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멈출 수 없는 포털의 지배자가 되기까지
네이버, 네이버 창업자, 네이버 사람들의 리얼 인사이드 스토리
국내 검색엔진 점유율 1위, 시가총액 22조 원(2018년 5월 현재), 2017년 《포브스》 선정 100대 혁신기업 9위(4년 연속 선정), 사람인 설문조사 결과 가장 입사하고 싶은 벤처기업 1위. 바로 ‘네이버’ 얘기다. 1997년 삼성SDS 사내 벤처에서 시작해 1999년 네이버컴으로 독립한 뒤 지금까지 20여 년 만에 국내 1위 인터넷 기업을 넘어 일본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네이버. 검색 순위 조작 논란 등 여러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네이버가 IT 기업으로서 이룩해온 일들과 한국 사회에 끼치고 있는 막대한 영향력은 결코 부정할 수가 없다. 특히 네이버는 이제 검색 플랫폼을 넘어 기술 플랫폼으로 진화해가려 하고 있으며, 나아가 자율주행차와 AI 로봇에 이르기까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네이버 플랫폼의 역사와 현재,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동아일보와 네이버의 합작법인 인터비즈에서 1년간 일하며 네이버의 ‘속사정’을 직접 들여다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수많은 네이버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살아 있는 정보로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리얼 인사이드 스토리’를 담아냈다. 네이버를 알고 싶다면, 나아가 네이버가 선도하고 있는 인터넷 생태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네이버에는 비전이 없다고?
리더가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회사가 있을까?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오늘날의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리더가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해온 네이버가 바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기업이라면 어떨까? 이해진은 2016년 7월 라인이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 상장을 하는 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의 경영 이념에 대해 ‘비전이 없는 것이 곧 경영 철학’이라는 말을 던진다.
“‘3년 후 네이버는 어떤 회사가 돼 있을 것 같으냐’, ‘10년 후 인터넷 산업은 어떤 모습일 것 같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알 수 없죠. 아는 사람이 있다면 네이버 경영을 맡겨야 할 것 같아요. 의사결정자의 비전이 명확하면 조직이 딱딱해질 수 있습니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임직원들이 의사결정자의 생각에 맞춰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터넷 환경의 변화 속에서 CEO가 틀을 정해놓으면 변화에 대처하기가 오히려 어렵다는 얘기다. 리더가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해진은 리더의 역할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이라는 바다에서 애초에 설정했던 목표를 고집하기보다 때로는 회항하고 정박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영 철학은 실제로 네이버가 지난 시간 동안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온 밑바탕이 되었다. 기존의 대기업과 같은 경직되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아닌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고 창의적인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가 “네이버는 (…) 변화란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아닌, 소수의 실무진으로 구성된 수많은 점조직들이 이끌어내는 것임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제 막 창업의 씨앗을 뿌린 스타트업을 비롯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꼭 참고해야 할 책”이라고 말한다.
셀, CIC, 책임예산제
네이버의 혁신을 이끈 조직 실험
네이버도 한때는 기존의 대기업과 유사한 조직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최하위 조직인 ‘팀’에서 보고를 올리면 ‘실’과 ‘랩’에서 검토한 뒤 ‘센터’를 통해 ‘본부’로 전달되어 최종적으로 ‘CEO’에게 올라가는 의사결정구조를 거쳤다. 전형적인 수직적 의사결정구조였다. 하지만 2010년 3분기, 8분기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충격에 휩싸이면서 강도 높은 조직 개편에 들어갔고, 이후 지속적으로 조직 구조를 단순화하고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정립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이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조직 셀과 CIC(Company-In-Company), 즉 사내 독립 기업 제도다. 네이버는 본부제를 폐지한 데 이어 센터와 실, 랩 등도 없애고 개별 프로젝트나 셀이 별도의 상위 조직 없이 직접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이들 조직은 ‘책임예산제’를 통해 프로젝트와 인원 운용에 드는 비용을 배정받아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사실상 독립적인 사내 기업인 셈이다.
