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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진실을 말하다

김일성 진실을 말하다

  • 김용삼
  • |
  • 미래사
  • |
  • 2018-06-25 출간
  • |
  • 288페이지
  • |
  • 148 X 210 mm
  • |
  • ISBN 978897087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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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건국 70년,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에 휩싸인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야심작!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대는 이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뻥’ 혹은 ‘구라’라는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돼 있다. ‘정직’과 ‘신뢰’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용기’가 꼬랑지를 내린 가운데 거짓의 산더미만 높아가고 있다. 그 거짓의 중심에 ‘김일성 신화’를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괴물이 된 사람들이 있다. 또한 그 거짓의 감옥에 갇혀 답답해하는 이들이 ‘현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엉망진창이 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진실게임의 신호탄으로 이 책은 출발했다!


이 책은 당신에게 “환상을 깨라”고 말하지 않는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행동하길 바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진실만을 좇아 국민의 알 권리를 바르게 전하는
기자 출신 저자 김용삼의 30년 경력을 담은 대한민국을 위한 역사서 출간!

그들은 말한다. 이기기 위해선 속여야 한다고. 대중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거짓말을 해야 하며, 거짓말을 해야 하므로 자신들의 주장을 이중적 구조로 숨겨놓는다. 그들의 본질은 계획적이고 의도된 속임수의 체계이자 체계적인 속임수다. 뿐만 아니다. 그들은 말끝마다 ‘평화’를 내세우고,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의 옹호세력인 것처럼 선정과 선동을 일삼는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혁명은 과학이며, 파괴의 기술”이라 일컫는 공산주의의 공산주의자들이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는 폭력은 필수이고, 폭력이 행사되는 곳에서는 반드시 피가 흐른다. 공산주의는 태생부터 필연적으로 ‘폭력’과 ‘피’의 제단 위에 서 있는 파괴적 이데올로기다. 한 숨, 두 숨, 세 숨 정도를 들이쉬고 내리쉬며 마음을 가다듬은 후 우리의 근현대사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들의 민낯은 명징하게 보인다. ‘대구 10월 폭동’, ‘제주 4·3 사건’, ‘여·순 반란사건’, ‘6·25 남침전쟁’에서 나타나듯이 그들은 대한민국의 핵심 본질을 파괴하려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반공’이란 말을 들이대면 그들은 집단 히스테리 증세를 일으킨다. ‘극우 파시스트’니 ‘친일파 민족반역자’니 ‘시대착오적 반공주의자’ 등등의 용어로 인격살인을 가해온다. 무엇 때문일까?
반공을 내세우면 가짜 김일성의 본색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일성을 수식하는 용어를 분해해 보면 크게 세 덩어리로 분절된다. ‘만주’, ‘항일’, ‘무장 독립운동’. 저자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 그 세 덩어리의 실체를 추적해나갔다. 쓸데없는 선입관과 가치관을 버리고 그 의미를 추적하면서 마침내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해낸다. 그것은 만주라는 드넓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의 남과 북의 운명을 가른 지도자 그룹이 형성됐고,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혹은 자유민주주의자)들 간에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분단의 유전인자들이 이미 1920~3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이데올로기의 진영 대립에 외세까지 개입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복잡한 근현대사는 남과 북의 관점, 즉 한 나라의 역사적 관점이 아니라 세계사적·동북아 관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진정한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그런데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이란 존재는 추적의 출발에서부터 벽을 맞닥뜨린다. 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학자들이 밝혀낸 ‘일제 시기 만주·중국 일대에서 활동했던’ 김일성은 총 11명이다. 북한은 그 모든 김일성들의 행적을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한 것처럼 꾸며댔다. 백 번 양보해 등장하는 모든 김일성의 이력을 그러모아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했던 항일운동이라고 치자. 김일성은 어떤 항일투쟁을 했나? 김일성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동북항일연군의 행동강령과 활동지침은 다음과 같다.
①반만항일(反滿抗日) 동북실지(東北失地)의 회복, 중화(中華) 조국의 옹호
②일적(日賊) 주구의 재산 몰수
③민중과 연합하여 항일구중국(抗日救中國)
그렇다면 중국공산당의 신분으로 ‘반공’을 뺀 항일운동을 한 것이 조선을 위한 것인가, 중국을 위한 것인가? 결국 김일성이 행했다는 항일운동은 중국을 위한 일이었음이 자명하다. 그러니 ‘반공’이란 말이 나오면 자신들의 우상, 거짓의 산으로 에둘러있는 가짜 김일성이 창시했다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정신질환자들이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김일성의 존재를 무방비 상태로 방임했다. 허접한 선전?선동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조차 하지 않고 무방비상태로 방치함으로써 우리는 저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갔고, 저들의 선동에 발목을 잡혀 도덕적 권위를 훼손당해 왔다.
이번에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맞이하여 김일성 신화에 대한 진실을 담은《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 진실을 말하다(미래_H 刊)》가 출간되었다. 그동안 김일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시각에서 쓰인 책은 몇 권 출간된 바 있다. 하지만 수많은 자료와 의미 있는 에피소드를 모아 북한이 ‘경애하는 수령님’으로 떠받드는 김일성의 행적을 추적하여 엮은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속으로 추가]
#5. 양세봉 장군에게 투항, 그리고 잠적
1932년 여름, 느닷없이 김일성(金一星)이란 이름을 쓰는 김성주가 또래 패거리와 함께 조선혁명군 본부에 나타났다. 여기저기 떠돌다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자 무기를 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투항해 왔다. 조선혁명군은 김성주 일당을 체포한 후 이들의 처리를 위한 회의를 열었다. 간부들은 “이놈들을 당장 총살에 처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했으나 총사령 양세봉은 항자불살(降者不殺·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는다)이라는 병가(兵家)의 도리를 들어 김성주 일당을 살려주기로 결정했다. 다만 일정 기간 동안 무기를 지급하거나 특정 임무는 부여하지 않고 잡역을 시키면서 행동을 관찰하도록 했다. 조선혁명군으로부터도 불신임을 당하게 되자 견디다 못한 김성주는 어느 날 슬그머니 종적을 감추었다. 그의 나이 20세 때의 일이다.

