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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세계사 3

사진으로 읽는 세계사 3

  • 프란체스카타키
  • |
  • 플래닛
  • |
  • 2009-09-28 출간
  • |
  • 192페이지
  • |
  • 225 X 265 mm
  • |
  • ISBN 978899197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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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파시즘’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에서 파시즘 일반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과 고찰을 발견하리라 예상하는 독자는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은 파시즘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파시즘이 발생하고 발전하였으며 몰락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최근 이탈리아 정계에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는지를 정치적 관점뿐만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 제도적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지은이가 파시즘과 1920년대와 30년대의 이탈리아 사회사(즉 지은이의 조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는 점과 이 시리즈가 히틀러의 나치즘을 별권으로 분리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은이는 파시즘을 온전히 이탈리아에서 기원한 정치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파시즘은 이탈리아를 무려 20년 동안 지배한 정치 체제였다. 따라서 지은이는 파시즘을 괴물처럼 갑자기 등장한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 체제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이탈리아인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현상이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어쨌든 파시즘 체제는 대중들의 ‘동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파국적인 결과로 치닫지 않았다면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을지도 모를 정치 체제였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도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는 체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환각 상태나 환상에 빠진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동의’한 체제였던 것이다. 이탈리아 현대사를 파시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분석한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파시즘의 기원과 파시즘적인 현상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역사의 진행 과정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되돌아보았을 때 지극히 비정상적인 역사의 과정이 당대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유주의 체제의 위기와 파시즘의 등장

1차 세계대전은 이탈리아에 20세기 첫 15년 동안 정치적 안정을 보장하던 자유주의 체제에 극단적인 결과를 낳으며 정치적 위기를 가져왔다. 사회적, 정치적 불만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노동자와 농민이 투쟁에 나섰다. 1919년에서 1920년까지 2년 동안 격렬했던 노동자들의 저항을 별 손실 없이 빠져나온 산업자본가들은 경제적 팽창 국면에 따라 조세 경감을 보장하고 자신들이 자유롭게 해고와 임금 동결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정부가 등장하기를 고대했다. 사회적 갈등이 가져올 혁명적인 결과를 너무나 두려워했던 그들은 1920년까지 아직 현실 정치세력이 아니었던 무솔리니의 전투파쇼를 지지했다. 1922년, 신뢰할 만한 통치 능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 자유주의 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그해 10월 ‘질서’ 회복을 내세우며 파시스트 행동대가 로마 진군을 마치고 베니토 무솔리니가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을 때, 그것은 자유주의 체제와 대의 제도가 이탈리아에서 종말을 고했음을 의미했다. 노조의 자유가 폐지되었고 국가가 국민들의 모든 일상에 개입하여 사회를 조직화했다. 무솔리니와 파시즘 체제의 지도자들은 이견이나 반대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전체주의적 정치 개념에 의지해 개인의 형체를 민족 공동체라는 틀 안에 녹여 없애려 했다. 11월 16일 하원에서 행한 내각 출범 연설에서 무솔리니는 10월에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 사실적인 동시에 개인적이기도 한 자신의 소회를 극적으로 밝혔다. “나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이 어두침침한 의사당에 부대를 야영시킬 수도 있었다. 나는 의회에 빗장을 질러 잠그고 파시스트들만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처음인 이번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의도적인 위협적 어투를 뺀다면, 무솔리니는 사태를 진실 이상으로 신화화하지 않았다. 이 연설은 국가, 의회, 사회 사이의 관계가 이제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였다. 놀라운 점은 의회와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나 경제학자 루이지 에이나우디 같은 지식인들도 1922년의 무솔리니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정치 체제의 운명을 다시 일으킬 인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하원은 1923년 12월 31일까지 새로운 내각에 ‘전권’을 부여하는 법률안을 승인했다. 의회 체제 자체에 다분히 불길한 결과를 초래할 만한 결정이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국가를 ‘정상화’시키려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얼마나 많은 파시즘이 있었는가?

