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흘리고 간 조개껍질이라도 하나 주워 들고 돌아오면 그날 밤은 온통 꿈이 파랬다
양광모 시인이 바다에서 길어 올린 푸르른 시
아름다운 시들을 한 권에 담아 대표시 선집을 냈던 양광모 시인이 열 번째 시집 『사랑으로도 삶이 뜨거워지지 않을 때』로 돌아왔다. 선집을 냈으면 쉴 만도 하지만 부지런한 시인답게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신간을 펴낸 것이다. 시집을 낼 만큼 시를 써서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럴 수 있었던 건 다 바다 덕분이다. 시인은 일 년의 시간 동안 바닷가에서 묵었다. 아마 바다에게 시 한 편 부탁하고자 머무른 듯하다. 그렇다고 바다가 시인에게 몸소 시어를 내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바다가 흘리고 간 조개껍질이라도 주워 들면 시가 되고 말았다. 바다란 "하루 종일 자리를 축내도 눈치 한 번 주는 일이 없"고 "세상에 물이란 물은 모두 끌어모으면서도 어부든 해녀든 원하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곳간 문을 열어 주는" 포근하고 너그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 한 편만 달라고/ 새벽부터 찾아왔는데/ 저녁이 오도록/ 시어詩語 한 마리 보이질 않아/ 바다가 흘리고 간/ 조개껍질이라도 하나 주워 들고 돌아오면/ 그날 밤은 온통 꿈이 파랬다
-「바다 68」 중에서
이번 시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1부 ‘바다에게 빈다’에서 ‘바다’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67편의 시가 쓰였다는 점이다. 시의 제목인 ‘바다’ 뒤에는 순차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제목이 같기 때문에 다소 비슷한 내용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싶지만 각양각색의 바다가 담겨 있다. 같은 바다이지만 어제의 바다와 오늘의 바다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차이를 시인의 눈으로 포착해 그때그때의 바다를 시로 남긴 것이다. 매일 바다 곁에서 머물면서 한 편 한 편의 시를 남긴 것은 바다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뛰어들면 내 몸이/ 파랗게 물들어버릴까 겁나서가 아니라/ 뛰어들면 바다의/ 파란 마음이 옅어져버릴까 두려”웠다는 시인의 말에서 바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제2부 ‘술잔 속 흰 바다’에서는 애주가로서 술 한 잔에 사랑을 혹은 술 한 잔에 인생의 황량함을 길어 올리고 있다. 제3부 ‘그대가 그리우면 잠에서 깼다’에서는 시인만의 어법으로 ‘사랑’의 감정을 풀어내고 있다. 제4부 ‘밥이여 너는 얼마나 눈물겨운가’에서는 국수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에서부터, 소나무, 아카시아, 코스모스 등의 자연까지 여러 소재로 인생을 노래한다. 제5부에서는 ‘건봉사’, ‘삼화사’ 등의 절과 ‘영일대’, ‘상주은모래해변’ 같은 바닷가 등 여러 군데를 다니며 품은 시상들이 펼쳐져 있다. 시를 쓰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는 시인의 순수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이 말하길, 주로 바다에서 쓰인 이번 시집의 시들은 절반이 소금이라 한다. 사랑으로도 삶이 따듯해지지 않거나 뭔가 인생이 밍밍하고 답답할 때, 소금으로 이루어진 시인의 시로 인생의 간을 맞춰 보는 것은 어떨까.
뭍에서 바다로 떠난 지 일 년 동안 백여 편의 시를 썼다. 아무쪼록 심심하던 시에 소금기가 더해져 조금이라도 짜졌기를 바란다. 그중에서도 몇 편은 제법 짭짜름하여 입맛에 착 달라붙기를. 누가 싱겁게 살아보겠다고 바다로 떠나겠는가? 이 시의 절반은 소금이다.
-「시인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