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닌 누구를 만나러
“떠나고 싶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이 도시에 가면 뭘 할 수 있을까?’에서 ‘이 도시에 가면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로 기대감의 관점을 조금 틀어보자고 제안하는 여행기다.”
화창한 자연이 유혹하지 않더라도 삶에 지쳤을 때 어딘가로 불쑥 떠나고 싶은 것은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기에 대리 만족을 위해 여행에 관한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웹 서핑을 한다. 특히 요즘은 활발한 SNS 덕분에 세계 각지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읽어야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노윤주는 《다정한 사람들에게 다녀왔습니다》에 장소가 아닌 사람을 여행하는 특별한 경험을 담았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 올리는 SNS의 사진이나 영상과는 달리 현지에서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맛깔나는 글로 읽을 수 있다.
다정한 나의 둥지
“‘조르바는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틀이 없는 사람이야. 용감하고 동시에 다정한 사람이야. 하고자 하는 것을 해버리는 사람이야’라고 취기에 흥분해서 말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라우라가 대답했다. ‘윤주, 그게 조르바라면 넌 이미 나한테 조르바야.’”
여행을 통해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압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좀 더 깊은 치유는 자연이든 사람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작가가 ‘다정한 나의 둥지’라고 표현하는 라우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그러한 경험을 선사한다.
낯선 곳에서 언어도 다르지만 오히려 쉽지 않은 만남까지 이끈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두 사람을 친구로 만들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사이로 맺어준다. 서로 잘 모르기에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역설은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상상 밖의 가족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사실 언제나 조금은 예상한 상황들과 만나는 것이 내 여행이었는데 이번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살고 있을 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
포르투갈 산속에 집을 짓고 사는 독일인 가족. 대나무 숲이 멋진 정원에 아들과 어머니의 집이 각각 한 채. 미혼모인 전처의 딸과 손자, 이렇게 4대가 모여 화목하게 즐기는 저녁 식사. 도무지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상상 밖의 가족의 가장 놀라운 점은 서로는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크레이지’란 말이 절로 나오는 이 신기한 이야기를 통해 왜 우리가 다정한 사람을 만나러가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진정 크레이지한 사람은 상상 밖의 가족인 요르크 씨네가 아니라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고백과 함께 말이다.
느리게 빛나는 말라카들
“돈은 더 벌 수 있긴 한데 난 서빙하는 게 더 좋아. 난 홀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재미있거든. 바텐더 하면 바 안에만 있어야 되잖아. 저기 저 테이블에 재미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바 안에 있느라 못 간다고 생각하면 너무 답답하잖아.”
그리스어로 ‘말라카(Malaka)’는 ‘나쁜 놈(Ass hole)’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외딴 섬 시프노스에서는 서로를 정겹게 부르는 호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선입견으로는 본래의 뜻에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리스의 청춘들이 보여주는 한적한 삶은 결국 에게해에 비치는 햇살처럼 영롱한 빛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앞으로도 낯선 도시를 누군가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의 매력은 그런 영롱함이 있다. 따갑거나 눈부시기는커녕 포근함이 느껴지는 빛. 바로 그런 빛을 내뿜는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만의 다정한 사람을 찾아 여행을 떠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