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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은 백제 무왕의 자손

일본 천황은 백제 무왕의 자손

  • 이동식
  • |
  • 국학자료원
  • |
  • 2015-11-27 출간
  • |
  • 325페이지
  • |
  • 156 X 232 mm /602g
  • |
  • ISBN 9791186478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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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왜 일본에서 그때까지 없던 팔각무덤이 천황의 무덤에 등장하는가? 그것은 이런 무덤을 쓰는 사람들이 일본에 새로 들어왔다는 뜻일텐데, 그것이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필자는 이런 의문에 도전을 했다. 그리고 그 해답을 풀었다. 지난 3년 여 많은 고민을 하고 궁리를 해서 한일 역사에서 새로운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이다. 그 결과 백제가 멸망할 당시 일본 천황이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백제원정군을 파견한 이유가 드러났다. 우리가 모르던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의 여왕이던 제명천황은 서둘러 백제부흥군을 편성하고 이를 지휘하기 위해 서쪽 끝인 후쿠오카까지 달려오다가 길에서 숨진다. 그 아들인 중대형황자는 어머니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일본 함대를 백제로 보냈으나 수 백 척의 함대는 백강 입구에서 궤멸된다. 백강전투에서 부흥군을 모두 잃은 일본은 한반도로 향한 모든 문을 닫아걸고 왕의 호칭도 천황으로 바꾸고 자신들의 역사도 새롭게 편찬하면서 독자생존을 강행한다.
한국과 일본 고대사의 최대의 수수께끼라 할 이 백제부흥군의 파견과 궤멸,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일본의 태도....일본 여왕은 왜 그랬을까? 왜 나라를 건 모험을 감행했을까? 일본인들도 궁금해한다.
한 전직 언론인이 이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침내 그 비밀을 밝혀냈다. 그 비밀이 드러난 계기는 묘하게도 2009년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서탑 지하에서 발견된 한 장의 금판.

미륵사의 서탑에 사리를 봉안한 사연을 적은 이 금판에서 우리가 전혀 몰랐던 백제 무왕의 왕후인 사택왕후가 등장하고 이 탑이 639년에 세워졌다는 절대연대가 나온다. 그런데 이 무렵 일본에서도 왕(서명천황)이 백제천 옆에 궁궐을 세우고 절을 만들고 탑을 세운 것으로 나오는데, 그 때가 익산의 미륵사 서탑을 세운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백제에서는 대란이 일어나 왕의 어머니와 왕자, 공주들이 추방된다. 이 후 일본에서 천황부터 증손자에 이르는 천황들의 무덤이 팔각이라는 장식을 두른, 전혀 다른 무덤이 조성된다.

저자는 각각 별개로 생각되던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의자왕의 집권, 왕의 어머니의 추방, 팔각릉의 조성 등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어, 익산 미륵사 서탑에 사리를 봉안한 사택왕후와 그 아들, 공주 등이 의자왕에게 밀려 일본으로 망명했으며 이들이 일본에 가서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호족 소아(蘇我 소가)가 씨를 대신해서 일본의 왕권을 차지한 이후에 그들이 자신들의 출신을 장엄화하기 위해 팔각릉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무덤을 쓴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것은 곧 현 일본의 천황가가 바로 백제 무왕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당시 백제와 일본의 역사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서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줄거리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처음으로 팔각릉을 쓴 일본의 서명천황은 백제 무왕이 죽은 거의 같은 해에 죽는다. 한일 양 쪽에 지도자가 같은 해 죽을 수 없다.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백제 무왕의 역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역사에 실린 것이다.
2. 백재 무왕의 왕후인 사택 씨의 출현으로 일본서기에 많이 등장하는 사택 씨가 백제에서 큰 세력을 가진 집안이었음이 드러나며, 그들이 일본에서 활동한 기록들이 연결된다.
3. 서명천황 이후 갑자기 등장한 팔각릉은 그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왕권임을 증언한다. 실제로 서명천황은 갑자기 지명되는 것으로 나오고, 그 이후 그 아들이 쿠데타로 소가 씨를 죽이고 정식으로 왕권을 차지하게 된다.
4. 이 때 등장한 팔각이란 양식은 일본에 전혀 없던 것으로서, 고구려의 환도산성에서 시작돼 고구려와 신라, 백제를 거쳐 발전해 온 한반도의 양식이며, 백제의 우물, 익산의 미륵사의 팔각 석등 등 백제 말기에 유행하던 양식이었다. 특히 최근에도 용인 할미산성에서 팔각 제단이 나오는 등 백제 지역 산성에서 팔각제단이 많이 나옴으로서 이들이 일본의 팔각양식과 연결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5. 최근 익산 왕궁리의 옛 건축물의 조성 방법이 650년대에 일본 오사카에 세워진 나니와궁의 건축 수법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각종 공예품의 장식도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고 익산의 세력이 일본에서 활동한 흔적이 고고학적으로도 점점 확인되고 있다.
6. 이런 관련사항들을 종합하면 백제 의자왕은 쿠데타를 일으켜 무왕이 총애하던 사택왕후와 그 일족을 쫓아내고 백제를 차지하며, 사택왕후는 왕자, 공주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해서 자신의 집안 등과 협력해서 일본의 왕권을 차지하는데, 그것이 곧 645년 일본의 대화개신(大和改新)이며 이 때 자신들이 하늘로부터 점지되어 내려온 신성한 왕권임을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과 팔각을 살린 궁궐수축 등을 실시하게 된다. 그러다가 백제가 망하게 되자 자신의 남편이 다스리던 나라의 재건을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부흥군을 보내는 것이다. 여왕이 죽은 후 그 아들은 천지천황으로 즉위해 일본에 정식으로 천황의 나라를 열었는데 그것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버지로부터 어머니,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천황들의 무덤이 하늘을 상징하는 팔각의 제단이나 호석을 두르도록 한다.
7. 그 뒤 천황의 후계가 여성으로 이어지면서 팔각릉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천황가를 떠받치는 집안인 등원(藤原 후지와라)계가 팔각탑이나 팔각전을 만들어 조상을 기리고 있다.

