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흔히 형사소송의 목적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진실의 발견, 즉 과거에 일어난 사실의 확인은 기억에 의존한다. 앞에서 인용한 말은 영화 ‘메멘토’에서 수사관의 대사이지만 현대 뇌과학의 결론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사실은 기억의 기록창고에서 꺼내오는 사실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해석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형사절차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는 사실확인의 과정은 과거의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 “형사소송에서는 ‘진실의 실체’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 진실’이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이 오늘날 형사소송법 이론의 일반적 결론이다. 이러한 결론에 따르면 형사절차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 공정하게 구성되도록 절차를 형성하는 것이며,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의 해석 및 적용은 공정한 절차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아가 형법이 ‘시민의 마그나카르타’라면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마그나카르타’라는 형사법의 큰 원칙도 형사소송법 이해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지 10년이 되었고, 법학 교육의 환경이 크게 변하였다. 이른바 ‘실무 위주의 교육’을 강조하는 로스쿨의 교육은 실무의 바탕이 되는 이론 또는 본질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축소하고 있다. 한편 학부에서의 법학 교육이 축소되어 법치국가의 민주시민에게 필요한 보편적 이해로서의 법학이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로스쿨 교육에서 형사소송법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최소한의 이론을 담는 한편, 판례를 중심으로 이론이 적용되는 대표적 사례들을 소개하려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부과정에서 형사소송법에 대한 기본적 이해에 도움이 되는 교재로 활용하고자 가능한 한 쉽게 이론을 서술하려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형사소송법의 주요 쟁점마다 ‘Leading Case’를 소개하여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더불어 2018년 상반기까지의 주요 판례와 개정법률의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하였다. ‘Leading Case’와 주요 판례들을 활용하면 이론 교육과 함께 사례연구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한편으로 형사절차와 관련한 주요 통계를 각주에 기재하여 형사절차의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다만 저자의 능력에 닿지 않는 여러 가지를 욕심내다 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게 없을까 염려될 뿐이다. 앞으로 학부와 로스쿨에서 강의를 진행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려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흔쾌히 책의 출판을 허락해 준 박영사와 조성호 이사님, 그리고 까다로운 편집작업을 세심하게 수행해 주신 한두희 대리님께 감사드린다. 한국 법학의 발전을 함께 이끌어 온 박영사의 노력이 앞으로도 소중한 결실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2018년 8월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