이 같은 조직구조 개편은 ‘관리’ 중심에서 ‘일’ 중심으로의 변화를 나타낸다. 윗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시되는 위계 중심 조직이 아니라 어떤 업무와 서비스를 하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조직으로의 변화인 셈이다. 조직 혁신은 실제 프로젝트에서의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밴드’다. 8,000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를 한 ‘밴드’ 프로젝트는 API 및 서버 담당자, 안드로이드 개발자, 아이폰 개발자 단 세 명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 4개월 만에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의사결정구조가 복잡한 조직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비스는 혁신적으로, 일처리는 보수적으로
네이버는 24시간 편의점
“CEO라는 사람이 쫀쫀하게 구네, 정말….” 이해진이 네이버를 창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직원들이 많이 하던 얘기다. 당시 이해진은 네이버 서비스에서 오타가 발견되면 직원들을 일일이 불러 지적했다. 그래서 ‘이 대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해진은 인터넷 비즈니스를 ‘브랜드 싸움이 아닌 퀄리티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구글이 마케팅 비용 없이 검색 업계 1등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네이버가 후발주자로서 선두 사업자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퀄리티’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히딩크가 말하길 축구에서 기술이 떨어지거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용서해도 몸싸움에서 밀리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기획을 못하거나 돈을 못 벌어오는 것은 용서해도 이용자가 보는 페이지에서 실수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서비스는 ‘혁신적’으로 하되, 일처리는 ‘보수적’으로 하는 것이 네이버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치 장인처럼 일일이 꼼꼼하게 챙긴다. 그런 까닭에 네이버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수공업자고, 서비스는 핸드메이드다”라는 말이 농담처럼 돈다. 그래서 실제로 ‘손맛이 나네, 안 나네’ 하는 식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모든 일들이 이렇게 빈틈없이 치밀하게 돌아가다 보니, 네이버 그린팩토리는 사실상 ‘24시간 편의점’처럼 돌아간다. 야근을 하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퀄리티를 높이고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치열하게 일하는 것이다. 또한 퇴근 후에도 끊임없이 ‘밴드’를 통해 업무에 대해 소통하고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처리하기 위해 애쓴다. 네이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내 밴드를 통해 한밤중의 ‘굿나잇’ 인사를 하고 비로소 ‘진짜 퇴근’을 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정도다. 국내 1위 인터넷 기업의 오늘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네이버에서는 ‘파워풀한 혁신’보다 일을 대하는 ‘집착과 끈기’를 더욱 강조한다. 혁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혁신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해진은 이렇게 말한다.
“혁신은 천재적인 아이디어의 산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다. 이용자의 요구를 악착같이 파악해 독하게 추진하는 기업이 결국 이겼다.”
현지화를 넘어선 ‘문화화’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다
네이버가 글로벌 시장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2000년 11월 일본 검색사업 법인 ‘네이버재팬’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사실 이해진은 네이버 설립 당시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업 초기 ‘네이버’ 브랜딩에 정성을 기울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유저들의 외면을 받으며 고전한 끝에 2005년 네이버재팬 사이트를 폐쇄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7년 네이버재팬 재설립, 2011년 ‘라인’ 서비스 출시 등을 이어가며 일본 시장 공략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라인 가입자 수 3억 명 돌파를 시작으로 라인 서비스가 일본을 넘어 타이완과 타이 등 동남아시아 시장을 제패하며 대성공을 거둔다.
라인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네이버에서는 이를 ‘문화화’로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라인 일본 서비스에서 시작한 ‘라인 스티커’다. 라인은 출시 이후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궤도에 오르고 있었지만, 아직 ‘대세’가 되기에는 ‘한 방’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때 이해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만화’였다. 만화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이었기에, 라인 서비스에 일러스트를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히 각각의 캐릭터에 감정과 성격을 불어넣자 유저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서비스 자체에서만 노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일본에 파견된 한국 직원들뿐 아니라 자사에 근무하던 일본인들의 안위도 직접 챙겼다. 이때 이해진은 한국 네이버 임직원들에게 “라인 임직원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적인 당면 과제로 제시했다. 일본 라인 임직원들을 위로하기 위한 전용 네이버 카페도 새로 개설했다. 덕분에 네이버는 현지에서 착한 기업으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네이버의 이러한 노력들은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 사람들을 끌어안는 것이 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쟁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해진은 이것을 ‘문화화’라고 말한다.
“최초에 등장한 서비스가 시장을 쟁취한다고 말할 수 없다. 페이스북만 해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지역, 시장마다 사용자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철저히 이해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상품을 제공하는 체계를 만든다면 길은 열린다. 이것을 나는 단순한 의미의 현지화가 아닌 ‘문화화’라고 표현한다.”
검색 플랫폼을 넘어 기술 플랫폼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다
네이버 한성숙 대표는 취임 이후 줄곧 네이버를 ‘기술 플랫폼’으로 변화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는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개념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2016년 11월 취임 일성으로 “네이버가 ‘기술 플랫폼’으로 변신해 인공지능 등 차세대 첨단 기술을 광고주, 소규모 사업자, 창작자들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해진도 기술 플랫폼으로의 변화와 관련해 이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네이버 연례 개발자 회의인 데뷰 2016 당시 국내 스타트업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네이버는 소프트웨어 회사고, 글로벌 거대 기업과 경쟁하려면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시대가 변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같이 봐야 한다. 그동안 소프트웨어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하드웨어를 포함한 기술 개발 등에 본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실제로 네이버는 최근 몇 년간 기술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다지고 미래 비즈니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계속해왔다. 인간의 오감을 인지하는 AI 플랫폼 개발에서부터 외국어 통번역 기술, 나아가 복잡한 도심 환경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자율주행 기술, 실내용 자율주행 로봇, 산업 현장이 아닌 일상 영역에서 인간을 돕는 로봇 팔과 다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적 역량을 쌓아가고 있다.
