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는 '세계일주'의 문턱이 유난히 높아 보이고 낯설게만 느껴지던 시절, 평범한 대학생이던 작가 장찬영은 우연히 인터넷 펜팔을 시작했고, 펜팔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세계일주를 떠났다. 2009년 8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총 529일 동안 그가 다녀간 나라는 5대륙 23개국, 그는 당초 목표했던 펜팔 친구들과의 만남과 세계일주 모두를 이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의 여행이 한편의 영화였다면 이 스토리는 여기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고 크레딧이 올라가야 맞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질문 하나가 새겨졌다.
'그래서 이제 뭐 하지?'
세계일주 후, 장밋빛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그의 삶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계일주의 훈장'은 현실에서 '프리 패스 티켓'이 아니었다. 오히려 짐이 되기도, 혹은 발목은 잡는 족쇄로 작용했다. 많은 이들이 꿈꾸고 그리는 '세계일주 후'의 영화와 같은 삶은 없었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는 세계일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을 박차고 뛰쳐나가라'고 단언하지도 않는다. 다만 여행이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그는 세계일주 후, 뒤늦게 부랴부랴 학업을 마쳤고, 남들과 똑같이 취업 준비에 맞닥뜨렸으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며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며 눈을 비빈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 장찬영은 '세계일주'라는 거대한 타이틀에 압도되어 달콤한 열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많은 세계여행자들의 경험담에 등장하는 '이상향' 같은 이야기가 아닌, 조금 더 현실적인 질문과 고민을 전한다.
당신의 일상과 여행의 간극에 대해서.
이제는 친숙한 단어가 된 '세계일주'. 선택된 이들만이 선택했던 이 여행의 문턱이 조금은 낮아진 듯 하다. 문턱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는 그간 많은 이들이 세계일주를 했고, 그 경험이 또 다른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 현재도 많은 세계 여행자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매일매일 손 안의 작은 화면에는 꿈에 그리던 다양한 여행의 장면들이 그려진다. 다만 화려한 그들의 여행 이면의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인생에 있어 어찌 보면 가장 큰 용기와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 여행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의 이야기 말이다.
작가 장찬영은 이러한 물음에 답한다. '세계일주'에 가려진 치열했던 준비 과정, 그리고 더욱 더 치열해진 그 이후의 삶, 그리고 여전한 여행에 대한 갈망까지, 그의 경험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냈다.
작가는 이제 막 세계일주의 문턱에 들어선 이들을 대신해 묻는다.
'그 많은 세계여행자들은 무얼하고 있나?'
여행으로 인해 시야가 넓어졌다, 인생을 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이런 말이 아닌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시야가 넓어져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어떠한지?
그 후의 삶에 스스로 만족하는지?
꿈을 꾸었다.
세계일주를 다니는 꿈이었다.
발바닥에 찬 바람이 느껴져 잠에서 깨었다.
창문의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커튼을 걷고 창 밖을 바라보니 뿌연 먼지와 함께
회색빛의 이집트 시내가 보였다.
그렇다. 나는 세계일주를 하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꿈을 꾸었다.
세계일주를 다니는 꿈이었다.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바라보니
아직 어둑어둑하다.
어서 씻고 출근해야 한다. 가끔은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