저자는 한일 역사학 양쪽에 나눠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많은 사건들이, 백제 무왕가의 일본 왕권접수라는 꼬챙이로 걸어보니 다 의미가 살아나면서 역사의 수수께끼가 확연히 풀리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로써 왜 일본인들이 아직도 백제에 대해 그렇게 애착을 갖고 있는지, 또 백제부흥운동이 완전히 실패했을 때에 “이제 조상의 묘소를 어찌 찾아갈수 있으랴”라고 한탄한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밝히고 있다.

이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한 저자 이동식은 KBS에서 문화와 역사방면 전문기자로서 활약한 언론인으로서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김해 대성동, 양동의 발굴, 미사리와 하남 위례성 관련 발굴 등 주요 역사현장을 취재 보도했으며 일본의 임나일본부 주장의 허구성을 밝힌 <임나일본부는 없었다>와 우리나라 방송사상 최초로 중국 실크로드를 답사해 제작한 <서역기행 5천 킬로> 등 역사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방영을 담당한 역사 전문기자였다. 2009년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의 발굴기사, 그리고 그 뒤에 2010년부터 일본에서 쏟아진 팔각 천황릉의 확정 등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추적해 마침내 7세기에서 8세기 한일 두 나라의 역사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금판 한 장이 이렇게 한일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백제에서의 팔각문화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일본의 팔각릉이 백제와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 백제의 역사가 올바르게 복원되면 일본의 역사도 제대로 살릴 수 있고 그 속에서 우리의 고대역사도 되찾을 수 있다고.
그런 면에서 이번 저서는 어둠에 휩싸인 한일 고대사, 한일 관계사에 새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더 많은 관련연구를 불러일으키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목차


<1장> 두 개의 사건
사택왕후의 등장∥13 제명천황릉의 재등장∥20 사택씨의 부활∥26
일본에서의 사택씨∥29 사택씨와 일본 황실∥32

<2장> 팔각 천황릉의 수수께끼
(1) 팔각 천황릉의 주인들
서명천황릉∥40 제명천황릉∥44 천지천황릉∥48
천무ㆍ지통 천황릉∥52 초벽황자릉(束明神古墳)∥56
문무천황릉(中尾山古墳)∥58 다른 곳의 팔각분∥60
(2) 일본 황실은 감추었나?
일본인이 모르는 팔각릉∥66 감추려 한 8각릉∥72
일본신화의 8∥77 뿌리를 모르는 8∥80
(3) 일본의 팔각문화
나니와궁∥86 몽전의 비밀∥89 구세관음∥92 기쿠치성(鞠智城)∥96

<3장> 팔각의 원류
(1) 고구려의 팔각
고구려에 팔각이 있다∥105 환도성의 팔각∥106 팔각 목탑∥112
(2) 신라의 팔각
나정∥118 팔각목조쌍탑∥122 이성산성의 팔각∥124
산성의 팔각∥127 망이산성∥129 할미산성의 팔각건물지∥131
(3) 백제의 팔각
이성산성 다시 보기∥134 동사지의 팔각∥138 훨씬 내려간 연대∥141
불상 대좌인가?∥142 초기 도성의 문제∥145
(4) 중국의 팔각
중국인의 8∥151 중국 불교의 팔각∥156
(5) 한국인들의 팔각문화
고구려에 팔각우물이 있었다∥160 신라의 팔각우물∥162 백제의 우물∥165 백제인이 처음 만든 팔각석등∥168

<4장> 역사 속에 숨은 주인공
최초의 팔각릉∥173 서명천황∥176 실제 천황인가?∥179 백제 무왕∥181
무왕과 의자왕, 서명천황∥184 황극천황∥189 정권 접수∥192 보황녀∥194
쿠데타 세력의 하늘∥200 명당의 의∥203 묘제와 장례법의 개혁∥208

<5장> 과연 누가 왜 만들었나?
을사의 쿠데타∥213 중대형황자∥214 교기왕자∥219 중신겸족∥228
다른 가지의 열매∥231 천지천황의 천도∥236 지통천황∥239
제명천황∥239 8각릉 조성의 주체∥246

<6장> 미륵사와 팔각
백제엔 없다?∥253 석등은 백제에서∥254 석등은 팔각∥257
옥개석과 팔각무덤∥261 미륵사의 연꽃∥262 숨어있던 팔각∥264
옥충주자∥268 정양사의 팔각전∥271 백제대탑∥273
무왕릉과 서명천황릉∥275

<7장> 천황가와 등원가
팔각릉 속에 잠들다∥281 나니와궁 팔각전∥282 부비등∥289
영산사 팔각원당∥295 여제의 꿈∥299
팔각은 천지와 중신 집안의 상징∥304 중신겸족의 무덤∥306

<8장> 살아있는 역사
풀린 비밀코드∥311 감추려했을까?∥313 역사 연구의 관점∥315
백제사의 복원∥319 역사의 복원 이후∥320

◆ 참고도서∥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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