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근이 형, 윤동주 탄생 100주년인데, 윤동주 시집 하나 새롭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뭔 소리야?”
“윤동주의 시를 형이 좀 그려보란 얘기야.”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시를 그리라니?”
“일단 사무실로 좀 나와. 만나서 얘기해.”
지난 9월 초, 그러니까 석 달 전의 일이다. 형이 지난 몇 년 여러 프로젝트를 벌이면서도 틈틈이 그래픽 포엠 작업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이참에 윤동주의 시로 제대로 된 그래픽 포엠 시집을 한 권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여유가 별로 없어서, 한 달 안에 끝낼 수 있겠냐고, 한 달 안에 끝내야 한다고, 짧게 덧붙였다.
늘 그랬듯이, 형은 쉽게 대답했다. “그러지 머.”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열 편의 시를 추려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달쯤 되었을까, 형에게 전화가 왔다.
“제영아, 내가 미쳤나 보다. 시놉 짜는 것도 아직 다 못 끝냈다. 한 달은 죽었다 깨도 못 하겠다. 어쩌냐?”
“천하의 전형근도 이제 맛이 갔나 보다. 형은 할 수 있어. 내가 형을 하루이틀 본 것도 아니고. 두 달 더 줄 테니까 11월 말까지만 끝냅시다. 파이팅!”
한 달은 처음부터 무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짧은 시간 안에 형이 에너지를 뽑아낼 거라는 계산이 서 있던 터였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처음부터 석 달을 얘기했으면 아마도 올해 안에 끝내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석 달 만에 형의 작품이 내 손에 들어왔다. 역시 천하의 전형근이었다. 윤동주의 시가 전형근의 그림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하늘에서 윤동주 시인도 기뻐할 줄 믿는다.
형은 이번 작품에 미진한 게 많아서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정말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또 제안했다. “형, 그럼 내년에는 백석을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이번 전형근의 그래픽 포엠 『동주, 별 헤는 밤』에 이어 내년에 나올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가제)도 기대하셔도 좋겠다.
- 박제영 시인