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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서, 길 떠나는 그대에게

송서, 길 떠나는 그대에게

  • 조순희(옮김)
  • |
  • 한국고전번역원
  • |
  • 2017-03-29 출간
  • |
  • 304페이지
  • |
  • 151 X 219 X 26 mm /597g
  • |
  • ISBN 9788928404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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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옛 사람의 송서(送序) 48편,
길 떠나는 사람에게 격려와 당부를 담아 전하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고전 대중화 사업의 일환으로 고전 작품 가운데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글들을 문체별, 주제별로 엮어 고전작품선집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앞서 『잠(箴), 마음에 놓는 침』, 『병중사색(病中思索)』을 출간하였고, 이번에 세 번째 책 『송서(送序), 길 떠나는 그대에게』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선인들의 문집을 집대성해 영인 출판한 ‘한국문집총간’에 실린 2,000여 편에 가까운 송서 중에서 대표적인 주제로 장을 나누고, 각각의 장에 대중이 읽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을 우선적으로 가려서 실었다. 옛 사람들이 길 떠나는 사람에게 노자를 건네듯 써 준 송서를 통해 정겹기도 하고 엄격하기도 했던 옛 사람들의 교유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작품마다 옮긴이의 감상과 현대적인 감각의 먹그림을 함께 실었다.

선인들이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는 방법

『송서(送序), 길 떠나는 그대에게』는 옛 사람들이 길 떠나는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 당부를 담아 전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중국 수隋?당唐 시대에 연회를 베풀어 길 떠나는 이를 전송하는 문화가 유행했는데, 그때 시를 지어 전별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시를 짓게 된 경위나 그 시들을 모아 엮은 시집을 내게 된 경위를 기록한 송서 작품도 많이 지어졌다. 그러나 후대에 가서 글만 써서 전별하면서 시 없는 송서가 독립적인 문체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중엽부터 많은 문인들이 송서를 짓기 시작했고,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양이 더욱 많아졌다.
고려 시대 문인 학자 이규보李奎報, 이색李穡, 권근權近, 한문 사대가 이정귀李廷龜, 신흠申欽, 이식李植, 장유張維 등 이 책에 실린 송서를 써 준 이들은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장가들이었다. 송서를 받는 이는 글쓴이의 동료나 벗일 수도 있고, 제자나 친척일 수도 있고, 친분 관계 없이 지인을 통하거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사람일 수도 있다. 스승과 집안 어른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동료나 벗이 노자 삼아 적어 준 송서 한 편은 길 떠난 사람이 처음에 먹었던 마음을 기억하고 자신을 떠나보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은 송서, 문학 작품으로 태어나다

송서는 받는 이가 있는 글이다. 받는 이는 길 떠나는 사람이다. 글 속에는 길을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관계와 사연이 담긴다. 이 책에는 김종직金宗直이 진사 김흔에게 써 준 송서와 선산 부사로 나가면서 서거정에게 받은 송서가 실려 있다. 사림파의 사조師祖 김종직은 아직 문과에 합격하지 못한 부친의 마음을 헤아려 회시에 응하지 않고 집을 떠나 외조부를 뵈러 가는 김흔에게 ‘관직을 얻으려고 애를 쓰지 않더라도 명성과 지위가 결코 그대를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어 준다. 그리고 김종직이 연로한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여러 차례 내직을 그만두고 지방관으로 떠나려 했을 때는 선배인 서거정이 이를 아름답게 여기는 마음을 담아 그에게 전한다. 또 성리학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노력한 김종직이 승려 계징에게 준 송서도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나와는 다른 신념을 가진 상대를 존중하는 여유도 보이는 글이다.
송서는 기본적으로 떠나는 사람에게 격려와 당부를 담아 전하는 글이지만, 그 밖에도 다양한 주제와 의도가 담기기도 한다. 최립은 노년에 변방의 작은 진영으로 부임하러 떠나는 송 첨지에게 주는 송서에 자신도 고단한 벼슬살이를 하고 있음을 적으며, 지위와 신분을 넘어 아름다운 교제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서거정이 통신사로 일본에 가는 친구 이형원에게 준 글을 보면, 일본의 관료나 지식층이 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글을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 편의 수필 같은 송서들도 있다. 박제가가 한양을 떠나 공주로 이사 가는 이정재에게 준 글이 그렇다.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 시골로 떠나기로 한 친구와 약산정에서 도성을 내려다보며 추억에 잠긴다. 형편이 나을 게 없는 친구는 떠나는 친구를 만류할 형편이 못 되어 착잡하고 쓸쓸한 심정이다. 해가 저물고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 어둠과 함께 헤어지는 두 사람의 슬픔과 아쉬움이 글의 행간에 깔린다.
정온은 광해군의 치명적인 약점인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폐위 등에 대해 부당함을 지적했다가 제주에 유배되었다. 그런 요주의 인물을 일면식도 없던 하홍도가 찾아왔다.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퉁명스럽게 타박하는 듯한 정온과 그의 질문에 대답 없이 웃기만 하는 하홍도. 바깥에는 사나운 파도와 폭풍이 몰아치지만, 두 사람이 마주앉은 방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감돈다.