또한 네이버는 강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들과의 제휴나 인수합병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2017년 3분기 기준 국내 법인 58곳, 해외 법인 11곳, 펀드 44곳 등 무려 113곳에 투자를 집행하며 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다른 법인에 대한 출자를 가장 많이 한 회사로 꼽혔다. 네이버가 주로 화력을 집중한 곳은 콘텐츠, AI 등 기술 전문 법인이다.
네이버는 2016년 말 향후 5년간 국내 기술 투자에 5,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17년 3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약속한 투자는 기술·콘텐츠·스몰 비즈니스 등 여러 부문에 걸쳐 골고루 이뤄지고 있으며 2018년에도 투자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3분기 기준 3,000억 원 이상이 집행된 상태이며, 네이버와 라인 양 사를 합치면 투자금이 4,000억 원에 육박한다.
네이버는 2018년 1분기 실적에서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매출 1조 3,091억 원으로 2017년 같은 기간보다 21%나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11.6%나 줄었다. 미래 기술 분야 등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9%나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한성숙은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투자가 필수인 상황”이라며 “지금 미래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 미래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네이버는 2018년 연구개발비를 2017년보다 15~20% 늘릴 계획을 세웠다. 네이버가 실행하고 있는 기술 플랫폼을 향한 공격적인 투자가 미래에 과연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책속으로 추가]
사내 독립 기업 제도인 CIC도 도입됐다. CIC의 목적은 셀 조직이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장 가능성이 검증된 서비스를 인큐베이팅하는 데 있다. CIC 리더에게는 ‘대표’라는 호칭이 붙는다. 셀의 리더처럼 인사, 재무, 서비스 등 경영 전반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첫 CIC는 60여 명 규모의 웹툰&웹소설 셀이 됐다. 2014년 7월 출시한 웹툰 서비스는 이후 월간 방문자 4,000만 명이 넘는 인기 콘텐츠가 됐다.
2016년 4월, 네이버는 실ㆍ랩과 센터ㆍ그룹마저 없애고 24개 프로젝트팀을 신설한다. 프로젝트는 별도의 상위 조직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필요에 따라 생성되고 해체되는 별도 TF 조직인 셀은 그대로 남게 됐다. 당시 셀은 6개였다. 네이버가 이제는 크게 프로젝트팀과 셀로 운영되게 된 것이다. 프로젝트팀 역시 리더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신설 당시 24명의 리더 가운데 14명은 개발자 출신이었다. 본부를 없앤 데 이어 센터와 그룹, 실과 랩마저 없앤 것에는 의사결정구조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_ 본문 135~136쪽
책임예산제는 조직을 셀 단위로 분할하여 운영하는 아메바 경영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제도는 센터, 그룹, 실, 셀 등 조직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목표를 수립하고 예산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쉽게 말하자면 조직 단위로 예산을 할당하고 그 범위 안에서 연봉, 승진, 채용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조직 특성에 맞는 보상체계일 것이다. IT회사의 경쟁력은 개발자들이다. 그럼에도 네이버는 그동안 개발자들을 진정한 의미에서 우대하지 않았다. 직급이 올라가면 급여를 상승시켜주고, 같은 직급이라면 하는 일과 무관하게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주었다. 다만 조직 간 차별을 두기 위해 별도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연봉+성과급’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반면 책임예산제는 개발 직군에 더 많은 보상이 가도록 설계할 수 있었다. 진짜 엔지니어들을 위한 회사로 변신하는 교두보가 된 것이다. _ 본문 142쪽
이해진과 네이버 임직원들은 곧바로 메신저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라인’이었다. 2011년 4월부터 서비스 기획에 들어가 불과 2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메신저를 출시했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임직원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이 나라에서 10년 넘게 인터넷 서비스를 해왔는데 일본 네티즌들은 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을까.’ 이해진과 라인 개발자들은 마음을 졸였다.
