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집을 나선 그 시간, 우리 할머니는 무엇을 하실까요?
할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사랑, 헌신, 육아 등 할머니 자체가 아니라 그녀와 관계 맺은 아들딸, 손주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상되고 정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 대신 할머니 육아가 일반화되면서 할머니의 노년은 어쩌면 더 헌신을 향해 강요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취미생활> 속 할머니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모두 일하러 가고, 새봄이도 유치원에 간 그 시간, 할머니는 무얼 하실까요? 새봄이의 머릿속에 그려진 할머니의 모습이 그러하듯, 집안일을 하시거나 손녀가 오기를 멍하니 기다리고 계시겠지 생각하겠지만, 이 그림책 속 할머니는 이런 뻔한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습니다.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취미생활>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 잊고 있던 할머니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오롯이 할머니 자신에게 부여된 삶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헌신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하고 또 강요 받는 현실에 대해 잠깐 멈춰 서서 바라보게 합니다. 이 땅의 모든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취미 생활을 응원하고, 그 침범할 수 없는 시간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조용히 속삭입니다.
착착 ???, 신나는 비밀에 동참해요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취미 생활> 속 할머니의 취미 생활은 번쩍번쩍, 착 달라붙는 에어로빅복을 입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출렁출렁 실룩실룩, 온몸이 음악에 반응하는 그 시간이야말로 할머니가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시간인 듯합니다.
할머니의 비밀에 새봄이가 까딱까딱 동참하고, 도통 화분과 신문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할아버지조차 슬금슬금 어깨 한쪽을 들썩이면, 공간을 가득 메운 유쾌함의 에너지가 한가득히 전해옵니다.
이만큼 자유롭고, 이만큼 격식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이만큼 신나는 비밀이 또 있을까요?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취미생활>은 할머니부터 엄마, 아빠, 아이가 모두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면서, 음악을 틀어 놓고 따라 해 보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책입니다.
할머니의 취미 생활을 넘어서, 건전한 가족 취미 생활을 제안하는 그림책입니다.
정감 넘치는 표정, 몸짓 묘사로 그려낸 건강한 인생극장
오하나 작가에게 그림책은 ‘매일의 도전이고, 잊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남기는 방식이고, 소통과 공유의 방식’입니다. 전작 <우리 동네 달걀 왕>에서 작가는 탄광촌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을 세밀하게 기억해 내고, 그 기억 속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이야기를 발견해 냈습니다.
세련된 배리에이션은 없지만, 그녀의 그림은 리얼리티가 살아 숨쉬고 각 상황과 인물에 더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취미생활>에서도 감탄할 만한 할머니의 에어로빅 장면이 탄생했습니다. 할머니들에게 인기 있는 에어로빅 강좌를 찾아다니며 직접 수강생이 되어 에어로빅을 배우고 관찰한 공력이 오롯이 이 그림책 속에 차곡차곡 담겼습니다.
오하나 작가가 이뤄낼 ‘매일의 도전’, 그 건강하고도 따스한 시도가 그림책 인생극장처럼 생생하게 독자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