없다. 선의든 선의가 아니든 삼국사기는 기록 자체를 삭제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떨쳐낼 수 없다. 삼국사기는 후대에 무얼 남기고자 한 것일까? 백제의 시조는 3명이다. 온조와 비류, 그리고 구태이다. 온조와 비류는 형제로서 고구려가 기원이고 구태는 부여가 기원이다.
‘삼국사기<백제본기>는 온조와 비류의 고구려계 역사서이다. 구태의 부여계 역사는 기록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단서는 남아 있다. <백제본기> 건국서문에 중국기록을 인용하여 구태를 언급한다. 덧붙여 ’믿을 수 없다.’고 주석을 단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것일까? 구태를 언급한 중국기록은 참으로 많다. 삼국지<위서>, 주서, 북사, 수서 등 중국 정사와 당회요, 통고, 책부원귀 등에 줄줄이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중국대륙 동북방에 부여왕족 출신 구태가 있었는데, 그의 후손집단이 백가제해(百家濟海) 한다. 100개의 가(家)를 거느리고 바다 건너 한반도로 망명한다. 대규모 인구가 한반도로 이동한다. 또한 백제의 국호는 백가제해에서 따왔다고 부연한다. 이들이 망명해온 한반도는 어디일까?’ (서문)
백제의 역사는 온조, 비류계의 한반도 역사와 구태계의 중국대륙과 일본열도 역사로 구분된다. 특히 구태계는 중국대륙에서 시작하여 한반도로 건너와 매력적인 땅인 서남지방을 지배한다. 옛 거주지인 중국대륙의 대방고지에 분국인 백제군(요서군, 진평군)을 설치한다. 또한 일본열도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국가 야마토를 창건한다. 이는 일본 천황가의 기원을 밝힌 에가미 나오미의 ‘기마민족정복설’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 설을 좀 더 보완한 레드야드와 코벨은 이들 북방기마민족을 가리켜 중국대륙을 출발하여 한반도의 서남지방에 일정기간 정착한 후 열도로 건너간 ‘백제라 부른 부여전사’로 규정한다. 서남지방은 바로 충청남도, 전라남·북도 그리고 넓게는 경상남도 남해안까지를 포함한다. 이들 지역명칭이 일본서기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또한 구태계의 한 부류는 온조, 비류계의 백제를 마감시키고 구태계의 새로운 백제왕조를 출발시킨다. 구태계는 한반도 백제왕조의 진정한 승자이다.
‘결론적으로, 삼국사기는 구태의 백제세력을 기록에서 삭제한다. 그래서 한반도의 매력적인 땅의 역사가 아예 없다. 구태의 백제세력은 중국의 역사이고, 한국의 역사이며, 일본의 역사이다. 삼국사기만이 외면한 진짜 백제의 역사이다. <광개토왕릉비>는 이들 구태의 백제세력이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깨져 한반도에서 밀려나 일본열도로 망명해가는 과정을 처절하게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훗날 구태의 백제세력은 백제왕실을 완전히 접수한다. 백제는 온조, 비류의 고구려계에서 구태의 부여계로 왕조가 교체된다. 그래서 성왕은 국호를 백제에서 남부여로 바꾼다. 이것이 잃어버린 백제 역사의 본질이며 또한 실체이다.’ (서문)
이 책은 백제 건국에서 멸망까지 총 11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각 장별로 역대 왕의 치적과 잘못 그리고 중요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삼국사기가 외면한 구태계의 중국대륙과 일본열도의 역사를 중국과 일본기록을 통해 입체감 있게 복원하여 백제 역사를 새롭게 기술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우리는 근초고왕을 정복군주로 이해하지만 아니다. 근초고왕은 결코 정복군주가 될 수 없다. 근초고왕의 정복군주 표상은 구태계의 한반도 정벌역사가 포함되어 만들어진 역사이다. 백제의 진정한 정복군주는 근초고왕이 아니라 중국대륙을 호령한 동성왕이다. 동성왕은 북위와의 두 차례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며 지금의 중국의 하북성과 산동성 서쪽일대를 장악한다.
참고로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해 멸망당한 직후 일본열도의 야마토는 백제 수복운동을 적극 지원한다. 이유는 백제와 야마토 왕조의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야마토는 전선 1천 척과 3만7천의 군사를 파병하지만 백강구(동진강 하구)에서 4백 척의 전선과 1만 5천의 야마토 군사가 당군에게 패해 수장된다. 이 사건 이후로 야마토는 한반도와의 단절을 선언한다.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일본화과정’에 돌입한다. 역사는 일본이 두 차례 대규모로 한반도를 침탈했다고 증언한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이다. 오늘날 일본의 실체는 백제의 아바타이다. 통곡의 단어가 무척 무겁다. 그럼에도 저자는 통곡할 수밖에 없는 백제 역사를 절절한 심정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한반도의 최종 승자가 되지 못한 미완의 백제, 동아시아 역사분화를 촉발시킨 통곡의 백제 역사를 귀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