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스님
청정계율을 근간으로 수행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했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율사이자 정토 수행자였다.
1927년 혜운慧雲스님에게 사미계를, 율사 경념敬念스님에게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사에서 율장연구에 몰두했으며 용성선원과 김용사, 통도사 등에서 정진했다.
1938년 9월 9일 용성스님을 법사로 모시고 입실건당入室建幢하며 법맥을 이었다. 대중들에게는 항시 온화한 미소와 자애로움으로 공부를 권했지만, 제자들에게는 엄격함으로 경책을 대신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해 해인학원 이사장, 동국역경사업진흥회 이사장, 동국역경원장 등의 소임을 두루 거쳤다. 제자들을 모아놓고 윗사람은 부모처럼 아랫사람은 자식처럼 여길 것을 당부했다.
1992년 2월 7일 오후 10시 해인사 홍제암에서 세수 82세 법랍 65세로 서쪽을 향해 앉은 채로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념하며 왕생극락 하였다. 이때 향기가 진동하고 묘한 음악이 청아하게 들려왔으며 염불소리와 함께 입으로부터 오색 광명이 서쪽 하늘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