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통을 탐구한 위대한 학자들의 400여 년에 걸친 발걸음
중국학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문헌학적 방법론을 쇄신한 위대한 중국학자들
전통을 지키고 진리를 추구했던 그들의 이름을 따라
서양 중국학의 장구한 역사를 되돌아본다
『위대한 중국학자』는 서양 고전문헌학이 중국이라는 타자를 탐구해온 역사 속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학자들의 발걸음을 모은 중국학의 통사이자 중국학자들의 위인전이다. 유럽세계에서 동양은 오랜 기간 동안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어렴풋한 장소로만 머물러왔다. 16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유럽은 중국이라는 낯설고 거대한 세계에 대한 탐구와 교류를 시작하고, 이는 곧 중국학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유럽 전통의 중국학은 주로 고전문헌학을 일컫는다. 1838년경에 만들어진 ‘중국학자’라는 명칭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문헌학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 또한 그러한 전통을 따라 중국학 내에서도 문헌학적 방법론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학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학자들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 계보학적 모형을 택한다. 계보학적 접근법을 통해 저자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그 고전적 형태를 완성한 문헌학적 중국학의 구조와 방법론을 회고적이고도 연속적으로 기술한다. 이러한 틀은 각 학자들의 생애와 저술, 그리고 그들이 택한 문헌학적 방법론을 풍부하게 담아내어 자연스레 개별 인물의 위인전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들의 발걸음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굳건히 진리를 추구한 학자들의 신념과 고전문헌학의 가치를 마주할 수 있다. 위대한 중국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오늘날 골동취미로 오해받는 고전문헌학을 적극 옹호하며, 여전히 그 전통에서 끊임없이 배워나가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중국학의 태동: 이베리아반도 단계
아직 중국이 유럽 사람들에게 미지의 대륙으로 남아 있을 때, 가장 먼저 중국인과 교류하며 중국 문명을 연구한 사람들은 16세기 유럽의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종교적 목적을 띠고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선교 과정 속에서 그들은 뛰어난 학자로 발전한다. 다른 말과 글을 쓰는 이들에게 신앙을 포교하기 위해 한자를 터득해나간 선교사들은 곧 중국의 경전을 번역하고, 사전을 편찬하기도 하는 등 훗날 중국학의 토대가 될 번역 및 저술 활동을 시작한다. 이 시기를 중국학에서는 ‘이베리아반도 단계’라고 한다. 이베리아반도 단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집단은 도미니크회 선교사들과 예수회 선교사들이다. 그중에서도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 엘리트들과 교류하며 유교 경전들을 번역했으며, 중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객관적으로 저술하는 등 진정한 인문주의자이자 학자의 면모를 보였다.
중국학의 탄생: 제1세대 전문 중국학자의 등장
18세기에는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중국학’이라는 학문이 제도화되기 시작한다. 장피에르 아벨 레뮈자는 유럽 최초로 중국학 전문 교수직을 맡은 학자다. 레뮈자는 중국 문자의 성격, 단음절성, 첩어적 표현 등과 같은 중국어의 여러 측면에 집중한 연구활동을 펼쳤다. 그가 중국학 교수로 취임한 해를 곧 중국학의 탄생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레뮈자를 비롯한 에티엔 푸르몽, 테오필루스 바이어, 기네 부자와 스타니슬라스 쥘리앵 등 뛰어난 학자들이 중국학의 토대를 다졌지만, 이 시기의 중국학은 명백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코르디에는 제1세대 중국학자들의 작업이 환상적 억측과 무의식적 편견으로 뒤덮여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은 중국을 아리아인들과 문화적, 언어적으로 연관시키려는 아리아주의를 띤 문화적 평행대조광들의 연구였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1870년대에는 사회과학적 중국학이 탄생하여, 현지 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최초의 시도들이 중국 연안의 중국학자들에 의해 행해지기도 했다.
프랑스 문헌학의 거인들
프랑스의 중국학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에두아르 샤반, 폴 펠리오, 앙리 마스페로를 들 수 있다. 프랑스 중국학 전통에 기반을 둔 에두아르 샤반은 특정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방대한 일차 자료에 대한 빈틈없는 지식과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의 고고학 작업을 통해 일차 자료를 늘리는 등 중국학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샤반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은 금석학이라는 새로운 분과학문을 창시한 것이다. 샤반은 그전까지 비교적 덜 주목받았던 비문들을 현장에서 수집해 연구하고 번역했다. 그는 금석학적 증거들을 모으기 위해 중국과 만주, 몽골 등지를 탐험하며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연구를 펼쳤다.
폴 펠리오는 샤반에 버금가는 프랑스 중국학의 또다른 거인이다. 그는 문헌 자료를 다루는 비범한 능력으로 문헌학 내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전선에 있었다. 목록학, 언어학, 비판정본 작업, 고문서 해독, 고고학, 역사 연구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와 내륙아시아 민족들의 언어·역사·예술, 고고학에도 정통할 만큼 걸출한 장악력을 보였다. 펠리오는 매우 뛰어난 텍스트 주석가이기도 했다. 그의 역주식 접근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헌학적 연구에서 따라야 할 최고의 모범으로 남아 있다.
