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 가까운 캐나다 북서부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 부족 ‘해어 인디언’의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섯 살 무렵이 되면 도끼 쓰는 법과 장작 쪼개는 법을 스스로 익힌다. 해어 인디언 사회는 ‘배움’에 관련해서 ‘스스로 익히는 것’을 강조하여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방식대로 배움에 다가간다. 그들은 주체적으로 주위 세계와 만나고, 스스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즐거움을 아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성장한다.
이 책은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문명인들의 눈으로 본다면 위험천만하며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관습 속에서도 자립심 강하고 자신만만하게 커가는 자유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만났던 해어 인디언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신감에 찬 모습,
생기 넘치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주체적으로 주위 세계와 만나고,
스스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즐거움을 아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_ 본문 중에서
해어 인디언 Hare Indians 캐나다 그레이트베어 호수 북서쪽에 사는 캐나다 원주민.
‘카우초틴(Kawchottine)’이라고도 하며, ‘위대한 토끼부족’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북극토끼를 주식으로 먹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21세기 초 인구조사에 따르면 해어 인디언의 후손은 약 1,000명 정도이다.
스스로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들
해어 인디언은 남에게 충고하거나 명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여긴다. 젖먹이 아기조차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한다. 더구나 아이의 운명이나 장래는 아이 스스로 헤쳐 나가는 것이지, 어떻게 기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섯 살 무렵이 되면 도끼 쓰는 법과 장작 쪼개는 법을 스스로 익힌다.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방식대로 배움에 다가간다. 그들은 주체적으로 주위 세계와 만나고, 스스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즐거움을 아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성장한다.
그러다 보니 해어 인디언 사회에서 부모는 한 아이, 한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저절로 아이를 잘 알게 되며 아이가 하는 행동이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우리 부모들 중에는 ‘내 아이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해어 인디언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
해어 인디언의 문화에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해어 인디언 아이들이 무언가를 익히는 방식은 ‘스스로 관찰하고, 해 보고, 수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는 ‘잘 보고’, ‘스스로 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어른들은 그 시간 동안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다.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살면서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하다’는 걸 가르친다. 아이의 신체를 보호하는 주도권도 부모가 갖는다. 아이가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익힘의 과정’이 생략된다.
어떤 아이든 그 아이만이 가진 재미나 고민, 재능이 있고, 이런 특성을 아이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 어떤 형태로 드러낼지는 부모도, 교사도 헤아릴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을 어른들이 자신들이 설정한 강력한 틀 속에 끼워 넣으려고 한다면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른들은 그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익히는 기쁨’을 체험한 아이들이라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올라가 교육과정에 짓눌리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하고 자신감을 잃지 않는 십 대 시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부모가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대하고, 내 아이가 남들과 조금 다르거나 어떤 부분에서 조금 늦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와 내 인생이 더욱 풍부해지고, 아이들은 자기 안의 세상을 스스로 키우며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자의 눈에 비친 다른 문화 속 부모와 아이 사이
요즘처럼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부모는 육아와 교육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확신은 없지만 ‘공부가 답’이라고 믿는 주변 분위기에 좇아가며 아이를 부모의 틀에 가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사고는 경직되고, 부모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우리 아이는 왜 꿈이 없을까?’, ‘왜 창의성이 부족할까?’, ‘왜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서툴까?’ 등의 의문을 갖는다.
이 책은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다른 문화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한 아이의 엄마로서 늘 직면하게 되는 의문을 풀어가며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세계 곳곳의 부족과 만나고 함께 생활하고 체험하면서 조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얻은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연구하면서 ‘아이들은 어떤 사회에서 태어나고, 어떤 식으로 자라든 폭넓은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투베드 지역에서 살아가는 ‘자카르타 아슬리’ 아이들은 취학 전부터 자기 용돈을 자기가 버는 방법을 터득한다. 부모는 아이가 돈을 어디에 쓰든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카르타 아슬리 사회에서는 가족 관계에서도 권리와 의무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사는 ‘미낭카바우족’은 아이들 간의 싸움에 어른이 절대 나서지 않다.대신 아이들에게 자기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제시해주어 독립적인 인생을 걷는 엄격함을 가르친다.
저자는 이렇게 여러 부족들의 독특한 풍습, 육아법, 부모 자식 간의 관계, 가족관계, 놀이의 역할, 부모의 역할 등을 소개하며 다양한 부족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립심을 길러나가는지 보여준다. 문명인들의 눈으로 본다면 위험천만하며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관습 속에서도 자립심 강하고 자신만만하게 커가는 자유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기쁨을 이 책에서 누릴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재 우리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이를 통해 ‘아이들이 지닌 폭넓은 가능성을 자유롭게 키워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