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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날의 돌림노래

이 나날의 돌림노래

  • 사사키아타루
  • |
  • 여문책
  • |
  • 2018-06-29 출간
  • |
  • 145 X 215 mm
  • |
  • ISBN 979118770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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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젊은이들을 위해 필요한, 힙합전사의 피가 흐르는 철학자의 언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에, 
앞으로 올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철학자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주인공이 살던 방 같은 곳에서 “목숨을 건 채”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사상을 잉태했으되 철학의 우위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철학자, 
철두철미하게 경계인의 자세로 힙합정신을 견지하는 사사키 아타루!
그의 솔직하고 유쾌하며 올곧은 이야기가 우릉우릉 울린다. 

“언어는 참 신비롭습니다. ‘언어’는 우선 ‘소리’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캘리그래피, 서도문화를 보면 알 수 있듯, ‘문자’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할 때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자를 쓰면서 ‘흐름’으로 떠올리려고 합니다. 문자나 언어는 소리로든 그림으로든 ‘흐름’입니다. 그것은 육체를 부르르 떨게 하는 리듬을 갖고 있고 스르르 흘러갑니다. 따라서 이야기하거나 읽거나 낭독하거나 노래하거나 랩을 하는 것, 또 사람이 만든 그런 것을 스스로 모방해보는 행위는 실로 그 자체만으로 춤입니다. ‘언어’란 ‘의미를 짊어진 유일한 음악’이며 ‘의미를 짊어진 유일한 회화’입니다. 또한 그것은 ‘흐르고’, ‘춤춥니다.’ 문자를 갖춘 언어의 예술이란 수만 년의 역사를 지닌 회화?음악?춤에 비해 훨씬 젊지만, ‘음악’이기도 하고 ‘회화’이기도 하고, 나아가 ‘춤’조차 출 수 있습니다. 즉 언어의 예술은 그 하나만으로 이미 ‘종합예술’입니다. 
서양의 철학에는 못된 습벽이 있습니다. 언어는 죽음이고, 언어의 외부에야말로 생생한 삶 자체 또는 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틀렸습니다. ‘언어’는 그 자체가 흐름이며 노래이기 때문에 언어와 언어예술은 죽음 쪽이 아니라 삶 쪽에 있습니다.”


◆ “한때 음악 좀 했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 본격적으로 힙합을 논하다

사사키 아타루의 신작 『이 나날의 돌림노래』(원제: “이 나날을 서로 노래한다-아날렉타[어록] 2”)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한국에도 일정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의 니체’ 사사키 아타루의 신작을 기다려온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출간된 이 책은 사실 심각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어 랩과 힙합에 관한 이야기가 과연 한국 독자들에게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하마터면 세상 빛을 못 볼 뻔했던 것. 그러나 오히려 바로 그 부분이 이 책의 독특함이자 장점이라는 최종 판단에 따라 이번에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실제로 젊은 시절에 랩, 힙합, 펑크, 재즈 등의 음악을 섭렵하며 배고픈 생활을 했던 사사키 아타루이기에 그가 논하는 힙합의 세계는 경청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그동안 한국의 힙합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고 그만큼 대중성도 확보했기 때문이다. 불량집단에서 탄생한 대안문화이자 소수자 문화, 오타쿠 문화인 동시에 외톨이 문화인 힙합의 충격은 시가 생활에서 유리되지 않는다는 것과 세계를 향해 폭발적으로 열려 있다는 점, 수입문화지만 리얼하고 산뜻하면 된다는 점, 다만 내셔널리즘이나 마약과 결합하기 쉬운 측면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 등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단순히 일본 힙합의 족보를 훑는 것이 아니라 세계, 특히 미국과의 연관성 아래 그 문화가 어떻게 생성되고 변형되고 이어지면서 퍼져나갔는지를 큰 줄기 속에서 짚어보며 언어의 생리, 운율의 역사, 음악의 본질까지도 논하기 때문이다. 이는 음악과 언어가 하나라는 사사키 아타루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기에 어쩌면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번역자도 고백하듯 랩이나 힙합을 전혀 몰라도 술술 읽어나가는 데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이미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종합예술’로서의 언어의 의미에 대해 한 발짝 더 들어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회귀하거나 계속하는 것, 선조를 존경하며 그 유산을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이 힙합의 가르침이라는 점, 그것이 바로 ‘신선함fresh’을 취하는 것이고, 경박하게 쓰고 내버리는 신기함에 뛰어들기만 하는 ‘새로움new’이 아니라 선조가 남긴 유산을 존경하는 것이 ‘신선함’이라고 강조한다. 그 ‘신선함’에는 연속이야말로 절단이고 절단이야말로 연속을 끌어온다는 의미가 깔려 있으며, 이것이 힙합의 핵심이자 시의 핵심이기도 하다는 진지한 성찰은 곰곰이 곱씹어볼 만한 구절이다.