#6. 20세 전후의 날조된 행적
고동뢰 소대를 몰살한 김성주가 체포를 피해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면서 10여 명 미만의 불량 패거리들을 모아 작당한 것이 훗날 거창하게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뻥튀기 되었고, 급기야 조선인민군의 모체로까지 승격되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오늘날 북한이 자랑하는 조선인민군은 만주에서 민족주의 계열의 소대원 10여 명을 몰살시킨 살인범의 후예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 만천하에 드러낸 꼴이다. 이 시기 김성주의 행적에 대한 북한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을 은폐, 기만, 날조, 왜곡, 새치기하기 위해 시기마다 변화무쌍하게 이력이 달라진다.

#7. 이홍광의 투쟁기록을 가로채다
중국공산당의 항일투쟁은 1933년 9·18 만주사변 2주년 기념일을 기해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이 출범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부대의 원조는 1931년 말 길림과 통화(通化) 중간에 위치한 남만주 반석현에서 한인 이홍광을 대장으로 한 7명의 대원이 적위대(일명 개잡이대)를 조직한 것이 시초다. 즉, 만주 최초의 중국공산당 유격대는 한인이 조직했다. 이 개잡이대가 발전하여 중국공산당 남만 유격대가 되고, 또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이 되었으므로 이홍광은 동북항일연군 제1군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 노동당의 김일성 전기물과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사 등을 보면 이홍광의 투쟁기록을 그대로 도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8. 중국공산당 내의 한인 빨치산들의 운명
김성주가 만주에서 어떤 항일 무장투쟁을 했는지를 밝혀주는 명쾌한 자료나 증언, 근거는 하나도 없다. 다만 그들이 “빛나는 항일투쟁을 했다”고 우겨대는 주장만 존재할 뿐이다. 설령 일부 무장투쟁을 했다고 치자. 김성주를 비롯한 만주의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수행했다는 항일 무장투쟁의 본질은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고 안 된 이야기지만 “중화조국의 옹호”와 “실지동북의 회복”, 그리고 “항일운동을 통해 중국을 구하는” 행위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것이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역사의 ‘불편한 진실’이다.

#9. 끔찍이 파괴적인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소련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주의 사상을 세계의 약소민족 국가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의 지식인들에게까지 파급시켜 나갔다. 노동과 임금의 착취로 인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던 유럽에서 자본가 계급을 타도하고 만민평등을 부르짖는 공산주의는 “인류가 나아갈 유토피아”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1924년 레닌이 사망하고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여 볼셰비키 수뇌부가 교체되면서 공산당의 체질이 포악한 1인 독재체제로 변한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끔찍하고도 파괴적인 변화를 서방 세계의 지식인이나 일제 치하의 한인들은 전혀 모른 채 순수하고 이상적인,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다 같이 잘 산다”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만을 꿈꾸었다.

