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줄여야 할 것을 줄이고, 늘려야 할 것을 늘리는 것이 양생의 기본이다. 반대로 하면 망한다. 먼저 네 가지 줄여야 할 것의 목록. “배 속에는 밥이 적고 입속에는 말이 적다. 마음속에는 일이 적고 밤중에는 잠이 적다. 이 네 가지 적음에 기댄다면 신선이 될 수가 있다〔肚中食少 口中言少 心頭事少 夜間睡少 依此四少 神仙可了〕.” 사람들은 반대로 한다. 배가 터지게 먹고, 쉴 새 없이 떠든다. 온갖 궁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잠만 쿨쿨 잔다. 쓸데없는 생각이 많고 이런저런 궁리에 머리가 맑지 않다. 실컷 잠을 자고 일어나도 몸이 늘 찌뿌둥하다. 그러는 사이 몸속엔 나쁜 찌꺼기가 쌓이고, 맑은 기운은 금세 흩어진다. 밥은 조금 부족한 듯 먹고, 입을 여는 대신 귀를 열어라. 생각은 단순하게, 잠은 조금 부족한 듯 잔다. 정신이 늘 깨어 있어야 마음이 활발해진다. 음식 섭취를 줄여야 속이 가뜬하고 몸도 개운하다.
_〈사소팔다(四少八多) - 줄일 것을 줄이고 늘릴 것은 늘려야〉 중에서
송나라 때 승려 선본(善本)이 가르침을 청하는 항주(杭州) 절도사 여혜경(呂惠卿)에게 들려준 말이다. “나는 단지 그대에게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我只勸你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명나라 오지경(吳之鯨)이 지은 《무림범지(武林梵志)》에 나온다.
생소한 것 앞에 당황하지 않고, 익숙한 곳에서 타성에 젖지 말라는 말이다. 보통은 반대로 한다. 낯선 일, 생소한 장소에서 번번이 허둥대고, 날마다 하는 일은 그러려니 한다. 변화를 싫어하고 관성대로 움직여 일상에 좀체 기쁨이 고이지 않는다. 늘 하던 일이 문득 낯설어지고, 낯선 공간이 도리어 편안할 때 하루하루가 새롭고, 나날은 경이로 꽉 찬다. 인생은 결국 생소함과 익숙함 사이의 줄다리기란 말씀!
_〈생처교숙(生處敎熟) - 생소함과 익숙함의 사이〉 중에서
감옥을 ‘복당(福堂)’이라 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지금 사람들이 감옥을 복당이라 하는 까닭’을, 《위서(魏書)》〈형벌지(刑罰志)〉에서 현조(顯祖)가 “사람이 갇혀 고생하면 착하게 살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방과 복당이 함께 사는 셈이다. 짐은 회개시켜 가벼운 용서를 더하고자 한다〔夫人幽苦則思善. 故囹圄與福堂同居. 朕欲改悔, 而加以輕恕耳〕”고 한 말에서 찾았다. 《앙엽기(盎葉記)》에 나온다. 복당이란 표현은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 “화(禍)는 덕의 뿌리가 되고, 근심은 복이 드는 집이 된다〔禍爲德根, 憂爲福堂〕”고 한 것이 처음이다.
내게 닥친 재앙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진다. 이때 근심은 오히려 복이 들어오는 출입구가 된다. 재앙을 돌려 덕의 뿌리로 삼고, 근심을 바꿔 복이 깃드는 집으로 만드는 힘은 공부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시련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_〈덕근복당(德根福堂) - 역경 속에서 지켜야 할 것들〉 중에서
개봉지부(開封知府) 포증(包拯)은 사사로운 청탁이 절대 통하지 않아 사람들이 그를 염라대왕 포노인(包老人)으로 불렀고, 기주자사(冀州刺史) 왕한(王閑)도 사사로운 편지를 뜯지 않고, 호족들을 용서치 않아 왕독좌(王獨坐)로 불렸다.
다산 정약용이 금정찰방으로 내려가 있을 때, 홍주목사 유의(柳誼)에게 편지를 보내 공사를 의논코자 했다. 그런데 끝내 답장이 없었다. 뒤에 만나 왜 답장을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으니, “벼슬에 있을 때는 내가 본래 사적인 편지를 뜯어보지 않소” 하고 대답했다.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편지 상자를 쏟게 하자, 봉함을 뜯지 않은 편지가 수북했다. 모두 조정의 귀인들이 보낸 것이었다. 다산이 삐쭉 입이 나와 말했다. “그래도 내 편지는 공사였소.” “그러면 공문으로 보냈어야지.” “비밀스러운 내용이라 그랬소.” “그러면 비밀공문이라고 썼어야지.” 다산이 아무 말도 못 했다. 《목민심서》〈율기(律己)〉 중 〈병객(屛客)〉에 나온다.
_〈정수투서(庭水投書) - 청탁을 막으려면〉 중에서
명말 장호(張灝)의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를 보니 “선비가 염치를 알지 못하면 옷 입고 갓 쓴 개돼지다〔士不識廉恥, 衣冠狗彘〕”라고 새긴 인장이 있다. 말이 자못 시원스러워 원출전을 찾아보았다. 진계유(陳繼儒)의 《소창유기(小窓幽記)》에 실린 말로, “사람이 고금에 통하지 않으면 옷을 차려입은 마소다〔人不通古今, 襟裾馬牛〕”가 안짝으로 대를 이루었다.
말인즉 이렇다. 사람이 식견이 없어 고금의 이치에 무지해, 되는대로 처신하고 편한 대로 움직이면 멀끔하게 잘 차려입어도 마소와 다를 것이 없다. 염치를 모르는 인간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개돼지에게 갓 씌우고 옷을 해 입힌 꼴이다. 염치를 모르면 못하는 짓이 없다. 앉을 자리 안 앉을 자리를 가릴 줄 모르게 된다. 아무데서나 꼬리를 흔들고, 어디에나 주둥이를 박아댄다.
_〈의관구체(衣冠狗彘) - 옷을 잘 차려입은 개돼지〉 중에서
제나라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桓公)을 모시고 고죽성(孤竹城) 정벌에 나섰다. 봄에 출정해서 겨울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회정 도중 멀고 낯선 길에 군대가 방향을 잃고 헤맸다. 관중이 말했다.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라.” 늙은 말이 앞장서자 그를 따라 잃었던 길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시 산속을 가는데 온 군대가 갈증이 심했다. 이번엔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는 산 남쪽에 살고, 여름에는 산 북쪽에 산다. 개미 흙이 한 치쯤 쌓인 곳에 틀림없이 물이 있다.” 그곳을 찾아 땅을 파자 과연 물이 나와 갈증을 식힐 수 있었다. 《한비자》〈설림〉 편에 나온다.
늙은 말은 힘이 부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군대가 길을 잃어 헤맬 때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사실 늙은 말이야 저 살길을 찾아 달려간 것뿐이다. 그 길이 살길인 줄을 알았던 관중의 슬기가 아니었다면 전쟁에 이기고도 큰 곤경에 처할 뻔했다. 개미의 습성을 눈여겨보아 군대를 갈증에서 건진 습붕의 지혜도 귀하다.
_〈지도노마(知途老馬) - 늙은 말의 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