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빨라도 재미있고, 안 빨라도 재미있어요
이겨도 재미있고, 져도 재미있어요
태엽은 띠 모양으로 된 철이 감겼다 풀리는 힘으로 움직이게 하는 장치예요. 많이 감으면 감을수록 힘은 더 세져요. 태엽이 달린 장난감 자동차로 예를 들면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어요. 또 언제든 돌리기면 하면 쌩쌩 앞으로 나아가지요. 만약 사람에게도 태엽이 달려 있다면 어떨까요? 《태엽 아이》 속 아이들처럼 태엽을 감았다 놓으면 무슨 일이든 뚝딱 해결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태엽 마을은 참 신기한 마을이에요. 여기 사는 아이들은 모두 태엽을 가지고 있어요. 등 뒤에 달려 있는 태엽을 많이 감을수록 뭐든지 ‘빨리빨리’ 할 수 있지요. 주인공 아이는 유난히 욕심이 많았어요. 매일 아침 태엽을 감고 또 감았어요. 태엽이 끊어질지 모른다고 친구들이 걱정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책도 무지 빨리 읽고, 글씨도 엄청 빨리 쓰고, 수학 문제도 빨리빨리 풀 수 있었어요.
공놀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직 태엽을 달지 않은 꼬마가 쫓아왔어요. 아이는 귀찮아하며 꼬마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소리쳤지요. 꼬마는 어디를 그렇게 빨리 가는지, 왜 빨리 가야 하는지 자꾸 물었어요.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어요. “빨리 가야 이길 수 있고, 이겨야 재미있어!”라고요. 그런데 꼬마가 뜻밖의 말을 하는 거예요.
“나는 빨라도 재미있고, 안 빨라도 재미있어. 이겨도 재미있고, 져도 재미있어.”
갑자기 등 뒤에서 “빨리, 더 빨리!” 소리치는 것 같았어요. 째깍째깍 태엽이 온몸을 조여 왔지요. 아이는 태엽을 감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슬그머니 태엽을 떼어 버렸어요. 더 이상 뭐든 빨리빨리 할 수 없게 된 아이. 하지만 천천히, 느리게 걷는 것도 나쁘진 않았어요. 오히려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지요. 커다란 나무 위에서 목청을 높이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개울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가 보였지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만지는 것도 꽤 괜찮았어요. 그렇게 아이는 새로운 세상에서 신나게 뛰어놀아요.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말이에요.
천천히, 느리게 걸으면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들, 느껴지는 것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이지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어른들의 삶을 흉내 냅니다. 그래서인지 《태엽 아이》 속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하고, 수많은 상대와 겨루어 앞서고 이기는 것만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요즘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때로는 지나치게 승부에 욕심을 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요. 태엽을 끝까지 감은 아이처럼 어딘가 위태롭게 보이기도 해요.
태엽을 많이 감으면 뭐든 빨리할 수는 있었지만 ‘다르게’, 혹은 ‘즐겁게’ 할 수는 없었어요. 미술 시간이면 그림을 빨리 그릴 수는 있었지만 모두 똑같은 그림일 뿐이었어요. 도서관에서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지만, 마음에 남는 책은 없었지요. 아이는 태엽을 떼어 버리고 나서야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기도 하고, 꼭 처음 읽는 것처럼 찬찬히 책을 읽었어요. 까맣게 잊고 있던 ‘느낌’이 되살아난 거예요. 비로소 아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오릅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우리 삶에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겪으며 자랐는가에 따라 성격이나 가치관이 달라져요. 별것 아닌 만남이 한 아이의 앞날을 결정짓기도 하지요. 그만큼 자유롭게 뛰어놀며 경험을 쌓아 나가는 과정이 아이에게는 필요합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태엽이 달려 있는지도 몰라요. 혹시 내 아이의 등 뒤에 태엽을 달아 주고 있지는 않는지요? 《태엽 아이》에서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시시각각 몸과 마음을 조이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아이가 스스로 태엽을 툭 떼어 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서 세상을 거침없이 누비며 ‘아이답게’ 자라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