#10. 광란의 민생단 학살극과 그 광풍에서 살아남은 김성주
민생단이란 1932년 2월 15일 조선총독부와 일본 간도영사관의 조종 하에 서울의 <매일신보> 사장으로 있던 박석윤, 간도와 용정 조선 민회 회장 이경재, 연길현 조선 민회 회장 최윤주 등을 중심으로 간도에서 발족한 반공단체였다. 단장은 대한제국 말기에 의병장 이강년을 체포한 경력이 있는 일본군 퇴역 포병대좌 출신 박두영이었다. 민생단은 5개월 정도 활동하다 해체되었고, 1934년 9월에는 협화회(協和會)라는 단체가 발족하여 만주 일대에서 반공활동과 선무공작을 전개했다. 협화회는 공산 유격구 내로 밀정을 침투시켜 “누구누구가 민생단원이다”라고 소문을 내거나 이간질하는 편지를 보내는 공작을 전개했다. 협화회의 공작에 넘어간 중국공산당 동만특위는 “한국 동지 중에 글을 쓸 줄 알고, 중국 글을 알며, 중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 대부분은 파쟁분자로서 믿을 수 없다”면서 ‘반일 유격대의 금싸라기’라고 부르던 한인 공산주의 간부들을 민생단원으로 몰아 처형하거나 고문하는 등 탄압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김성주가 중국공산당 소속 빨치산 부대의 지휘관이었다고 인정하면 광란의 민생단 대숙청에도 불구하고 무사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1. ‘중화(中華)조국 옹호’를 위한 투쟁
중국공산당 만주성위는 하부 당에 동북항일연군 조직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지령을 내렸다.
①반만항일(反滿抗日) 동북실지(東北失地)의 회복, 중화(中華) 조국의 옹호
②일적(日賊) 주구의 재산 몰수
③민중과 연합하여 항일구중국(抗日救中國)’
이 자료는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 지령대로라면 김일성은 그가 김성주이든, 아니면 다른 소련에서 훈련을 받고 파견된 인물이든 상관없이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중국 국적자로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명령을 받아 중국의 독립과 해방, 그리고 잃어버린 만주(동북) 지역을 되찾고, 중화 조국을 옹호하기 위해 투쟁한 것이다.

#12. 보천보 습격사건의 진실
1935년 2월 13일 자정 무렵 이홍광 부대(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 200여 명은 압록강을 건너와 평북 후창군 동흥읍을 습격했다. 이것이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항일 빨치산 부대의 최초의 한반도 공격 사건이었다. 말하자면 보천보 사건은 압록강을 건너온 빨치산 부대가 308가구, 경찰 주재원 5명밖에 없는 산골마을을 습격하여 마을 사무소와 파출소, 학교, 민가 등을 불태우고 식량과 옷가지 등을 약탈해 간 보잘것없는 사건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보천보 습격을 지휘한 인물이 후에 북한 수령이 된 김성주인지 아닌지도 확실치가 않다. 백보 양보해서 북한 수령이 된 김성주가 보천보 습격을 지휘했다고 치자. 당시 김성주는 중국 국적을 보유한 중국공산당원이었다. 그의 만주 일대에서의 항일 무장투쟁은 중국 땅에서 중국인 공산당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중화조국 옹호와 동북실지 회복, 중국 인민의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다.

#13. 1번 김일성 사살설과 제2의 김일성 등장
보천보 습격사건을 지휘했던 인물은 제6사 사장 김일성으로 평양에 나타난 소련군 대위 김일성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실제로 보천보를 습격했던 1번 김일성은 만주군 관계자들이 펴낸『만주국군』이란 책에는 김일성이 1937년 11월 13일 무송현 양목정자(무송과 안도의 중간 지점)라는 1,000m 고지의 산중에서 휴식하던 중 만주군 보병 제7단 제1영의 포위 공격을 받고 부하 8명과 함께 사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무렵 만주에 나타난 ‘제2의 김일성’은 누구인가? 두 번째 나타난 김일성에 대한 증언자는 노조에 사령부에서 특수공작을 지휘한 후쿠베 구니오(北部邦雄) 중좌였다. ‘베테랑 비적 사냥꾼’으로 불리는 후쿠베는 김일성이 1940년 현재 나이는 34~35세, 키가 작고 코가 크며 빈약한 얼굴, 근시라서 안경을 끼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일성은 간도의 용정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사건에 뛰어들어 체포되었는데 유치장에서 탈주해 소련으로 도망쳤던 사람이다. 거기서 적군(赤軍)사관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만주에 파견되어 동북항일연군의 제2방면군 군장이 되었다.”