동료인 펠리오로부터 ‘고대 중국의 남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린 앙리 마스페로는 도교 경전에 대한 선구적 탐구와 사회적 및 종교적 도교에 대한 통찰력 있는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마스페로는 각 텍스트를 자료와의 관계 속에서 볼 수 있었던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라진 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복원하려 했던 그의 연구는 이러한 그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독일 중국학: 오토 프랑케와 국외추방자들
독일은 18세기 말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까지 고대학이라는 학문으로 유럽의 지적 세계를 이끌었다. 이 시기 독일에서는 새로운 탐구 기법과 발표 양식들이 개척되고 제도화되었는데, 중국학 분야에서도 게오르크 폰 데어 가벨렌츠, 빌헬름 그루베, 프리드리히 히르트 등 다양한 업적을 남긴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그중에서도 오토 프랑케는 수많은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독일의 중국학자다. 그의 저작 『중국사』는 중국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업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가치를 발하고 있다. 『중국사』는 중국을 민족 혹은 제국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로 이야기하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 유럽이 중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도그마에서 해방시켰다는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학문적 발전을 이룩했던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많은 학자가 탄압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다수의 중국학자들은 국외로 추방되거나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가서 연구활동을 지속하게 되는데, 책에서는 이들을 국외추방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묶는다. 에르빈 폰 차흐, 아우구스트 피츠마이어, 페르디난트 레싱 등이 망명 간 국가에서 활동을 지속하며 중국학에 기여했다. 그중에서도 잉글랜드로 망명을 간 구스타프 할로운은 비판정본 작업을 정초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학자다. 그는 비판정본 작업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형식을 발전시켜 후대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과 미국의 중국학
영국의 중국학은 19세기 선교사들과 중국어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외교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중 주목할 만한 인물들은 로버트 모리슨과 알렉산더 와일리, 허버트 자일스다. 이들은 선교사이자 학자로서 다양한 번역과 저술활동으로 초기 영국 중국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국 문헌학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제임스 레그 또한 선교사 출신이지만 후에 전문적인 중국학자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선교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번역 작업을 해온 그는 1876년 중국어 교수직을 맡게 되었고, 이후로도 끊임없는 연구로 영국 중국학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 되었다. 아서 웨일리는 문학적 통찰력과 기술적 박식함을 바탕으로 특별한 성취를 이룬 학자다. 그는 주로 중국 문학에 심취했는데, 유럽의 일반 독자들도 중국 문학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번역으로 대중화에 기여했다. 이러한 그의 번역은 문헌학자로서의 역할과 시인으로서의 역할을 결합했다는 평을 받는다.
미국의 중국학 또한 영국과 유사하게 중국으로 간 선교사와 외교관들이 언어 연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선교사 전통에서 시작된 미국 중국학은 윌리엄 우드빌 록힐, 베르톨트 라우퍼, 존 킹 페어뱅크 등 다수의 중국학자들을 배출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중국학자로는 피터 알렉시스 부드버그와 에드워드 헤츨 셰이퍼를 꼽을 수 있다. 부드버그는 다른 학생과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중국학자다. 주로 역사학과 역사 서술 분석에서 뛰어난 기여를 한 그는 ‘문헌학적 인문주의’라는 그만의 방식을 추구했다. 문헌학적 인문주의는 연구 대상으로 삼는 각 단어 이면에 있는 인간의 정신적 흐름 혹은 문화적 흐름을 강조한다. 그런 만큼 그의 학문은 언제나 언어학적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다루면서도 고대인들을 사람으로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에드워드 헤츨 셰이퍼는 중세 중국의 물질문화와 중국문학에 정통한 대가였다. 그는 문학 작품에 대한 광범한 현지 조사와 유적 발굴을 통해 중세 중국세계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학문적 글쓰기를 창조했다. 이러한 그의 특출한 능력을 저자는 ‘시의 고고학’이라 정의한다.
전통을 지키고 진리를 추구하는 위대한 중국학자
『위대한 중국학자』에서 다뤄지는 중국학자들은 서양 중국학의 문헌학적 전통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영국의 사상가 칼라일이 주창한 ‘위대한 인간’ 개념을 인용하여 ‘위대한 중국학자’라 칭한다. 그리고 위대한 중국학자를 평가할 수 있는 시금석은 지속적인 진리 추구라고 말한다. 이때 진리는 어떤 ‘객관적 실제’가 아니라, 정직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방법 그 자체에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학자들은 이처럼 문헌학적 방법론을 정직하게 사용하여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진리를 추구한 위대한 중국학자다.
오늘날에는 그들이 택한 문헌학적 방법론, 텍스트를 진리의 최종 결정자로 보고 이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그들의 자세가 얼핏 시대에 뒤떨어지고 낡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미니크 라카프라가 “과거가 더 이상 현재와 무관할 때, 과거에의 몰두는 골동취미가 된다”고 경고한 것처럼, 현대의 학문은 지나간 시대의 학자들의 발걸음을 분석하고, 재검토하며 끊임없이 과거로부터 배워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저자의 표현처럼 지난 세기의 위대한 중국학자들이 남긴 전통에서 영감을 얻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들의 제단에 올리는 향이다. ‘제단의 향(Incense at the Altar)’은 이 책 원서의 제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