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 살아온 25년,
한 다발 추억으로 엮인 인생 여정의 기록
가브리엘 마르셀은 말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즐거운 추억”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저자 김산춘 신부는 많은 이들로부터 크나큰 선물을 받은 사람이다. 삶의 여정 가운데 인생 벗들과 함께 크고 작은 추억을 무수히 엮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지나온 반생(半生)이 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엮어온 추억들은 한 다발 꽃처럼 다채로운 빛깔과 향기로 생의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지난 25년간은 나 자신을 넘어 조금이라도 하느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었지만 발걸음은 언제나 제자리였다. 아니,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내 곁으로 와주셨다. - ‘후기’에서
이 책에는 사제로 살아온 그의 25년 세월이 나이테처럼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가 새겨온 나이테는 웅숭깊고 그윽하다. 어느 한 순간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은 까닭이다.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실어 내디딘 그의 발걸음 뒤에는 매 순간 깊고 선명한 흔적이 남았다. 수십 년간 몸과 글로 새긴 나이테인 까닭에 다른 누구의 삶과는 견줄 수 없는 그만의 진솔함과 인간다움이 묻어난다. 마냥 매끄럽고 유연한 곡선만을 그려온 세월은 아니었으나, 있는 그대로 자신의 지나온 족적을 내보이는 김산춘 신부는 달고도 오묘한 인생의 섭리를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보인다.
“본당 신부는 그 마을의 신(神)”(스탕달, 『적과 흑』)이라는 대목을 읽은 뒤로 “평생 서강에서 살면서 서강 동네를 위해 무언가 일하다 죽기”를 소망한 그. 과연 그 소원대로 그는 사제품을 받은 1993년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강을 품은 채 충실한 하느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성․영성․감성으로 새긴
찬미의 고백록
인생 항로는 저절로 정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내면 성찰과 치열한 질문 끝에 ‘발견’하고 ‘결단’해야만 정해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자 일찍부터 자아 탐색을 시작했다. 진선미의 조화를 이루며 살기를 소망했던 그는 학문(지성)과 종교(영성)와 예술(감성)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에 대한 답은 ‘사제의 길’이었다.
인생의 가치인 진선미를 동시에 추구하며 사는 길은 없을까? 학문과 종교와 예술을 동시에 수행하며 살 수는 없을까? 그러다가 문득 ‘사제가 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사랑은 노래한다’에서
고교 졸업 후 문학도의 길에 접어들었던 그는 지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발견한 뒤로 하느님의 종으로 거듭나기 위한 수련을 기꺼이 감내했다. 그가 고백하듯 “사람은 생각하고 언제나 하느님이 정하”시는 순리를 따라 그의 인생 항로가 결정되었다. 사제 생활에 수반되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듣고도 끝내 사제의 길에 들어선 것은 그가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 이룬 의지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운명’에 가까운 섭리였다.
이 책은 그가 사제품을 받은 1993년부터 2018년까지 신문, 잡지, 소식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주제와 성격에 따라 구성·편집하였다. 총 다섯 개의 부로 나누어 엮은 그의 길고 짧은 글들은 잔잔하고 향기로운 내적 고백이기도 하고, 예리한 검만큼이나 날카로운 지적 탐구이기도 하다. 어떤 글이든 그가 기록한 모든 문장과 행간에는 언제나 신을 향한 깊고도 간절한 사랑과 염원이 담겨 있다. 생의 반 바퀴를 달음질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더듬어본 지난날의 흔적과 기록은 곧 지성․영성․감성으로 새긴 그의 찬미의 고백록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