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숫자,
숫자를 더 ‘깊이’ 읽어요
처음 글자 연습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글자는 삐뚤빼뚤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글자라기보다는 그림을 보는 것 같지요. 숫자를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어른들처럼 말끔하게 획을 긋는 것이 아니라 마음 내키는 대로 슥슥 써 내려갑니다. 어떤 때는 숫자가 엉뚱한 모양으로 변하기도 해요. 울긋불긋 리본 장식이 달리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이 되기도 하지요. 아이들의 상상력은 이렇게 어른들이 예상할 수 없는 곳까지 가 닿습니다.
《달, 달 숫자책》의 숫자들은 아이들이 그린 숫자들과 어딘가 닮았습니다. 숫자 1에는 온 세상을 하얗게 수놓는 눈송이가, 숫자 3에는 따뜻한 봄바람이, 숫자 4에는 파릇파릇 새싹들이 그려져 있어요. 숫자 9에는 소담스러운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답니다. 마치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것처럼 작가는 숫자에 자유로운 형태를 주었어요. 즐거운 그림들을 감상하다 보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왜 숫자를 이렇게 꾸몄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일 년 열두 달을 그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요.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은 자연의 변화에 무심합니다. 한 달, 한 달 달력을 넘기며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뿐 나를 둘러싼 공기와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알아채지 못해요. 하지만 자연은 느릿느릿, 그리고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어요. 3월이면 어김없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5월이면 향기로운 장미꽃이 피지요.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달, 달 숫자책》 속 글과 그림은 우리가 잊고 있던 ‘달’을 일깨웁니다.
작가는 각 달마나 펼쳐지는 풍경을 글로 묘사하는 대신, 독자들에게 소곤소곤 말을 걸어요. 꼭 곁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말이에요. ‘일어나 보니 눈이 와요!’ 하고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가 하면, ‘이 겨울바람은 언제쯤 멈출까요?’ 하고 묻기도 하지요. ‘일, 이, 삼, 사, 오, 육, … 십이’ 열두 숫자의 한글 발음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한 편의 시처럼 마음을 두드립니다.
계절의 순환은 우리 삶과 무척 닮았어요. 따뜻하고 풍요로운 시기가 있는가 하면 고단하고 시린 시기가 있지요. 뜨겁게 달릴 때도 있고, 서늘하게 기운이 빠질 때도 있습니다. 《달, 달 숫자책》 속 1월의 눈과 함께 시작된 한 해는 봄, 여름, 가을을 거쳐 12월이 되어 겨울로 돌아옵니다. 찬바람 부는 계절이지만 작가는 움츠리지 않았어요. 대신 ‘차가운 밤하늘에도 별들이 반짝반짝 빛날 것’이라며 기대하지요. 어쩌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녹록치 않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빛을 내는 무언가가 있다”고요.
《달, 달 숫자책》에 담긴 글과 그림은 숫자를 알려 주고 숫자를 생각하게 합니다. 일상의 수많은 숫자들과 숫자에 담긴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요.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고, 하루하루가 조금 더 특별해질 수도 있지요. 아이와는 더욱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예요. 《달, 달 숫자책》으로 숫자를 ‘깊이’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