떠나는 이가 멀리서 두고두고 펼쳐 볼 글들

송서는 길을 떠나게 된 전말을 서술하고 충고나 당부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글쓴이의 성향이나 시대적인 흐름에 영향을 받은 작품도 적지 않다. 사연 없는 이별이 없기에 송서 한 편 한 편마다 떠나는 이와 보내는 이의 다양한 사연이 녹아 있다.
길을 떠나는 동기나 이유는 무엇이며,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1장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대에게」에는 다양한 귀향歸鄕 사연이 담겨 있다. 이색은 벼슬살이를 하다가 파직된 박 중서에게 지지를 보내고, 이규보는 마음에 맞지 않아 스스로 벼슬을 그만둔 과거 동기생 노 동년에게 부러움을 표시하며, 권근은 부모님 봉양 때문에 벼슬을 그만둔 이문화에게 소신 있다고 칭찬한다. 벼슬을 접고 부친을 모시러 지방으로 내려가는 최지보와, 정치적인 형세가 불리해져 낙향하는 조카 형제에게 주는 송서도 있다. 글로 따뜻한 위로와 격려, 힘이 되는 축하와 칭송의 뜻을 전한다.
2장 「지방관으로 나가는 그대에게」에는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이에게 주는 글이 실려 있다. 임지任地에 대한 설명과 부임하게 된 동기, 떠나는 사람의 능력과 자격에 대한 칭송이 들어간다. 이숭인은 조정의 개혁 분위기 속에서 외직으로 부임하게 된 이이에게 득실과 이해를 편안히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이곡은 전임 수령이 죽어 모두들 기피하는 광주에 흔쾌히 가겠다고 한 친구 김연의 열린 자세를 한껏 응원한다. 이제현은 상주 목사에 자원한 안축을 칭찬하고 응원하면서도 다시 서울로 오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배용길은 황화보에게 하늘이 큰 인물로 키우기 위해 역경을 겪게 하였다는 말로 위로하고 권면한다. 하지만 부모 봉양을 위해 자청해서 지방관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주는 글은 효성을 칭송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3장 「사신으로 나가는 그대에게」에는 사명使命을 받들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글이 실려 있다. 장유는 황제가 있는 북경을 관광하게 된 고용후에게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다녀올 것을 주문하였고, 정약용은 청나라로 가는 이기양에게 이용후생利用厚生과 관련된 선진 문물을 배워 오라고 부탁하였다. 일본 사행은 험하고 먼 바다를 건너는 위험과, 침략과 약탈을 자행하는 저들을 회유하고 제압하여 원하는 성과를 거두고 돌아와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일이었다. 권근은 회답사로 일본에 가는 박돈지에게 어려운 임무를 맡은 것을 칭찬하고 임무를 잘 마치고 돌아오기를 축원하는 내용을 써서 준다. 이 장에 실린 송서를 통해 동아시아의 외교 정세와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외교 대처 태도를 관찰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4장 「유람을 떠나는 그대에게」에서 소개하는 송서는 좀 더 개인적인 동기로 자유롭게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준 글이다. 따라서 유람하는 곳의 빼어난 경치 외에 지리적인 조건, 유적 명칭의 유래, 전설과 설화, 관련 인물들의 일화나 추억담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긴다. 유람과 관련된 송서를 받는 사람으로는 승려가 많다. 조선이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긴 했어도 지식인들은 여전히 승려와 자유롭게 교유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최해가 승려 선지에게 준 송서에는 금강산과 관련된 폐단을 날카롭게 분석한 내용이 실려 있고, 박팽년이 승려 설경에게 준 글에는 깨달음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유람을 비판한 내용이 실려 있다.
5장 「길 떠나는 그대에게」에서는 앞의 네 장의 주제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송서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다. 정도전이 과거 보러 가는 문하생 조박에게 준 글, 정제두가 영암으로 귀양 가는 벗 이세필에게 준 글, 서거정이 장원 급제하고 성묘하러 가는 도하에게 준 글 등 다양한 사연을 담은 송서를 감상할 수 있다.