이탈리아 파시즘은 양차 대전 사이에 유럽에서 발생한 많은 정치운동에 하나의 모델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직접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영감을 받은 이데올로기적 내용과 제도에 근거한 정치 시스템 위에 서 있었다. 이는 파시즘 체제가 만들어놓은 기구들, 특히 해외에서 활동하던 이탈리아 파쇼가 전개한 선전 활동과 파시스트적인 성격을 띤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로마 정부의 후원에 힘입은 바가 컸다. 하지만 파시즘 체제가 추진한 ‘파시스트 혁명’의 수출이라는 대외 정책은 개념적으로 모순을 드러냈다. 왜냐하면 선전적 성격을 띤 ‘국제적 파시즘’이라는 생각이 눈에 띌 정도로 민족주의적 성격을 지닌 체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파시스트 운동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폭력적 대응, 2)사회적 다원주의에 대한 부정, 3) 내부적(일당제, 총통제)으로나 외부적(제국주의)으로 나타나는 전체주의적 경향. 이러한 특징들에 민병대,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 종종 가톨릭적 원형을 따르는 조합주의적 틀의 경제 정책 등 다른 요소들이 더해질 수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 말고도 돌푸스와 슈슈니크의 오스트리아 파시즘 체제,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체제, 헝가리의 호르티 체제, 폴란드의 피우수트스키 체제, 루마니아의 안토네스쿠 체제, 크로아티아의 파벨리치 체제, 슬로베니아의 티소 체제, 그리스의 메탁사스 체제 등이 유럽 파시즘의 영역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 모두는 종교적 성격을 유난히 강조하는 민족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특징이 있는 체제로, 기존의 파시즘 운동에서 견고한 지지 기반을 찾았다.

무솔리니의 최후와 파시즘의 유산

1945년 4월 29일 자유를 위한 자원군과 북부이탈리아민족해방위원회의 명령으로 동고에서 유격대 지휘관 발터 아우디시오에 의해 총살된 무솔리니와 그의 연인 클라레타 페타치, 그리고 파시스트 지도자들의 시신이 밀라노의 로레토 광장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시신은 주유소 지붕에 하루 동안 거꾸로 매달려 군중들에게 내맡겨졌는데, 군중들은 거기에 대고 침을 뱉거나 발길질을 했다. 이탈리아인들의 진을 완전히 빼놓은 슬프고 길었던 독재의 에필로그는 야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군중들의 행동으로 마감되었다. 이탈로 칼비노가 상기시켰듯이 군중들의 행동은 미래에 있을지 모를 독재 시도에 대한 경고였다. 북부이탈리아민족해방위원회는 공식 성명을 통해 무솔리니의 처형은 역사적인 국면에 있어 필연적인 결론이었고, 로레토 광장에서 성난 군중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바로 파시즘에 의해 그들이 폭력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며, 파시즘이 대중들의 증오를 그렇게 폭발시킨 유일한 책임자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대중들은 자신들의 억압자를 심판하기 위해 국제재판소의 재판을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전후 이탈리아 헌법은 국민주권, 권리의 평등, 행정의 지방분권화, 전쟁 거부 등을 명시하며 파시스트 정당의 재창설을 금지했다. 청산 작업은 1944년 7월 보노미 정부가 파시스트들을 처벌하기 위해 고위 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계획은 전쟁에 찬성했던 파시스트 지도자, 정치 범죄 혐의로 얼룩진 파시스트당과 민병대의 구성원, 살로 공화국의 부역자, 국가 관리를 기소하는 야심 찬 것이었다. 하지만 청산 절차는 그저 피라미만을 얽어맬 뿐, 파시스트 고위급 지도자는 모두 이를 피해 갔다. 점령군이었던 연합군은 청산 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이탈리아의 경제 재건을 가로막는 규정들에 반대했고, 이에 따라 전시에 부당하게 취한 이득에 대한 몰수 법률은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데 가르페리 정부의 법무장관이었던 공산당 서기장 팔미로 톨리아티가 국가 통합을 내세우며 1946년 6월 많은 파시스트들의 죄를 사면하는 일반사면을 발표했다. 이듬해 정부에서 좌익 세력들이 축출된 후, 이미 느슨해진 청산 작업은 흐지부지되었고 1948년에 이르러 중지되었다. 1946년 12월 파시스트 정당 재창설 금지를 우회하면서 전직 파시스트 지도자들의 후원 하에 이탈리아사회운동당이 창당되었다. 1948년 당원 6명을 하원에 진출시키며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든 이탈리아사회운동당은 1994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후원 하에 완전한 합법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1995년 1월 당명을 민족연합으로 바꾸며 연정에 참여하는 등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목차


1. 전쟁의 상흔
2. 자유주의 체제의 단말마
3. 로마 진군
4. 권좌에 오른 무솔리니
5. 권위주의 국가
6. 코포라티즘과 문화
7. 믿으라, 복종하라, 싸우라
8. 유럽의 파시즘
9. 지중해에서 아프리카 제국으로
10. 전시 이탈리아
11. 살로 공화국 600일
12. 파시즘의 유산
연표 / 찾아보기 / 사진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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