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국가폭력 피해자들,
그들을 음식으로 기억하다!
한국은 약 100년의 역사에 일제강점기와 분단, 그리고 독재 정권의 아픔을 안고 있다. 아픔의 역사를 기회삼은 누군가는 돈과 명예를 얻기도 하였고, 또 누군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크나큰 상처를 안고 일생을 살아야 했다. 이도저도 아닌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과 가족의 안녕이 지속된다면, 이런 역사를 못 본 채 눈감고 살았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은 역사 청산 과정에서 많은 잡음을 내고 있으며, 여전히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산재해 있다.
2000년대 들어 과거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억울하게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거사위원회 조사관이자 현재는 ‘지금여기에’에서 일하는 변상철 작가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조사하여 무죄로 연결하였고, 세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들의 과거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하였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외면하고 싶은, 역사 속에 희생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는 다시 『인권을 먹다』로 출간되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다시는 돌아가면 안 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불편한 진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인권을 먹다』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24명의 사람들이 나온다. 과거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그들은 쉽게 자신의 과거를 터놓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즉, 자의든 타의든 정권 유지로 이용하거나 정권 유지에 이용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밥벌이로 어부 생활을 성실히 했던 사람, 큰 꿈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사람, 정권 반대편에 있는 국회의원, 간판 제작자 등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의 이웃이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인권을 짓밟히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살고 싶어 거짓 진술을 했고 결국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몇날 며칠을 자지도 못하고 알몸인 상태로 각목에 두들겨 맞으며 작성된 반성문은 결국 한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증거물이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지 가족이란 ‘죄’로 그들의 가족들은 ‘간첩의 자식, 간첩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쓴 채 온갖 비난과 멸시를 받아야했고 일자리조차 마음대로 얻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의 과거는 묻혀버렸다. 바로 우리가 진실과 마주 서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다행히 과거조사위원회가 생기면서 이들은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통과 아픔으로 직결되는 고문, 폭력은 누구도 마주 서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그것을 픽션이라고 치부하고 싶어 한다. 상상 속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다. 현실은 그 픽션보다 더한 세상이라는 것을….
-13쪽
일상의 음식으로 기억하는 국가폭력 이야기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어쩌면 쉽게 잊히기를 바란다. 진실과 마주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중요하고 또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상철 작가는 오히려 이들의 과거를 우리 일상의 음식으로 기억하게 한다. 바나나우유, 짬뽕, 냉면, 홍어회, 막걸리 등, 누구나 한번쯤 접해 본 음식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더해져 우리 머릿속에 깊게 새겨진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를 들어주는 고마움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음식을 함께하길 원했다. 마음을 내어 함께 나누는 음식은 항상 훌륭했다. 그러나 음식을 함께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들과 음식을 나누는 동안 사건의 피해 사실이 아닌 그들의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를 듣기 때문이다. 파괴된 자아와 공동체의 이야기는 음식을 먹는 내내 고통과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과의 식사는 나에게 깊게 각인되었다.
-14쪽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나와 우리 가족이 언젠가 그들과 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우리가 국가폭력에 눈감아버린다면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될 것이다.
평범한 일반 시민들은 고문으로 고통받는 국밥집 아들의 고문 피해를 외면했고, 우리가 그들의 피해를 외면하는 동안 더 많은 국밥집 아들이 이곳저곳에서 국가권력의 피해를 당해야만 했다. 국가권력을 군인에게 빼앗기고, 민주주의를 상실했음에도 별다른 저항감 없이 살았던 나와 그 시대의 사람들… 어쩌면 그들의 피해에 눈감은 나도 차동영의 고문범죄에 부역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의 마음이 올라왔다.
고문은 몇몇 수사관과 양심을 잃어버린 법조인의 범죄였지만 차동영 같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고통을 받으며 외면받는 삶을 살도록 한 것에 우리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악이 평범하게 보이는 사회가 선이 평범함으로 보이는 사회로 돌아서길 꿈꿔본다.
-248쪽
『인권을 먹다』를 다 읽고 나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을 먹을 때 먹먹함이나 화가 올라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잘 잊고 그냥 오늘을 살아가지 않는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스멀스멀 감정과 함께 올라오는 기억을 잘 간직하길, 그래서 그들이 겪은 국가폭력의 역사가 다시는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인권을 망가뜨리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