[책속으로 추가]

ㆍ 2장「지방관으로 나가는 그대에게」 중에서

득실과 이해를 편안히 받아들이게-이숭인
남원으로 부임하는 이 시어사를 보내며 送李侍史知南原序

이군이 처음 감찰監察로 들어와서는 이름난 어사御史가 되었고, 중간에 임주林州 충청도 임천林川를 맡아서는 어진 수령이 되었으며, 또 안렴사按廉使가 되었을 때는 한 도道가 혜택을 입었다. 이군의 재주는 베풀면 통하지 않는 데가 없고 써도 써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으니, 이군이 남원을 다스린다면 능숙한 솜씨로 여유롭게 다스림을 펼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지방관을 가리키는 ‘순리循吏’라는 말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뒷날 남쪽 지방의 수령 중에 정령政令을 줄이고 부세賦稅를 가볍게 하여 백성들이 그 땅을 편하게 여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 그 수령은 틀림없이 이군일 것이다. 그의 처신이 올바른 것을 찬미하고 또 다스림이 효과를 거두도록 권면하였으니, 이는 붕우 사이에 간곡하게 일러 주는 도리이다.

고려 말의 학자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이 남원으로 부임하는 이이李?에게 준 글이다.
이이는 벼슬길에 나온 지 10년이 다 되도록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1371년에야 사헌부 시어사에 발탁되었다. 이해에 공민왕은 그간 국정을 장악하고 전권을 휘두르고 있던 신돈辛旽을 제거하고 그 추종 세력을 축출하였다. 이 시기에 이이가 등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몇 달 만에 그를 다시 남원 부사로 내보냈다.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조정의 개혁 분위기 속에서 발탁한 사람을 몇 달 만에 외직으로 내보낸 것은 정상적인 조처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당사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이는 좌천이라고 할 만한 인사 조처에도 불만스러운 기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볼 때 그는 자신을 절제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돌아가게 마련이다.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고, 업무와 관련된 실수로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로서 억울하고 화가 난다 해도 사안마다 나서서 해명하여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이가 진정한 군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숭인은 바로 그런 점을 두고 그가 틀림없이 어진 수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ㆍ 3장「사신으로 나가는 그대에게」 중에서

그대를 만난 뒤엔 마음이 뿌듯해졌었네-이이
중국으로 사행을 떠나는 윤자고를 보내며 送尹子固根壽朝天序

선비에게는 세 부류의 벗이 있다. 시문으로 서로 어울려 즐기는 벗은 문우文友이고, 벼슬길에서 서로 이끌어 주는 벗은 환우宦右이고, 성리학을 함께 연구하는 벗은 도우道友이다. 벗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무엇으로 벗이 되는지는 같지 않다. ……
나와 자고子固 윤근수尹根壽의 자는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으니, 우리의 교우 관계는 반드시 세 가지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상한 것은, 서로 만나는 일이 매우 드물지만 만나면 서로 속마음을 환히 알고, 서로 권면하는 말이 세속 사람들이 하는 말과 다른데도 만난 뒤에는 뭔가를 얻은 듯한 뿌듯한 감정이 든다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의 교제는 시문이나 벼슬과 관련된 만남은 아닌 듯하다. 지금 자고가 부사副使가 되어 중국으로 떠나면서 한마디 해 주기를 요청하니, 감히 글을 지어 주지 않을 수 없다. ……
나는 학문이 향상되지 않고 뜻이 날로 예전만 못해지고 있어, 자고가 내게 바라는 바를 저버리고 말 것 같다. 그래서 자고가 중화中華의 문물을 보고 돌아와서 내가 외우畏友의 덕을 더욱 많이 보게 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자고는 힘쓸지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명나라로 가는 친구 윤근수1537~1616에게 준 글이다.
이이는 윤근수와 자신의 관계를 ‘도우’라고 규정하였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속내를 잘 알고, 듣기 좋은 칭찬보다 충고나 권면을 중시하며, 만나고 나면 뿌듯해지는 친구로 본 것이다. 둘 사이의 교제를 설명한 대목은 윤근수만이 아니라 이이까지도 돋보이게 한다. 그의 올곧은 성품과 삶의 방식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이가 글의 말미에 붙인 당부는 사행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담을 자신과 공유하자는 것이다. 학문에 진전이 없고 목표가 점점 낮아지는 자신에게 자극을 주고 동기 부여를 해 달라는 말은, 진정 도를 함께 강마하는 벗에게나 바랄 만한 것이다. 더 이상 인사치레에 가까운 칭찬 따위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간결하고 담백하면서도 진정성이 담긴 글을 노자로 받아 든 윤근수가 느꼈을 뿌듯함과 든든함이 부럽기만 하다.