#14. 만주에서 자행된 동족상잔의 비극
만주에서 한인들은 일본인과 중국인(만주인)의 중간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가난했고, 일본제국의 하수인이 되기에는 너무도 저항적이었다. 한쪽에서는 만주국 당국에 중국공산당원을 밀고·체포하러 다니고, 다른 쪽에서는 밀고자를 색출하여 보복을 일삼으면서 만주 일대의 한인 공동체는 갈가리 찢겨졌다. 이미 해방 전 만주 일대에서 외세의 조종에 의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명백하게 연출됨으로써 분단의 유전인자들이 적나라하게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다.

#15. 1940년 겨울, 소련으로 탈출하다
동북항일연군의 대원들 중 가혹한 토벌에도 사살되거나 투항하지 않고 소련으로 탈출한 대원은 모두 300여 명이다. 지휘관 중에는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과 참모장 최석천(최용건), 제3로군 총사령 장수천이 넘어갔고, 마지막으로 제1로군 대원들은 1940년 11월부터 1941년 2월 사이에 뿔뿔이 흩어져 소련으로의 탈출에 성공했다. 이명영은 이때 2번 김일성 부대에 속했던 김성주가 지휘관 김일성을 따라 소련령으로 함께 탈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6. 88특별정찰여단 대위 진지첸
제1로군에서 소련으로 넘어온 대원 중 계급이 가장 높았던 김일성은 오케얀스카야 야영학교 책임자 겸 군사정치과 교관,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은 하바로프스크 야영학교의 책임자를 맡았다. 제2의 김일성은 1944년 가을까지 오케얀스카야에 있었으나 해방이 되어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온 한국인들 속에서 그의 존재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명영은 그가 1944년 가을 무렵 소련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명영의 주장대로 ‘제2의 김일성’이 1944년 오케얀스카야 야영학교 책임자로 있다가 사망했다면, 이제 김형직과 강반석의 아들 김성주만이 살아남아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갖고 88특별정찰여단 훈련을 받고 소련에 의해 간택되는 길을 걷게 된다.
#17. 스탈린의 비밀 지령을 받다
1945년 9월 19일 오전 11시, 트롤어선을 개조하여 만든 소련 군함 푸가초프호가 원산항에 입항했다. 이 배에 소련군 88특별정찰여단 소속의 대위 김성주를 비롯하여 88여단 소속의 한인과 소련 국적의 고려인 2?3세 등 80여 명이 승선해 있었다.
다음날인 9월 20일, 스탈린은 극동전선총사령관 알렉산드르 바실레프스키와 연해주 군관구 군사회의 및 제25군 군사평의회 앞으로 다음과 같은 극비 지령을 발송했다. “북조선의 모든 반일적 민주정당과 단체의 광범한 블록을 기초로 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원조할 것.” 1945년 9월 20일자 스탈린의 지령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에 소련을 추종하는 독자적인 공산 단독정권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18. 공산 단독정권 출범
1946년 2월 8~9일 이틀 간, ‘사실상의 정권기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출범시키기 위한 회의가 평양에서 열렸다. 2월 9일 위원장 김일성, 부위원장 김두봉, 서기장 강양욱, 보안국장 최용건 등 총 17명으로 구성된 임시 북조선노동당 인민위원회 명단이 발표됐다. 그리고 김일성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우리의 정부다”라고 선언했다.

#19. 정적(政敵) 숙청, 1인 독재체제 구축
어린 시절 부친을 잃고 폭력집단의 가혹한 상황에 노출됐던 이상성격의 보유자 김일성의 가치관은 “사람을 보면 도적으로 알라”는 것이다. 즉,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북한에서 숙청당한 절대다수 사람들은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죽었다. 그 어떤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김일성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김일성의 숙청 철학은 “쥐 잡듯이 말끔히 잡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새끼를 많이 치기 전에 몽땅 잡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일성의 서옥설(鼠獄說)이다.

