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
20년간 에티오피아에서 인류학 연구를 진행해온 저자는 “이 세상은 왠지 이상하다. 어째선지 갑갑하다”라는 마음이 들며 불편함을 느낀다. 특히 일본으로 돌아올 때마다 잘 갖춰지고 정돈된 시스템과 사람들을 보며 이와는 정반대의 에티오피아를 떠올리게 되고, 그 불편함의 정체에 대해 고민한다. 이 책은 저자 마쓰무라 게이치로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해답이기도 하다.
저자가 여는 글에서 언급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기타야마 아저씨’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잘 짜인 사회 시스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듯한 사람은 우리 눈에 띄지 않도록 격리되고, 사회는 안전(?)하게 유지된다. 그런데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이렇게 ‘이상한’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상한 사람은 종종 주변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개는 별다른 일 없이 사람들 속에 섞여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그들은 가끔은 상태가 좋아져서 평범하게 살아가기도 하고, 간혹 상태가 나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에티오피아에서는 평범함과 ‘이상함’이 더불어 살아간다.
외국인이 머무는 하룻밤 호텔비로 한 가족의 한 달 생활이 가능한 에티오피아. 그토록 가난한 에티오피아이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밥을 권하고 커피를 나눠 마시는 것이 당연하다. 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혼자서만 배를 채워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공항의 직원은 항상 친절하고, 커피숍에서 만나는 점원 역시 언제나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하지만 길에서 마주치는 이상한 사람에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모든 일에는 무관심해도 되는 편리한 사회다.
저자는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의문을 갖는다. 태어날 때부터 누리는 사회적 부, 그리고 주위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사회 분위기….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런 불편한 마음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류학으로 불공정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떳떳치 못함, 구축 인류학 그리고 증여론
문제 해결을 위해 저자가 꺼내 든 키워드는 ‘떳떳치 못함’과 ‘구축 인류학’이다. 얼핏 보기에 한쪽은 학문적으로 해명하기 까다로운 ‘마음’의 문제로, 다른 한쪽은 새로운 학문적 방법으로 보인다. 이 두 개념은 어떤 식으로 연결될까? 바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 둘 사이를 연결하면서 인류학적인 접점이 드러난다. 즉, 저자는 에티오피아와 일본을 오가며 느꼈던 정체 모를 불편한 감정(떳떳치 못함)을 증여와 상품 교환이라는 개념과 비교·분석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위한 ‘구축 인류학’을 주창하는 것이다.
저자가 중요하게 사용하는 ‘구축주의(Social Constructionism)’란 개념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일본에선 학술 용어로 이미 통용되고 있다. 어떤 일도 처음부터 본질적인 성질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여러 가지 작용을 받아 구축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젠더’나 ‘스트레스’처럼 새로운 개념이나 관점은 계속해서 형성되며,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와 강단에 선 저자는 여전히 “각자 서 있는 장소에서 경계를 흩트리고 틈을 만드는”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처음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 대학생이었던 나는 이제는 교단에 선 몸이 되었다. 지금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대가를 얻기 위한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중략) 실제로는 가르치려고 애쓰는 내용이 학생들에게 전혀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며,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 전해질지도 모른다. (중략) 교육이란 닿기 힘든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선물을 보내고 또 보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이라는 배움의 장을 시장의 논리에서 비껴놓으려 한다. 그것이 틈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소한 저항이다.” (본문 중에서)
어쩌면 에티오피아에서 보았던 것처럼 다 같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품어 함께 살아가는, 가난하지만 따뜻하게 느껴졌던 모습을 일본에서 개인적으로 실천하겠다는 결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의 바람처럼 “나의 첫걸음은 다른 누군가가 한발 내딛게 될 또 다른 떳떳치 못함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견고한 세상에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저자는 이렇게 이 책을 끝맺는다.
“지금은 이제까지 쌓아온 경계선을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 그어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시장이나 국가를 부정할 필요는 없으며, 과도한 비판은 오히려 시장이나 국가를 손쓸 수도 없는 괴물로 키우기도 한다.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그물을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을 항상 의식하면서, 각자가 경계를 뛰어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갈 필요가 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일본의 지식 사회를 이끌어갈 건강한 인류학자
마쓰무라 게이치로는 에티오피아의 농촌이나 중동 도시를 현장으로 삼아 부의 소유와 분배, 빈곤과 개발, 원조에 관해 연구하는 신진 인류학자다. 30대 초반이던 2008년에 출간한 첫 책 《소유와 분배의 인류학》은 지역학 관련 우수 도서에 수여하는 개발도상국연구장려상과 민족학?인류학 분야의 양서와 논문을 대상으로 하는 시부사와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화제에 올랐다. 현대 사회의 근간을 이루며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시되는 사적 소유라는 장치가 어떻게 생성, 유지되는지를 밝혔던 첫 책은 “사유재산권을 방패로 삼아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주류 경제학자를 향한 인류학자의 통렬한 비판”(경제학자 다카히시 노부아키)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세계의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의 80%가 넘는 부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 과연 정당한지 묻는 인류학자로서의 문제 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후속편에 해당한다. 다만 박사 학위 논문을 정리한 첫 저작과는 달리, 인류학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를 대상으로 학술 용어나 개념을 최대한 배제하고 솔직하고 편안한 문체로 묵직한 이야기를 건넨다. 또한 경제적 측면(소유와 분배, 격차와 빈곤)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에서 맺는 관계와 감정의 문제로까지 논의를 확장함으로써 사회와 국가, 시장이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수많은 우리’를 엮으려 한다.
마쓰무라 게이치로는 일본에서 인문학적 깊이와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갖춘, 기대할 만한 저술가로 주목받고 있다.
참고
*2018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3위 수상
1위 고쿠분 고이치로 《중동태의 세계-의지와 책임의 고고학(中動態の世界 意志と責任の考古學)》
2위 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觀光客の哲學)》
3위 마쓰무라 게이치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うしろめたの人類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