ㆍ 4장「유람을 떠나는 그대에게」 중에서

내 아들도 살아 있다면 함께 떠났을 텐데-김창협
풍악산으로 유람을 떠나는 이위를 보내며 送李瑋游楓嶽序

이렇게 나는 금강산을 두 번이나 갔지만 모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에 늘 마음속으로 잊지 못하였다. 그래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면 말을 타고 동쪽으로 향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이런 마음은 늙고 병이 들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병이 더욱 심해져서 방 안에 들어앉아 지내는 신세인데, 이생李生 백온伯溫 이위李瑋의 자이 찾아와서 금강산 유람을 떠난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자 이전에 지녔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불현듯 되살아났다. 하지만 힘이 따라 줄 턱이 없다. 늙고 병드는 것은 정상적인 이치일 뿐이니, 탄식해 무엇하겠는가?
다만 죽은 내 아들이 살아 있을 적에 산수 유람을 유난히 좋아하여 금강산에도 한 번 갔었으니, 아마도 그 아이가 나보다 여한이 많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 아이가 평소 교제하던 벗들 중에서 백온만큼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 없어 함께 오대五大 명산을 유람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니 지금 만약 살아 있다면 필시 복건幅巾 차림으로 나귀를 타고 길을 나설 것이요, 백온 혼자 떠나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은 늙고 병든 사람이 기운을 내기 어려운 것에다 비할 정도가 아니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조선 후기의 학자 김창협이 금강산으로 유람을 떠나는 이위1676~1727에게 준 글이다.
이위는 김창협의 문인이자 그의 맏아들인 김숭겸金崇謙 1682~1700의 벗이었다. 김숭겸은 부친과 숙부 김창흡金昌翕에게서 수학하여 학문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19세로 요절하였다. 산수를 매우 좋아하여 금강산, 천마산 등 명산을 유람하였다고 한다.
제자 이위가 김창협에게 금강산 유람을 떠나겠다고 인사를 하러 왔다. 김창협은 지난날 두 차례 금강산을 유람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곳의 절경을 두루 둘러보지 못했던 일을 떠올리며 아쉬워하였다. 이제는 늙고 병들어 따라나설 기력도 없지만, 늙고 병드는 건 자연의 이치임을 알기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길을 나설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열아홉 나이로 요절한 맏아들이 떠오른 것이다. 김숭겸은 유난히 산수를 좋아하였고 금강산 유람도 한 차례 다녀왔었다. 그리고 이번에 길을 떠나는 이위와 금강산 유람을 함께 하자고 약속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 아들은 죽고 이위 혼자 금강산 유람을 떠나게 된 것이다. 살아 있다면 이위와 함께 금강산의 명승지마다 발자취를 남길 텐데, 이젠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김창협은 슬픈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을 듯하다.

ㆍ 5장「길 떠나는 그대에게」 중에서
한 손으로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환란을 막고자 했네-정제두
영암으로 귀양 가는 이중보를 보내며 送李仲輔謫靈巖序

다만 고생스러운 상황에서 심지가 흔들리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에 인내심을 기르고 심성을 단련하여 능하지 못한 것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부지런히 학문을 연마하여 깊은 경지에 다다르도록 하는 것, 중보가 여기에 힘을 쓸 수 있을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다. 예로부터 성현들은 이러한 고난을 경험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지금 중보가 과연 이런 고난을 통해서 성숙해진다면 그가 이루는 바가 오늘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고, 문충공의 성대한 덕업과 공렬功烈을 그 또한 대를 이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칭송만 하고 충고가 없는 것은 옛사람들이 글을 지어 주던 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써서 중보에게 답하고, 아울러 동문수학한 우리들의 부끄러운 마음을 보인다. 지금 중보의 뜻이 연원이 있는 것임을 알았으니, 곤경에 처하게 된 그에게 어찌 그 증조부와 같은 공을 쌓기를 독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정제두가 전라도 영암으로 귀양 가는 벗 이세필1642~1718에게 준 글이다. 이세필은 선조와 광해군 때의 명신인 백사 이항복의 증손으로, 정제두와는 박세채朴世采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동문이다.
이항복은 광해군 때 북인 정권의 폐모론을 목숨 걸고 반대했었는데, 지금 이세필은 예송에 휘말려 덕원으로 유배된 서인의 영수 송시열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영암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정제두는 이세필 가문의 내력을 기술함으로써, 이세필이 그 증조부 이항복처럼 옳다고 생각하는 일 앞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 인물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이세필의 행동은 과연 타당하고 적절한 것이었을까? 이항복이 폐모론을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반대하고 나선 것처럼 이세필이 예송 문제와 관련하여 상소를 올린 것도 그만한 대의명분을 갖춘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세필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위험을 무릅쓰고 소신대로 행동한 점은 그 선조 문충공 이항복을 닮았다고 할 만하다.
정제두는 이세필에게 마음이 괴로울 때에 인내심을 기르고 학문에 힘써서 문충공을 이어 성대한 덕업과 공렬을 이루도록 독려하였다.


