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저자서평
한반도 주변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남북은 3월 29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고위급회담을 열어 남북정상회담은 4월 27일에 열기로 확정하고 의제는 ‘비핵화?평화정착?남북관계 발전’으로 정하는 등 3개항의 합의가 담긴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 중에는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북미회담에 앞서 김정은은 중국을 3월 25 ~ 28일 깜짝 방문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현재 한반도 정세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김일성 및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주력하는 것은 우리의 시종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중앙(CC)TV와 신화통신이 전했다. 이러한 급속한 정세변화는 경천동지할 일이다.
봄을 맞이해서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남한예술단이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평양에서 두 차례 공연을 한다. 남한예술단 공연의 일부는 북한과 합동공연의 형태를 띨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동평양대극장 등에서 진행될 남한예술단 공연에는 조용필이 [그 겨울의 찻집], 이선희가 [J에게], 백지영이 [총맞은 것처럼], 정인이 [오르막길] 등을 부를 예정이다. 특히 아이돌 그룹인 레드벨벳이 [빨간 맛]?[Bad Boy]를 부를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다만 월드스타인 싸이의 공연이 거부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번 남한예술단의 방북공연은 지난 2월의 북한예술단의 강릉공연의 답방형식을 취하고 있어 남북교류역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기원을 위해 남한을 방문하여 강릉과 서울에서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
불과 2 ~ 3달 전만해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 언론 인터뷰 등에서 ‘화염과 분노’?‘군사 해법 장전’ 등의 강경 발언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완전한 파괴’?‘로켓맨(북한 김정은)의 자살 임무’?‘타락한 정권’ 등을 언급함으로써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할 경우 군사옵션을 사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맞서 김정은도 트럼프대통령을 ‘미치광이 노인’이라고 공격하는 동시에 이용호 외상의 입을 빌려 태평양 상에서 역대급 수소폭탄 실험을 할 것이며 괌과 하와이 등 미국본토를 날려버릴 것이라고 공세를 취했다.
이번에 펴내는 ??북한소설에 나타난 여성의식과 성 역할??은 한국연구재단의 ‘2013년 선정 저작 출판 지원 사업’에 의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수행했던 학술과제의 성과물이다. 제1장 들어가는 말에 이어, 제2장과 3 ~ 4장에서는 [북한사회주의의 특징과 여성 역할]과 [북한의 정치환경의 변화와 여성 위상의 변모]?[김정일과 김정은의 여성정책의 변모양상]을 다루었다. 제5장에서는 김정은 시대의 문학예술에 등장하는 주제의식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에 해당하는 북한소설에 나타난 여성의식과 성 역할은 제6장과 7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우선 제6장에서는 [문학에 비친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의 여성상 비교]를 통해 혁신자로서의 신여성상이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장편소설 ??녀학자의 고백?을 발굴하여 작품 속에 담겨진 김정은 시대의 북한여성정책의 지향점에 대해 분석해본다. 아울러 제7장에서는 북한소설에서의 여성 전형의 창조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학술연구과정에서 다루었던 핵심적인 내용들을 일부 언급하면서 김정은 시대의 북한여성들은 어떠한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위상과 역할이 문학작품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개략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김정은 정권의 젠더프레임에서 전통고수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의 준거점은 변화되지 않고 있다고 학자들은 보는데, 그 근거로 김일성?김정일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김정은을 섬겨야 한다는 ‘보은과 섬김’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국가총력전을 일상화하는 병영체제 하에서 전방은 남성이, 후방은 여성이라는 역할론에 근거하여, 여성에게 가족뿐 아니라 군대 및 사회를 헌신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돌봄과 헌신’의 규율담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전 시대와 달라진 몇 가지가 존재한다. 김정은이 시장경제의 위력을 인정하고 장마당에서의 북한여성들의 생활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가족의 생존은 여성들이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2010년의 ‘녀성권리보장법’과 2012년의 ‘어머니날의 제정’ 등에서 나타나듯이, 미세하나마 여성들의 위상과 존재가치를 김정은 체제가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남성노동력의 한계가 뚜렷하고 출산력 저하로 인해 여성노동력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실적인 측면의 정책적 고려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특징은 핵무기 개발, 인공위성과 장거리 미사일 기술이라는 최첨단 기술 돌파가 절실한 지식경제시대에 있어서, 김정은 정권이 고도의 과학기술력의 보충을 여성고급인력 양성을 통해 메우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지식경제시대에는 남성중심의 거시적 장치보다는 여성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미시적인 기획력과 디자인솜씨가 요구된다는 점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단편 ?어머니의 품속에서?(??조선문학?? 2013년 7월호)의 플롯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일종의 발단으로 여주인공 엄정화가 국방과학원 연구사로서 국가적인 공무로 인해 어머니로서의 역할과 아내로서의 일을 제대로 해나가지 못하는 결핍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종국에는 사회주의 대가정의 국가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엄정화의 공적이고 국가적인 책무에 대해 주변에서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타당성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장편 ??녀학자의 고백??도 김정은 시대의 북한여성의 참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녀학자의 고백??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여주인공 리현심의 과학인으로서의 순수한 양심 묘사와 특수합금연구과제를 실험하는 과정에서의 단계적인 ‘신념의 변화’이다. 애초에 리현심은 단순하게 최고학부인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를 최우등 졸업했다는 여성인테리로서의 성취감이나 창조의 기쁨으로서의 과학적 탐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대학 스승 강좌장선생을 만나 자신의 탐구사업이 ‘조국의 진보’와 연관되어 있다는 투쟁성의 확보를 통한 신념의 변화가 일어나게 그려진다. 그리고 문일수 기사장과 평양에서 실험시설이 있는 은덕갱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의 대화를 통해 “지금 현실은 우리 과학자들이 조국번영의 제일선에 선 돌격대, 기수답게 분발하고 또 분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를 인식하는 데에서 깨달은 ‘혁명적 동지애’를 느끼게 된 인간적 신뢰감이 중요하게 묘사된다. 이 장면을 통해 리현심을 작가 한정아가 깨어있는 자아로서 개아 시킨 것이다. 결론적으로 ??녀학자의 고백??에서 북한사회의 한계인 노동력 부족현상을 여성인테리 계층을 창조하여 뛰어넘으려고 시도한 것은 참신한 발상으로 보인다. 21세기는 여성들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성이 요구되는 소프트웨어 시대이므로, 금속재료공학?우주항공공학?IT정보산업 등에서 고급 전문 여성인력을 배출하려고 하는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의중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시의적절한 장치로 생각된다.
세계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듯이, 북한도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북한여성들의 위상과 성 역할은 더욱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도움으로 변화하는 소용돌이의 중심을 어느 정도 파악해보려고 한 시도를 진행하게 된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 미진한 점은 다음 연구를 통해 보완하려고 한다.
2018년 4월
박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