#20. 개인숭배, 주체사상
김일성 정권은 항일 빨치산 정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초기 20년간 당과 군부의 최고 지도층에 포진해 있던 빨치산파들도 숙청한 후 자기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목하여 권력을 세습했다.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경쟁자가 사라지자 김일성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개인숭배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호칭하는 용어로 “영명한 조선인민의 지도자”로 정했다가 “경애하는 조선인민의 수령”으로 바꾸었으며, 후에는 “위대한 수령”으로 정했다.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 이후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김일성의 출생지인 만경대는 예수가 탄생한 예루살렘이나 마호메트가 활동했던 메카 같은 성지로 탈바꿈해 참배객들을 맞고 있다.

#21. 스탈린, 남침전쟁 승인하다
1950년 4월 10일 스탈린과 회담한 김일성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남침전쟁을 요청하자 스탈린은 “국제환경이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면서 남침을 허가했다. 다만 스탈린은 의미심장한 조건을 달았다. 즉, “소련은 김일성의 남침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모택동이 ‘아시아 문제’에 정통하니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서 모택동을 끌어들인 것이다. 스탈린은 단순히 김일성의 국토완정 야욕만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남침전쟁을 허락할 정도로 우둔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김일성이란 자신의 하수인을 미끼삼아 미국과 중공의 격렬한 충돌을 일으켜 미군을 한반도에 장기간 묶어두고자 했다. 유럽에서 가중되는 미국의 군사적 압력을 한반도로 분산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 동유럽에서 사회주의를 강화하여 소련의 국익을 강화한다는 대모략을 구상한 것이다.

#22. 김일성은 장기판의 졸(卒)
한국전에 불법 개입한 중공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에서 완전 고립되어 20여 년 이상을 ‘죽(竹)의 장막’에 갇혀 자력갱생해야 했다. 수천만 명이 희생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도 한국전 개입이 몰고 온 후유증이다. 전쟁범죄의 원흉인 김일성은 전쟁의 계획과 실행은 물론 정전협상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남침은 소련과 중공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전적으로 양국의 원조에 의지해야 했으며, 전쟁의 실행은 팽덕회의 지시를 받는 등 장기판의 졸(卒)에 불과했다.

#23. 만주의 의미
만주라는 공간은 한민족의 현대사에서 의미심장한 두 개의 지도자 그룹을 배양해냈다. 만주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일본의 편에 섰던 그룹은 후에 대한민국 국군의 주역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핵심 요직을 구성하게 된다. 반면에 중국공산당과 소련군 편에 서서 일본과 투쟁한 그룹들은 북한으로 들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설의 핵심이 되었다. 이러한 운명적 갈림은 개개인이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격랑은 한 인간의 의지나 낭만 따위는 거침없이 날려버리는 질풍노도로 다가온다. 이런 질풍노도와도 같은 깊은 상처가 오늘날까지 남아 북한은 ‘항일 무장투쟁’이라는 도덕적 이니셔티브를 장악하고 대한민국 건국 및 호국, 산업화 추진세력을 친일파 혹은 민족반역자라고 매도하며 현대사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과연 식민지 36년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역사라는 괴물을 쾌도난마식으로 항일-친일 논리로 선악의 결판을 낼 수 있을까?


목차


● 시작하는 글 |거짓의 숲에서 진실을 좇다

1부 | 김성주로 태어나다
- 여러 명의 김일성들
- ‘김일성 전설’의 실존 인물 김광서
- 한인들의 간도(間島) 이주사
- 만주에 불어 닥친 붉은 물결
- 압록강 건너 만주로 이주하는 김성주 일가
- 김일성 전담기자 한재덕이 날조한 김일성 이력
- 기록마다 다른 학력 미스터리
- 중국인 경찰대장에게 재가(再嫁)하는 어머니 강반석
- 공산주의를 만나다
- 만주로 이주하는 한인들
- 일성(一星)이란 당호(堂號)를 얻다
- 붉게 물들다
- 사실관계를 날조하는 수법
- 중국공산당에 입당하다
- 무송에서 무장 강도생활
- 양세봉 장군에게 투항
- 조선인민혁명군의 창설?
- 20세 전후의 날조된 행적