목차


책머리에 4

1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대에게
좋은 술은 아니지만 사양 말고 한껏 드시게-이규보 ㆍ18
그대의 마음을 내가 아네-이색 ㆍ22
내 어찌 그를 만류할 수 있겠는가-권근 ㆍ27
벼슬보다 중요한 게 부모님 봉양이지-성삼문 ㆍ32
마음으로 만사萬事를 주관하게나-배용길 ㆍ37
세월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네-정경세 ㆍ45
스승의 학문을 힘써 계승하게나-홍여하 ㆍ52
출세를 위한 공부는 하지 말게나-정제두 ㆍ59
환란을 피할 수 있다면 즐겁게 떠나야 하리-김창협 ㆍ63
그대는 초야에서 늙을 사람이 아니네-채제공 ㆍ69

2 지방관으로 나가는 그대에게
어찌 한 고을에만 복이 될 뿐이겠는가-이제현 ㆍ78
그곳에서 오랫동안 정사를 펼 수 있을 것이네-이곡 ㆍ84
득실과 이해를 편안히 받아들이게-이숭인 ㆍ89
돌아가신 뒤에는 녹봉도 다 소용없지-서거정 ㆍ95
처음 만나서도 오래된 벗처럼 느껴졌네-최립 ㆍ102
틀림없이 잘 해낼 것이네-신흠 ㆍ108
은혜를 베풀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걸세-장유 ㆍ113
거문고를 타듯이 고을을 다스리시길-김창협 ㆍ119
당신이 쓴 글을 경건한 자세로 외우겠소-박제가 ㆍ125
그대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이네-정약용 ㆍ131

3 사신으로 나가는 그대에게
전쟁 없는 세상, 이번 걸음에 달렸네-권근 ㆍ138
드넓은 바다를 평탄한 길처럼 볼 것이네-서거정 ㆍ145
그대를 만난 뒤엔 마음이 뿌듯해졌었네-이이 ㆍ152
큰 책임을 맡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신흠 ㆍ157
돌아와 보고 들은 것을 내게 이야기해 주게-이정귀 ㆍ162
우리 스스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네-장유 ㆍ168
유학의 도로써 그들을 변화시켜야 하네-이식 ㆍ175
어진 선비와 대도大道를 강론하길 바라네-서영보 ㆍ181
이용후생 방안을 배워 오게나-정약용 ㆍ188

4 유람을 떠나는 그대에게
왜 뒤늦게 금강산에 가려 하는가-최해 ㆍ196
먼저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게-이색 ㆍ204
나도 금강산에 올라 천리 밖까지 바라보고 싶네-권근 ㆍ209
무엇 하러 이 산 저 산 분주하게 오가는가-박팽년 ㆍ214
진기한 꽃, 옥 같은 나무들을 많이 보고 오시게-이승소 ㆍ219
어디든 도가 없는 곳이 없네-서거정 ㆍ226
추구하는 도는 달라도 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네-김종직 ㆍ233
비둘기가 붕새를 사모하듯이 부러워한다네-성현 ㆍ239
내 아들도 살아 있다면 함께 떠났을 텐데-김창협 ㆍ244
정신을 기르는 것은 지나치더라도 탐욕이라 하지 않네-정약용 ㆍ249

5 길 떠나는 그대에게
국가가 인재에게 거는 기대를 깊이 생각하게나-정도전 ㆍ256
호남의 풍류에 마음을 뺏길까 두렵네-박팽년 ㆍ261
고향 사람 모두와 기쁨을 나누게나-서거정 ㆍ265
명성과 지위가 그대를 버려두지 않을 것이네-김종직 ㆍ270
행여 이단異端의 방술에 빠져서는 안 되네-이식 ㆍ274
무슨 생각으로 이곳까지 와 주었나-정온 ㆍ279
직언하는 신하로 한 시대의 성쇠를 점칠 수 있네-조익 ㆍ285
한 손으로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환란을 막고자 했네-정제두 ㆍ292
오늘이 쉽게 가 버리는 것이 슬프네-박제가 ㆍ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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