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인류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의리와 명분의 첩자 이야기!
간첩의 역사는 동서양 모두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간첩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에게 비밀이란 것이 생겨나고 그것을 캐기 위한 행위가 이루어진 그 순간이 간첩의 역사가 시작된 때라 할 수 있다. 간첩은 인류사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생산이 어느 정도 발전한 단계 이후의 산물이다. 사유재산이 출현하고 계급이 나뉘고서야 나타났다. 특히 전쟁의 필요에 따라 본격적으로 출현했다. 전쟁이 단순한 힘겨루기에서 총체적 지혜 겨루기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면서 간첩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간첩은 계급사회에서 국가나 집단이 벌이는 대외 정치투쟁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뛰어난 정치가들과 군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간첩 활용의 전문가였다.
청나라 말기인 19세기 중엽 때 사람 주봉갑朱逢甲이 쓴 《간서間書》는 중국 상고시대 하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4,000년에 걸친 간첩 활동과 관련한 사료를 모아 고대 간첩 문제를 체계적으로 논술한 책이다. 하나라를 중흥시킨 최초의 간첩 여애, 간첩을 이웃 조나라 왕실에 침투시켜 조나라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파악한 전국시대 위공자 신릉군, 이간책으로 항우와 범증을 갈라놓음으로써 유방을 초한쟁패의 최후 승리자로 만든 진평, 조조가 보낸 간첩 장간을 역이용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유 등 80개에 이르는 풍부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영원한 익명의 조연’ 간첩과 간첩 이론, 간첩 활용술을 살펴보았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비본祕本’ 《간서》는 세계 최초의 간첩 전문서 《간서》를 번역하고, 여기에 편저자의 해설과 함께 현대의 경영이나 사회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유사한 일부 사례들을 해당 항목에 맞추어 소개함으로써 현대의 국가 간 전쟁, 기업 간 경쟁, 개인의 사회생활에 적용할 만한 전략을 배울 수 있다.
▶ 주봉갑朱逢甲과 《간서間書》
《간서》를 엮고 지은 주봉갑은 나고 죽은 해가 분명치 않다. 대략 청나라 도광제道光帝와 함풍제咸豊帝 연간인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한다. 함풍 4년인 1854년 무렵부터 귀주貴州 흥의부興義府의 지부知府 벼슬에 있는 장릉張崚의 초청으로 귀주에서 《흥의부지興義府志》 편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귀주에서는 묘족苗族의 봉기가 발발하는 통에 주봉갑은 붓을 버리고 전투에 참여하여 봉기군을 진압하는 데 나서게 되었다. 바로 이때 주봉갑은 간첩 활용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다양한 문헌과 전적들을 정성을 다해 수집한 다음 이를 다시 정리하고 체계를 잡아 마침내 함풍 5년인 1855년 간첩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간서》다.
《간서》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크게 ‘간론間論’과 ‘간술間術’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간론은 간첩 활용의 이치를 전문적으로 논하면서 간첩의 종류, 메커니즘, 운용, 특징 등 여러 방면을 언급했으며, 제2부 간술은 여러 종류의 간첩을 활용하는 방법을 종합적으로 논술한 것으로 다양하고 상세한 사례와 분석을 곁들였다. 《간서》는 중국 고대 군사 문헌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간첩 이론을 전문적으로 논술한 저술로 그 문헌학적 가치가 대단히 높고, 간첩 활동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계통적으로 논술함으로써 중요한 이론적 가치를 갖추고 있으며, 《간서》가 체현하고 있는 지식 체계는 전문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대단히 광범위한 사회적 인지 기능을 갖추고 있어 실용적 가치가 매우 크다.
▶ ‘영원한 익명의 조연’ 간첩
동양에서는 중국의 기록들이 간첩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서양 간첩의 역사가 고대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다 상당 기간 공백을 보이는 반면, 중국의 간첩 관련 기록은 그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좌전左傳》에는 약 4,000년 전 하나라의 간첩 여애의 행적이 짤막하게 남아 있는데 이를 중국 최초의 간첩 기록으로 본다. 특히 춘추전국시대라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겪으면서 간첩의 활동상은 더욱 다양하게 전개되었고 그 중요성도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춘추 후기 손무孫武라는 걸출한 군사 전문가는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 간첩과 관련한 정교하고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이다. 손무의 《손자병법》이 역사상 최고의 병법서로 평가받듯, 그 간첩 이론과 사상 역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한 인식을 보여준다.
간첩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간첩에게 주어지는 반대급부도 커졌다. 자리가 주어지고 조직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성격상 간첩은 ‘은밀’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어서 이름이 남지 않았다. 조직 역시 임시성이 강해서 확실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간첩은 종종 전쟁의 승부는 물론 조직과 국가 나아가서는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간첩의 이 같은 역사적 의의에 비해 그에 관한 제대로 된 인식이나 전문적인 연구는 수천 년 동안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주봉갑이 편찬한 《간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물론,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담은 최초의 간첩 전문서로서 향후 깊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간서》는 병법서의 바이블로 인정받는 《손자병법》을 비롯하여 《육도》, 《이위공병법》, 《삼략》, 《36계》, 《삼국지》, 《사기》, 《좌전》 등 다양한 문헌과 전적을 바탕으로 간첩 이론을 정립하고 53가지 간첩 활용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사간 7개, 반간 22개, 향간 4개, 내간 3개, 생간 17개) 현대 국가의 군사와 정치에 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개인의 처세와 사회관계에도 적용 가능한 지혜를 억을 수 있다.
▶ 《사기史記》에서 발견한 첩자 관련 기록과 정보의 중요성
저자 김영수는 30여 년 간 사성史聖 사마천司馬遷과 《사기史記》를 연구해온 말 그대로 ‘사기’꾼이다. 이런 그에게 붙은 또 하나의 타이틀은 ‘첩자 전문가’다. 그가 지금까지 쓰거나 펴낸 관련 논문과 저서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 이 분야의 연구가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의 첩자 연구 역시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상고시대부터 한나라 때까지 3,000년의 역사를 담은 《사기》에는 간첩에 관한 내용이 즐비하다. 중국 역사상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흥망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졌으니 생존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간첩을 양성하여 활용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익명과 비밀에 쌓인 이들 존재의 역할과 작용은 대단히 중요해 전투의 승부는 물론이고 한 나라의 안위까지 결정했다.
저자는 《사기》 곳곳에서 발견되는 첩자 관련 기록을 검토하면서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보의 중요도는 단 한 번도 외면당하거나 도외시된 적이 없다. 저자는 이들이 남긴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과거와 지금의 정보 수집의 중요성과 그 방법들에 주목했고, 생각 끝에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간첩 전문서인 《간서》를 번역 해설한 ‘비본祕本’ 《간서》를 펴내면서 독자들에게 ‘정보’라는 키워드를 움켜쥐고 이 책을 읽어달라고 당부한다.
지금 세계의 간첩 활동은 이미 군사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판의 각축,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 인생에서의 고군분투 등이 모두 정보와 관련한 일이 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인류는 이미 고도의 정보화 시대에 진입했다. 정보를 얻고 정보를 조작하고 정보를 고의로 전달하는 일은 이미 정치와 경제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관건이 되었다. 따라서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취득하는 일은 국가의 안전, 사회의 진보, 사업의 성공에 지극히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간서》의 정교하고 모범적인 사례와 논술은 현대의 우리에게 엄청난 참고 자료로서의 값어치를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