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헌드레드 시대, ‘새로운 노년’이 나타났다!
‘늙은 사람은 비효율적인 사람’이라는 낙인은 농경 사회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크다. 나이 든 사람들은 퇴직 이후 비생산적인 사람으로 취급당하며 공동체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잃는다. 또 앞으로 살아온 만큼의 나날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과제 앞에서 고심한다. 하지만 남은 인생에 대한 밑그림은 쉽게 그리기 어렵다. 초고령화 현상은 인류사에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기에, 대처 방법이 많지 않으며 참고할 만한 모델도 마땅치 않다. 한국처럼 돌발적인 근대화와 압축적인 산업화를 겪은 나라일수록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는 그 격랑과 파장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이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비슷하게 반복되어 온 생애 경로를 이탈한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독재 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냈고, 기성세대의 권위를 부정하며 대중문화 속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현했다. 그러다 보니 학력 자본, 문화 자본, 경제력 등에 있어 그 전 세대의 노인과 확연히 다르다.
‘낀 세대’, ‘젖은 낙엽’이라는 자조를 넘어-
베이비부머 3인의 삶에서 찾아낸 ‘다른 노년’의 양식과 문화의 가능성
베이비부머 세대의 잠재력은 불투명한 노년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도 발휘될 수 있을까. 이들은 지금까지 고도 성장기에 맞춰 계속 나아가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자기 삶의 궤적을 짚어 보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태어나서 학교에 가고 취업하고 결혼한다는 것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는 것과 같았다. 아이를 낳으면 다시 학교 보내고 집을 사야 했고, 은퇴 후에는 강제로 컨베이어 벨트에서 하차했다. 시간은 많아졌지만 사회에서 밀려났다는 생각에 서글픔과 분노, 허탈함을 경험한다. 부모 부양과 자식 양육이라는 이중 노동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나이가 들면 돌봐 줄 사람이 없다. 특히 전업주부들은 자녀의 독립 이후 정서적 공허함과 우울을 강하게 느낀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베이비부머가 50세 이후 겪을 혼란과 방황을 줄일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기억을 재구성하며 자기가 누구인지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멋진 노년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작업을 위해, 이 책은 동시대를 영위해 온 세 명의 베이비부머를 초대한다. 사회학자, 문학평론가, 여성학자와 심도 싶은 인터뷰를 하며 드러난 이들의 생애사는 노년을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좌표가 될 것이다.
‘문래동 홍반장’ 최영식은 시대에 ‘비켜서 있었던 삶’을 반성하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것을 제안한다.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정년 이후 찾아올 시간의 과잉과 관계의 빈곤에서 벗어나 삶의 재구성, 나아가 사회의 재구성을 꾀하는 인생 2막을 이야기한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최영식의 삶에서 ‘생산자로서의 노년’을 발견한다. 무엇을 먹고, 입고, 발라야 젊어 보일지 고민하는 삶이 아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더 나은 곳으로 재탄생하기를 꿈꾸는 삶, 젊은 세대가 세상은 살 만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모델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본다.
‘봉사의 달인’ 김춘화는 ‘낀 세대의 여성’이지만 누구의 아내·누구의 엄마가 아닌 김춘화로 살아왔다.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이자 며느리로서 감내해야 하는 지난한 돌봄 노동과 갱년기까지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봉사다. 봉사를 하며 취득한 전문 자격증은 경제적 의미의 노후 걱정까지 덜어 주었다. 여성학자 조주은은 김춘화의 삶에서 여성이 남성 중심적 규범에 저항하고 ‘스스로를 위한 삶’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인생 전략을 포착한다. 바로 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들을 자기 것으로, 가족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들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이우학교 초대 교장’ 정광필은 ‘어떻게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며 노동운동과 교육 운동에 헌신해 왔다. 우정과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행보는 베이비부머의 인생 이모작을 위한 노년 공동체(50+인생학교)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일상과 문화가 바뀌어야 사회가 달라진다는 믿음으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지속가능한 변화를 꾀하는 정광필의 도전에서, 사회학자 김찬호는 ‘지렛대로서의 노년 세대’를 기대한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막대한 인구 규모만큼이나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세대로서 한국 사회에 산적한 부조리와 모순을 청산할 힘이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유쾌하고 멋진 노년을 준비함으로써 사회의 짐이 아니라 사회의 힘이 되는 시니어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래를 위한 첫 번째 도전은 자신이 걸어온 평범한 삶의 궤적에 숨어 있는 비범함을 마주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