“우선 동서양을 막론하고 운율은 곧 ‘리듬’입니다. 압운이란 리듬을 만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지요. 언어의 리듬이란 당연히 ‘악센트’에 따라 생겨납니다. ‘안녕!’과 ‘안~녕!’과 ‘안녕~!’은 어느 음에 악센트를 두느냐에 따라 리듬이 달라집니다. 아주 멍청한 예지만 알기 쉽죠? (웃음) 보통 ‘악센트’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음을 강하거나 약하게 발음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최근의 일이고, 라틴어나 그리스어에서 악센트는 ‘강약’이 아니라 ‘장단’이 중심이었습니다. ‘강약’과 ‘장단’을 조합시킨 것을 ‘각脚, foot’이라고 부르고, ‘각’을 조합한 것을 ‘운율meter’이라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장단단’, 근대어라면 ‘강약약’의 조합을 ‘장단단격長短短格’이라고 부릅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전부 운율로 쓰여 있습니다. 웬 뜬금없는 호메로스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사실 비틀스도 그렇고 롤링스톤스도 그렇고, 의외로 고전적 리듬 개념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비틀스의 작사도 완전히 장단단격으로 쓰인 것이 몇 개 있습니다. 이것은 이론이라기보다는 ‘언어의 생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일본어 랩이라는 불량음악」, 121~122쪽)

◆ 끝없이 ‘삶’을 잉태하는 언어의 힘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사티 아타루의 사상적 스승은 푸코, 라캉, 르장드르, 니체, 질 들뢰즈, 하이데거 등 서구 철학자들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어는 죽음이고, 언어의 외부에야말로 생생한 삶 자체 또는 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서양철학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언어에 내재한 음악성, 회화성, 무도성舞蹈性 등에 비추어 언어는 그 자체로 끝없이 ‘삶’을 생성하는 젊은 예술이기에 “문학이 끝났다”거나 “예술은 죽었다”라는 말은 가소롭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사키 아타루는 언제나 ‘문학’을 시와 소설 등은 물론이고 법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다룬다. 심지어 그는 부호를 쓰는 것 하나도 순수한 문학이고 예술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문자 이전에 존재한 문학의 유구한 역사를, 시를 잊고 있기에 편협해지고 삐딱해지고 속 좁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탄하는 사사키 아타루에 따르면, 언어는 음악을 우러러보기 위한 받침대도 아니고 음악을 붙잡기 위한 세심한 그물도 아니다. 또 노래하고 묘사하고 천명하고 춤추는 언어는 삶 자체다. 음악은 언어를 끌어안고 언어는 음악을 잉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발레리는 시를 “소리와 의미 사이의 오랜 망설임”이라고 불렀다. T. S. 엘리엇은 그답게 “시의 의미는 독자를 방심하게 만들고 그 틈을 타서 본질적인 것을 상대에게 몰래 잠입시키는 것”이라고 넉살좋게 말했다. (중략)
니체는 “산문이란 시와 벌이는 예의바른 싸움”이라고 말했다. 시가 되지 않도록, 노래가 되지 않도록 벌이는 싸움……. 그러나 그것이 본질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니체는 그것을 ‘싸움’이라고 불러야 했고, ‘예의’라는 청량한 말을 붙여야 했다. 산문조차 의미를 짊어질 수 있는 유일한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이 나날의 돌림노래」, 7~12쪽)