2부 | 공산주의에 물들다
- 만주 침략에 나선 일본
- 국제적 고립 자초하며 차지한 만주국
- 만주군관학교 출신 한인들
- 민족주의 계열의 항일 무장투쟁
- 지청천?양세봉 등 소멸하는 독립군 부대들
- 만주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세력들의 게릴라전
- 중국군의 지휘를 받은 광복군
- 한인들이 중심이 된 빨치산 부대
- 이홍광의 투쟁기록을 가로채다
- 시베리아에 파병된 일본군
- 한인 무장 독립군과 일본군의 격돌
- 일본군 피해 러시아령으로 이동하는 독립군 부대
- 자유시 참변
- ‘소련 방위론’ 등장
- 소련의 두 번째 배신,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 중국공산당 내의 한인 빨치산들의 운명
- 소련·중국공산당에 놀아난 한인 공산주의자들
- 공산주의의 악마성에 눈 감은 지식인들
- 광란의 민생단 학살극
- 민생단 광풍에서 살아남은 김성주

3부 | 김성주, 진지첸, 김일센, 그리고 또 김일성
- ‘김일성’이란 인물의 등장
- 1번 김일성의 정체
- ‘중화(中華)조국 옹호’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
- 보천보 습격사건의 진실
- 젖먹이 어린이와 일본인, 유탄 맞아 사망한 것이 전과의 전부
- 보천보를 미화,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
- 보천보 습격사건을 지휘한 김일성은 누구?
- 1번 김일성 사살설(說)
- 제2의 김일성 등장
- 만주국, 빨치산 토벌에 나서다
- 노조에 쇼토쿠의 토벌작전
-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의 실상
- 김일성 항일투쟁에 대한 황장엽의 증언
- 중국공산당 항일투쟁의 본질
- 항일운동인지, 약탈 살상인지
- 만주에서 자행된 동족상잔의 비극
- “마적질 해먹던 것들이 해방군 노릇”

4부 | 하바로프스크 88특별정찰여단
- 1940년 겨울 소련으로 탈출한 김일성
- 제2의 김일성, 오케얀스카야에서 폐결핵 사망설
- 스티코프, 로마넨코와 인연
- 사기, 날조, 남의 공적 가로채기
- ‘미래의 북한 지도자’ 만들기
- 귀국 준비
- 대일전(對日戰)에 소련군 끌어들이는 미국

5부 | 스탈린의 북한 만들기
- 소련군 평양에 나타나다
- 스탈린의 비밀 지령, “분단된 공산정권 수립하라”
- 스탈린이 낙점하고 스티코프가 기획한 ‘김일성 만들기’
- 38선 이북의 조선공산당 조직 김성주에게 넘겨
- 마침내 ‘김일성 장군’으로 데뷔하는 김성주
- 붉은 지폐 이용, 북한을 조직적으로 수탈
- 신탁통치 찬성 공작
- 공산 단독정권 출범
- 북한의 토지개혁은 ‘전 인민의 소작인화’
- 스탈린 지령으로 일어난 대구 폭동
- 소련, 북한에 국회(인민회의) 만들어주다
- 대의원(국회의원) 명단 소련이 정해줘
- 나라 이름, 헌법까지 스탈린과 소련공산당이 만들다
- 북한인민군 창설
- 모든 것은 스탈린의 뜻대로
- 북한의 출생
- 정적(政敵) 숙청, 1인 독재체제 구축
- 개인숭배, 주체사상

6부 | 김일성이 불을 지른 국제전쟁, 6?25
- 미국의 관망정책
- 미군은 남한 철수, 소련은 북한에 최신무기 제공
- 동상이몽에 빠진 스탈린과 모택동
- 스탈린, 남침전쟁 승인하다
- 남침 작전계획서 만들어준 소련군
- 이승만, 남침 당일 전쟁목표 네 가지 원칙 수립
- 남침 사흘, 서울 함락
- 스탈린의 대모략
- 성공확률 5000 대 1의 대도박, 인천상륙작전
- 미·소(美蘇) 전쟁에서 미?중(美中) 전쟁으로
- 미국, 휴전으로 전쟁을 끝내기로
- 미국과 중공이 계속 싸우길 바란 스탈린
- 김일성은 장기판의 졸(卒)
- 부산 정치파동에 담긴 심오한 뜻
- 휴전 반대 위한 이승만의 승부수
- 이승만 제거 작전계획 수립
- 글을 마치며 | 만주,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성주(김일성) 약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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