실패를 인정한 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해진을 비롯한 임직원들은 이자카야를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라인을 설치해달라고 읍소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맨땅에 헤딩하기’는 계속되었고, 라인을 설치한 고객들에게는 꼭 재방문해 불편한 점을 알려달라고 했다. 네이버 직원들의 ‘들이대기’에 당황스러워하던 일본인들은 차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연락처 교환 기능이 간편해졌으면
좋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들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곧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졌고, 라인은 차츰 ‘일본인에게 적합한’ 메신저로 변화해가기 시작했다. _ 본문 180쪽
네이버는 타이 현지에서 점령군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타이 서비스를 한국 운영 방침에 맞춘 것이 아니라 현지 문화와 운영 방침에 맡겼다. 이를 위해 네이버는 현지인들이 직접 자국 고유의 서비스를 운영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현지 직원들을 대거 채용했을 뿐 아니라 현지 법인의 수장도 타이인이 맡도록 했다. 타이 법인의 직원 150여 명 중 한국인은 한두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신중호는 네이버의 이 같은 전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008년 해외 진출을 위해 일본에 갈 때 이해진이 내게 딱 하나 부탁한 게 있다. 내가 알고 있던 건 다 버리고, 현지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중심이 되는 조직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라인의 역사는 곧 현지화의 역사다. 모든 문화는 평등하다는 전제 아래에서 그 나라 문화에 맞게 서비스를 현지화하는 게 글로벌 경쟁사와의 싸움에서 라인이 이기는 길이다.” _ 본문 186쪽
본래 스노우는 동영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분야에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해보자는 취지에서 벌인 게릴라 성격의 프로젝트였다. 카메라에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재미있는 이미지 필터를 입혀주는 기능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2015년 9월 시험적으로 선보인 스노우 모바일 서비스는 유행에 민감한 13~24세 이용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한국, 일본, 타이완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해나갔다. 별다른 홍보ㆍ마케팅 없이 입소문만으로 10개월 만에 3,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스노우 앱을 내려받은 상당수가 유명인이나 지인 등 다른 사람들이 스노우를 쓰는 것을 보고 호기심 때문에 사용하게 됐다고 말한다. 2018년 2월 현재 2억 7,000만 다운로드를 넘어섰으며, 그중 해외 이용자 비중이 70%에 달한다.
성장세가 가팔라지자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가 이해진에게 이메일을 보내 스노우 인수 의향을 밝힌 것이다. 네이버 경영진 입장에서는 글로벌 IT 기업으로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이어서 더없이 기뻤다. 이해진은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김창욱이 밝힌 이유가 재미있다. “다른 여러 회사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지만, 서비스를 직접 글로벌에서 성공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다.” _ 본문 196~197쪽
스코픽은 현재 클로바의 비전(Vision) 분야 레퍼런스 앱 ‘뷰(VIEW)’에 일부 적용되어 있다. 비추기만 해도 찾아주는 실시간 비주얼서치 기술도 개발 중이다. 또 ‘스마트렌즈’에 적용되어 사진 촬영만으로 검색결과 값을 얻어낼 수 있다. 검색을 원하는 대상의 사진을 찍으면 유사 이미지가 첨부된 웹문서를 찾아낼 수도 있어 편리하다. ‘쇼핑렌즈’의 경우 스코픽 기술과 UI를 쇼핑 분야에 맞춰 개발했는데, 동일한 이미지를 찾는 데 최적화돼 있어 원하는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잡지나 SNS에서 패션 이미지를 보고 유사한 상품을 사고 싶을 때나 오프라인에서 접한 상품의 온라인 가격이 궁금할 때 쇼핑렌즈를 활용하면 검색한 이미지와 유사한 상품 정보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모든 AI 검색 기술의 목적은 결국 사용자들이 더욱 정확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검색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 네이버 검색 총괄 리더 김광현의 말처럼 “검색의 미래는 검색을 더 편하게 더 잘하게 하는 것에도 있지만 검색을 덜 하게 만드는 데도” 있기 때문이다. _ 본문 249~250쪽
“네이버는 소프트웨어 회사고, 글로벌 거대 기업과 경쟁하려면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시대가 변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같이 봐야 한다. 그동안 소프트웨어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하드웨어를 포함한 기술 개발 등에 본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해진은 데뷰 2016 당시 국내 스타트업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 실제로 네이버는 라인 미ㆍ일 동시 상장 직후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기술인 자율주행차와 로봇 등의 경우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실제로 구현해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물 없는 소프트웨어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네이버는 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개발 중인 다양한 하드웨어 산물들을 선보였다.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7 서울 모터쇼’에 참석해 무려 1,000제곱미터의 전시 공간을 마련, 일련의 자율주행 기반 기술을 뽐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네이버가 모터쇼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네이버가 자율주행차 양산에 나서겠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하드웨어까지 외연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_ 본문 255~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