◆ 우리는 이미 절대적인 비非-구제라는 형태로 구원받았기에 자유롭다

사사키 아타루는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 최종적으로 인간이 무목적이라는 것을 간파할 때 자신의 행위가 낭비라는 성격이 보인다”라고 말한 니체를 언급하며 우리가 우주에서 낭비되고 있으며, 성대하게 소진되고 있고 불에 태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에게 목적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살아가는 일에 목적이 없다는 것, 그것은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밟아 뭉개진 꽃처럼, 바다에 떠 있는 물거품처럼…….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자유라는 것이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목적에 따르지 않아도 좋다는 것, 목적의 노예가 아니어도 좋다는 것이므로 구제 따위는 필요 없다고. 우리는 절대적인 비非-구제라는 형태로 이미 구원받았고, 이것은 늘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고.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 세계에 새로운 시작을 새겨 넣어야 하고 근거?이성?도덕?규율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모두들 이미 자유로운데도 별것 아닌 강박관념에 갇혀 있습니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되는데
주춤거리고 맙니다. 이 사회에는 자유를 못 보게 하는 담론이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으면 ‘다음의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가장 존엄한 ‘다음의 자유’라고 생각하는 자유는 이렇습니다. 이를테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크루이프 턴이 가능해지는 자유라든가, 멋진 싱커를 던질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춤이 능숙해진다든가 글쓰기 실력이 나아진다든가, 무엇이든 좋습니다. 단련을 쌓은 끝에 얻어지는 자유, 아니 그 과정에 이미 존재하는 자유…….
그런 자유를 포함해 자유를 다시 한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미 자유롭기 때문에 다음의 자유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여기’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다음의 자유’로 향하다」, 184쪽)

◆ 끈질기게 들려주는 근성이야말로 경계인의 자질

사사키 아타루는 스스로 철학의 우위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한 단계 높은 곳에 있으면서 남에게 지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도구 기술자’를 자처한 푸코처럼 자신 또한 이론이라는 실천을 하고 있으며, 이론도 ‘도구’로 이용하면 무척 도움이 된다고 덧붙인다. 그러면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세계관을 바꿀 수 있고, 실천에 동기를 부여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편 자신 또한 패턴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두려웠던 시기가 있었으며, 지금은 반복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틀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어떤 오해를 사든 꾸준히 세세하게 발언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철학과 철학자의 본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니 모든 예술의 본성이 그러할 것이다. 어느 날 사사키 아타루의 집에 막무가내로 쳐들어가 말할 수 없는 꾀죄죄함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서 피어난 치열한 저항과 희망에 감동을 받은 대담자 사카구치 교헤이(건축가이자 작가)는 이렇게 전한다.

“사사키 씨는 책상 위만 고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책이라는 물질을 공간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 뛰어듭니다. 나는 그 점에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방에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저항이며 희망을 보여줍니다. (중략) / 사사키 씨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전에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어요. 방 안에서 노트를 적어가며 『천 개의 고원』을 몇 번이나 읽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키 씨가 읽으면 어느 덧 『천 개의 고원』으로 보이지 않지요. 그가 드로잉 작품을 보여주더군요. 그는 책을 파고들어 읽고 또 읽어 광기 속으로 들어갈지언정 무언가를 붙잡아냅니다. / 그곳에는 희망이 있어요. 지금도 그 방을 떠올리면 눈물이 날 듯합니다. 재능은 없어도 됩니다. 재능이 없어도 파고들어 읽는다면 자연스레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듭니다. 따라서 꿈이 없다는 둥,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둥 투덜대는 것은 바보 같다고 생각합니다.”(「‘다음의 자유’로 향하다」, 178쪽)

◆ 오직 지금, 내디뎌야 할 ‘다음 한 걸음’을 위하여

사사키 아타루는 창조적인 작업에 임한다는 것은 실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다음 한 줄’, ‘다음 한 음’, ‘다음 한 획’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기에 연령이나 세대와 전혀 상관없이 우리는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계기를 서로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일화를 들려준다. 단순한 ‘패배’ 극복기나 인구에 회자될 만한 ‘성공담’이 아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적극적으로 ‘패배하는 기쁨’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창작에 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용기가 절로 나는 이야기다.

