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면 되지’의 정신으로 장사에 뛰어들다
대한민국 최고의 과일 장사꾼이자, 국내 최대 트럭 물류센터의 운영자인 배 감독. 그가 현재의 비전을 이루기까지는 트럭을 몰고 거리에서 과일을 팔았던 3년을 결코 빠뜨릴 수 없다. 하지만 이 결과를 ‘누구나 3년만 죽어라 고생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단순한 논리로 요약할 수는 없다. 처음 장사에 발을 디딘 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장사에 뛰어들었던 이전 10년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그 10년간 저자는 세 번의 가게를 거쳤다. 장사를 가르쳐준 첫 번째 야채가게에서는 놀라운 열정과 재능을 발휘해 6개월 만에 ‘오픈 전담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새로 문을 여는 지점마다 파견되어 ‘가망 없다’는 가게도 일 매출 1,000만 원까지 끌어올렸다.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시작한 두 번째 가게. 일대에서 ‘도곡동 물고기 총각’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사에 물이 올랐다. 근처의 150평 대형 슈퍼와 백화점에서 그의 노하우를 배우고자 아침마다 수첩을 들고 와서 견학할 정도였다. 마지막 가게의 청과 매장은 특히나 입지가 난감했다. 주택가와 동떨어진 허허벌판 매장에서 회사원들과 스포츠센터 회원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마케팅을 펼쳤다. 매출은 40배 가까이 상승했다. 기발한 재치, 집요한 끈기, 무엇보다 ‘팔면 되지’라는 장사꾼의 기지로 난관을 돌파하고 매출을 수직 상승시킨 과정을 책에서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거리의 트럭에서 ‘진짜 장사꾼’으로 거듭나다
‘강남역 물난리’라는 직격탄을 맞고 마지막 가게에서 1억 5,000이라는 빚과 함께 쫓겨난 그는 마지막 선택으로 트럭 장사를 시작한다. 트럭이라고 별반 다를 게 있겠냐는 자신감은 처음부터 와르르 무너진다. 다른 노점상과 가게 주인들, 단속반에 쫓겨 다니며 기름 값만 허비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급기야 ‘이렇게 살아서 뭐해’라는 생각 끝에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 난간을 향해 질주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장사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거리에서 만난 ‘장사의 스승’들 덕분이었다.
길거리 행상부터 시작해 빌딩 부자가 된, ‘미아리의 전설’이라 불리는 아주머니. 자리만 펼쳤다 하면 길 가던 사람들이 홀린 듯 모여들어 옷을 고르게 만든다는 남대문의 ‘트레이닝복 판매 왕’. 저자는 이들에게서 길거리 트럭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가 장사 선배들에게서 배운 것은 단순한 요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딴섬 같기만 하던 트럭도 활기와 웃음이 넘치는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는 태도, 혹은 희망의 이야기였다. 이때 몸으로 체득한 ‘진짜 장사’를 통해 그는 새로운 꿈을 설정한다.
100억 매출을 이뤄낸 ‘함께’의 방식
현재 저자는 세 곳의 물류센터를 운영하면서 트럭 장사꾼들과 각지의 자영업자들에게 농산물을 납품하고 있다.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트럭 물류센터를 인수함으로써 전국에 국가대표 과일촌의 제품을 유통하는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매출은 연간 100억 원에 달하며 오프라인 매장의 확대와 함께 수익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중이다. 불과 6년 전,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며 삶을 포기하려 했던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을 광경이다. 하지만 100억이라는 매출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성과를 이뤄낸 방식이다.
그가 아직 트럭에서 과일을 팔던 시기, 우연히 방송에 소개된 그의 사연을 보고 ‘제발 트럭 장사를 가르쳐달라’며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한때의 그처럼 실패와 절망에 부닥친 이들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유통회사를 만들어 절박한 사람들에게 체계적인 지원을 하고 싶다는 꿈을 그렸고 트럭장사 사관학교를 만들었다. 그는 사관학교의 감독으로서 팀원들에게 트럭 장사의 방법을 가르치고 현장에 동행하여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회사는 교육과 유통만을 담당할 뿐, 수익은 장사를 하는 이들에게 100퍼센트 돌아간다. 트럭 장사라는 훈련을 거친 이들은 목표했던 자금을 모아 독립하기도 하고, 일부는 과일촌의 지원으로 자기 가게의 주인이 되기도 한다.
이 책 《트럭 모는 CEO》에는 트럭장사 사관학교를 찾은 이들의 각양각색 사연이 소개된다. 철도에서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배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던 이부터, 유명 대학 건축학과를 자퇴하고 찾아온 학생, 한때 어두운 세계에서 ‘형님’으로 통하던 전라도 사나이,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홈쇼핑 쇼호스트 등, 팀원들이 저마다의 시련을 딛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장사란 그저 이익을 낳는 수단이 아니라 모두의 손을 잡고 함께 꿈을 이뤄내는 일이라는 배 감독의 목소리에 공감하게 된다.
장사는 은퇴자의 무덤이 아닌, 희망의 텃밭
현재 그는 ‘강연하는 트럭 장사꾼’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의 유명 대학이나 방송국, 국회의사당, 국방부, 대기업, 소상공인이나 농민 모임에서 수시로 특강 요청이 들어온다. 모든 의뢰를 소화할 수는 없어 한 달에 횟수를 정해놓고 강의를 하지만,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자리라면 언제든 마다하지 않는다. 강의를 하러 갈 때나 기업 대표와 점심 약속을 한 자리에나 그는 늘 오래된 1톤 트럭을 몰고 간다. 이 트럭은 그의 유일한 자가용이자, 거리에서 목이 쉬어라 과일을 팔았을 때부터 동고동락한 동료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도 이 트럭을 타고 산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농산물을 구매한다. 산지를 돌고 오면 밤 12시가 되는 날이 허다하지만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먹어보고 구매한다’는 그만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다. 게다가 그가 고른 물건이 장사하는 이들의 자존심과 직결된다고 생각하면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트럭을 몰고서 전국 산지를 다니고, 지게차에 올라 직접 짐을 내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직원들 시키지, 대표님이 왜 직접 하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저 대표 아닙니다. 배 감독이지.”
장사는 은퇴자의 무덤이 아닌 희망의 텃밭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배 감독. 그 통로가 될 전국 100개의 과일가게를 목표로, 오늘도 그는 트럭을 몰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