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을 보고,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니…… 이 무슨 듣도 보도 못하던 말인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일단 영화 관계자가 아님이 분명하다. 평범한 우리들이 생각하는 ‘프로덕션’이라 함은, 물건이나 상품을 만들어 내는 ‘생산’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게 대략 영화 혹은 영화 미술과 관련된 말이 아닐까 짐작한다면,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영화와 관련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영화 미술 분야를 일러 프로덕션 디자인이라고 지칭한 것은 불과 30여 년 전이다. 전에는 주로 ‘세트 디자인’이나 ‘영화 미술’이라고 불러 왔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영화미술감독을 말한다. 한 편의 영화에서 미술적 요소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 말이다.
그런데 영화 미술의 범위는 어마어마하다. 콘셉트 디자인, 세트 디자인, 의상 디자인, 분장, 소품 디자인, 특수 분장…… 즉 영화의 시각적 요소, 그러니까 보이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이 바로 영화 미술이며, 그에 대한 총책임자가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것이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영화미술, 즉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책’이자 영화 미술로 들어가기 전에 꼭 알고 있어야만 하는 ‘영화에 대한 책’이다.
간단하게 이 책의 특징 몇 가지를 짚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아직 이런 책은 없었다
늘 보고 들어서 식상하기 짝이 없는 이런 표현을 꺼내 들어야 하다니 민망하다. 하지만 달리 또 할 말을 못 찾았으니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염치불구하고 다시 한번 쓴다. ‘아직 이런 책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20년 훌쩍 넘도록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어 왔으며, 현재도 촬영 현장에 나가 있는 현역 영화미술감독이, 그간의 경험과 이론을 정리해서 만든 ‘한국영화미술매뉴얼’이다.
2. 강승용 감독을 아는가?
그가 참여한 영화는 40여 편에 이르니 일일이 다 열거하자면 숨 가쁘다. 몇 가지 대표작만 꼽아 본다. 사도, 왕의 남자, 황산벌, 평양성,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YMCA 야구단, 효자동 이발사, 실미도, 연가시, 판도라 …… 최근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준비중인 영화는 안시성이다. ‘앗! 그래? 오호~’의 연속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영화미술에 관한 이론서를 썼다. 그것도 백퍼센트 자신의 창작이다. 비슷한 다른 책들의 구성이나 구조를 빌리지도 않았다. 비슷한 책이 없기도 하다.
공동저자인 김지민 선생 역시 영화를 전공하는 학자이자 동아방송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으로, 강승용 감독의 글들이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3. 영화에 대한 입문서이기도
이 책은 ‘프로덕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지 않는다. ‘영화란 무엇인가’로 시작한다. 프로덕션 디자인이 영화에 필요한 모든 미술적 요소를 다루는 것이니 영화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 간단한 역사, 영화를 만드는 과정,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 길거나 어렵지 않다. 아주 쉽고 간단하다. 하지만 핵심이다.
4. 예술가에게 필요한 자질―창조, 경영, 소통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당연히, 예술가다. 그런데 지은이 강승용은 프로덕션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자질로 창조성, 경영 능력, 소통 능력을 역설한다. 그래서 크리에이터, 매니저, 커뮤니케이터로서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말한다. 매우 독특한 시각이다. 하지만 그 의미와 이유를 가만히 읽다 보면 그것이 그냥 독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5. 13편의 엣세이, 현장의 에피소드
기본적으로 이 책의 성격은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개론서이다. 하지만 이론 사이에 13개의 현장스케치가 들어 있다. 강승용 감독이 들려주는 촬영 현장 앞뒤의 이야기들이다. 진지한 이론들 틈에 가벼운 엣세이 13편을 넣은 것이다. 읽는 재미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