“단테가 『신곡』을 쓰기 시작한 것은 스물넷입니다. 해적에게 붙잡혀 강제노동도 하고 새경을 받지 못해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던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이 쉰일곱,
출판한 것이 쉰여덟입니다. 어떤 영국인 남자가 서른두 살 때 사업에 실패해 파산합니다. 그로부터 간신히 회생하지만 보잘것없는 무명인으로 지내던 중 쉰아홉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쓴 것은 쉰셋, 스탕달이 첫 작품 『적과 흑』을 쓴 것은 쉰둘입니다. 그리고 내가 십대부터 경애해 마지않은 헨리 밀러는 아무리 해도 글을 쓸 수 없어 고민하다가 결국 파리까지 도피합니다. 마흔이 되어 겨우 두툼한 소설을 썼는데 지하철 안에서 원고를 잃어버렸지요. 더구나 그때는 거의 기둥서방처럼 지내던 시절입니다. (웃음) 그러던 그가 마흔셋에 완성한 작품이 20세기 문학의 금자탑 『북회귀선』입니다. 그러나 성적 묘사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출판 직후 발매금지를 당하지요. 그 후 잇달아 걸작을 써내지만 하나같이 발매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세를 받은 것이 예순셋입니다. 그동안 그는 구걸과 다름없는 방편으로 살면서 계속 글을 씁니다. 이 정도라면 ‘주변 친구라도 좀 말려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지만. (웃음) /
20세기 최고 작가의 한 사람인 버지니아 울프가 처음으로 소설 『출항』을 쓴 것은 서른세 살 때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마흔셋에 쓴 『댈러웨이 부인』부터지요. 마드모아젤 샤넬은 나치 장교와 연애관계를 맺은 탓에 전후 사업을 포기하고 의복 디자인 세계를 떠나 스위스에 은둔했습니다. 하지만 패션계의 참상을 본 뒤 의연히 복귀를 결심하고 제일선에 나섰습니다. 이때가 일흔한 살이었습니다. 디자이너 샤넬이 대표작 ‘샤넬 양복’을 완성한 것은 복귀한 일흔한 살부터 죽기 직전인 여든여섯 살까지였습니다. 그녀는 일요일을 아주 싫어했지요. 일을 못했으니까요. 어느 토요일에 여자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입 주위를 닦더니 벌떡 일어나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난 일할 거야” 하고 말했는데, 그다음 날 아침 심부전으로 침대에서 사망한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말이 최후의 한마디였던 셈입니다. / 이런 일을 전하는 것이 어쩌면 철학이나 사상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패배하는 기쁨, 패배자들의 노래」, 163~164쪽)

[책속으로 추가]
원래 랩은 ‘제국’ 미국의 소수자 문화입니다. 더구나 실로 미국 국내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미적으로만, 즉 예능?문화?스포츠를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문화입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차별 구조는 그대로 있습니다. 미국의 소수자 중에는 소수자라고 해도 경제적으로는 윤택하지만 변함없이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어 랩은 이런 사람들의 문화를 동경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현기증이 날 만큼 뒤틀리고 또 뒤틀려 있지 않나요? 그런 입장을 선택한 주제에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요구하는 단일민족과 단일국가의 순수성 신화를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지극히 괴이한 일이겠지요. 요즘 누가 그러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괴이함’은 몇 번이라도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147~148쪽)

글을 읽는다는 것은 써놓은 글의 흐름에 따라 리듬과 틈을 잉태한 문체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춤꾼이 추는 동작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의 안무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입니다. 함께 춤추는 것입니다……. (198쪽)

책은 다시 읽기 위해 읽어야 하고, 그리고 다시 읽기 위해서만 새롭게 읽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되풀이해서 읽을 책인가? 문득 독서 중에 떠오른 이 물음을 견디지 못하는 책은 당신의 양심에 비추어 읽기를 멈추어야 한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지나칠까? 그럼에도 책은 하나의 수수께끼이기 때문에, 책은 하나의 고난이자 시련이기 때문에, 구제가 필요하지 않은 환희의 근원이기 때문에, 책은 열광의 씨앗이자 과실이기 때문에……. (213쪽)

책은 읽혀야 한다. 정보나 교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오랜 굶주림의 나날 끝에 주어진 향기로운 빵을 씹으며 침을 흘리는 듯……. 책 읽기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오후 강행군을 마치고 그늘에서 벌컥벌컥 마시는 차가운 샘물과 같은 것이다. 책이 그렇게 읽히는 것이라면 반복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중략)
“내가 이제까지 들은 최상의 이야기는 요점이 없는 것이었고, 가장 좋은 책은 줄거리를 떠올릴 수 없는 것이었고, 최고의 인간은 같이 있어도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헨리 밀러) 그렇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몇 번이나 듣고 싶고, 그 책은 몇 번이나 읽고 싶고, 그 사람은 몇 번이나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반복이야말로 사랑을 증명하고,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언가가 될지도 모르는 수수께끼 자체다. 반복에 여봐란 듯한 편애나 신기함은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맹목적인 독서의 한없는 행보가 이어지는 어느 먼 훗날, 당신은 자신이 무언가를 잉태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것이 책의 힘이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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