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은 잔잔한 호수 같은 차분함과 자기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의 확립에도 충분한 뒷받침이 되어 줄 동방의 성서(聖書)다
"법구경"은 마치 종(鐘)과 같은 경전(經典)입니다. 큰 당목(撞木)으로 치면 큰소리가 나고 작은 당목으로 치면 작은 소리가 나며 또한 어느 정도의 힘으로 치느냐에 따라서 거짓 없이 솔직하게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종을 치는 것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종을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그대로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처럼 변화가 많은 시대에 살다 보면, 우리는 삶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품게 되는데 "법구경"은 그런 우리에게 잔잔한 호수 같은 차분함과 자기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의 확립에도 충분한 뒷받침이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법구경"은 팔리어의 담마파다(Dhammapada)를 한역(漢譯)한 경전의 이름으로 ‘진리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석존이 팔리어를 사용해서 말한 423편의 시구(詩句)를 인도의 승려 법구(法救)가 인생에 지침이 될 좋은 시구(詩句)들을 선별해서 모아 놓은 것이 지금 읽혀지고 있는 "법구경"이다.
석존은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으나 현재의 불교 경전은 석존의 제자들이 석존의 언행을 기억했다가 입으로 전해 오던 것이 후세에 성문화된 것과,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불교도들에 의해 석존의 사상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 등 두 종류가 있는데, "법구경"은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 석존의 말씀이 비교적 원초적인 형태로 전승되었다.
"법구경"은 명쾌한 구성과 해학이 섞인 법문(法門)으로 진리의 세계, 부처님의 경지를 설파하고 있으며, 내용도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덴마크의 학자 파스벨은 1855년에 처음으로 "법구경(法句經)"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에 전하며 ‘동방의 성서’라고 불렀다. 이후 "법구경"은 세계 각 나라의 국어로 번역되었고, 많은 연구서들이 출판되었다.
"법구경"의 내용은 실제적·구체적이고 또한 깊은 사색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불교의 입문서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매우 심오한 경지의 불교 공부, 즉 오의(奧義)를 공부할 수 있는 뜻깊은 경전이기도 하다.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는 조석(朝夕)으로 독송을 하는 경전으로써 "법구경"을 선택하고 있다.
형식적인 점에서도 "법구경"의 경문은 그 이름대로 시구(詩球)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커다란 특징의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산문 형식의 설법 뒤에 게(偈:범어, ‘가타’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며 송이라고 한역되는 시구를 말하는 것으로 교리나 깨달음의 내용을 나타냄)가 붙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지만, "법구경"은 완전한 시경(詩經:시로 이루어진 경전)이다.
‘시(詩)’나 ‘게(偈)’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고뇌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졌고, ‘시’나 ‘게’로 표현하지 않으면 도저히 전할 수 없는 가르침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시를 공부하는 사람은 인생과 친숙해지기 쉽고, 따라서 석존의 가르침에도 다가가기 수월한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구경"은 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각 나라의 국어로 번역하기 쉽고 서양인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최근까지 "법구경"이 "반야심경"이나 "관음경"만큼 친숙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철학은 좋아하면서 실증적인 인생을 논하는 것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반성하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은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